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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 맞선 ‘매운 대만언니’…서방 의원들, 만나러 줄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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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마스크 원료 공장에서의 차이잉원(蔡英文) 대만 총통. 2016년 취임하고 2020년 재선한 차이 총통은 반도체를 중심으로 경제에서 괄목할 만한 실적을 올렸으나 코로나19와 중국의 군사적 압박에 직면했다. [로이터=연합뉴스]

마스크 원료 공장에서의 차이잉원(蔡英文) 대만 총통. 2016년 취임하고 2020년 재선한 차이 총통은 반도체를 중심으로 경제에서 괄목할 만한 실적을 올렸으나 코로나19와 중국의 군사적 압박에 직면했다. [로이터=연합뉴스]

미국·영국·독일·일본·캐나다 등 서방의 국회의원들이 만나려고 줄을 선 지도자가 있다. 대만의 차이잉원(蔡英文·66) 총통이다. 차이 총통은 2016년 대만에서 여성으로는 처음 총통에 올랐고, 2020년 역대 최다 득표로 재선했다. 로이터통신은 그를 “세계 최고의 지정학적 드라마 중 하나(대만)의 주인공”으로 묘사했다.

양안(兩岸·중국과 대만) 간 긴장이 높아지는 상황에서도 그는 서방의 확고한 지지를 확보하고 있다. 지난 2~3일 미국의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이 중국의 반발 속에 타이베이(臺北)를 찾아 그를 만난 뒤 14~15일엔 미 여야 상·하원 의원 다섯 명이 뒤를 이었다. 일본 의원들은 오는 22~24일 대만을 방문할 예정이고, 영국·독일·캐나다 의원들도 연내 방문을 예고했다.

친기업 정책, 지난해 6%대 성장률 기록

군사 훈련장에서의 차이잉원(蔡英文) 대만 총통. 2016년 취임하고 2020년 재선한 차이 총통은 반도체를 중심으로 경제에서 괄목할 만한 실적을 올렸으나 코로나19와 중국의 군사적 압박에 직면했다. [로이터=연합뉴스]

군사 훈련장에서의 차이잉원(蔡英文) 대만 총통. 2016년 취임하고 2020년 재선한 차이 총통은 반도체를 중심으로 경제에서 괄목할 만한 실적을 올렸으나 코로나19와 중국의 군사적 압박에 직면했다. [로이터=연합뉴스]

펠로시 방문에 앞서 그가 보여준 철저한 보안과 준비는 야당인 국민당도 칭찬할 정도라고 뉴욕타임스(NYT)가 전했다. 중국은 펠로시의 대만 방문에 반발해 주변 해역 군사훈련으로 압박에 나섰다. 하지만 그는 “굴복하지 않겠다”며 18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중국 군함을 감시하는 대만 군함의 영상을 올리면서 맞섰다.

이처럼 소신 있고, 단호한 면모로 ‘라타이메이(辣台妹·매운 대만 언니)’ ‘대만판 철의 여인’이란 별명을 얻었다. 미 타임·포브스 등은 인구 2390만 명의 대만을 이끄는 그를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의 한 명으로 선정했다.

차이 총통은 “기술이 대만의 안보를 보장할 것”이라며 친기업 정책을 펼치면서 일자리 창출에 주력해왔다. 반도체 강국인 대만은 2020년 경제성장률이 3.36%로 30년 만에 중국을 제쳤다. 코로나19 속에서도 지난해 경제성장률이 6.28%로 11년 만의 최고를 기록했다.

그는 수백 년 이상 대만에서 거주한 본성인(本省人) 집안 출신으로 조모는 원주민인 파이완(排灣)족이다. 1956년 타이베이에서 11남매의 막내로 태어났으며, 아버지 차이제성(蔡潔生)은 자동차 수리와 부동산업에 종사한 재력가이고 어머니는 그의 넷째 부인으로 알려졌다. 국립 대만대 법학과를 마치고 미 코넬대와 영국의 런던정경대(LSE)에서 각각 법학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국의 대규모 군사 보복 알았다면 펠로시 방문을 거절했어야 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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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 대만 국립정치대 등에서 교수로 일하다 국민당 리덩후이(李登輝) 총통(88~2000년 재임)이 1999년 내놓은 ‘양국론(兩國論)’의 초안 작성에 깊숙이 개입했다. 중국과 대만은 별개 국가로, 새 관계 설정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2000년 민진당의 천수이볜(陳水扁) 총통 정부가 출범하자 양안 정책을 총괄하는 대륙위원회의 주임위원(장관)에 발탁됐다. 중국이 그를 자유민주주의와 대만 독립 노선을 추구한다고 비판해온 배경이다.

2004년 민진당 입법위원(국회의원), 2006년 행정원 부원장(행정부 부총리)을 지내다 2008년 총통 선거에서 민진당이 패배하자 주석을 맡아 당을 재건하고 차세대 지도자로 떠올랐다. 2012년 총통 선거에서 국민당의 마잉주(馬英九) 후보에게 패했으나, 2016년 두 번째 도전에서 당선했다.

차이잉원 대만 총통(오른쪽)이 지난 2일 타이베이(臺北)의 총통 관저에서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을 만나고 있다. [AFP=연합뉴스]

차이잉원 대만 총통(오른쪽)이 지난 2일 타이베이(臺北)의 총통 관저에서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을 만나고 있다. [AFP=연합뉴스]

집권 1기 때 급진적인 탈원전 정책 등으로 비판받았지만 2020년 총통 선거에서 국민당 한궈위(韓國瑜) 후보를 누르고 재선했다. 당시 홍콩 민주화 시위로 반중 여론이 확산한 게 도움이 됐다는 분석이다.

차이 총통은 화장기 없는 얼굴에 단발머리, 수수한 옷차림의 ‘모범생 스타일’이 트레이드 마크다. 여기에 더해 조용하고 수줍음이 많은 성격으로 카리스마가 부족한 ‘실무형 정치인’이란 평가가 있다. 반면에 소박하고 꾸밈없는 모습이 오히려 매력이자 강점이라는 시각도 있다. 대만 최초의 ‘미혼 총통’으로 고양이와 함께 사는 그는 과거 인터뷰에서 “미국 유학 시절 사귀던 남자친구가 사고로 숨졌다”고 밝혔다.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함께 일했던 보좌관과 관료들은 그를 “정책통” “항상 공부하는 사람” “다양한 전문가들의 조언을 구하며 성급한 결정을 내리지 않는 인물” 등으로 평가했다. 중국에 강경하고, 미국과 협조하는 외교 전략으로 양안 관계가 악화했다는 비판도 있다.

“2024년 총통 선거도 민진당 유리할 듯”

지지율은 집권 2기 초기엔 70%까지 치솟았지만, 코로나19로 떨어졌다. 대만은 코로나19 초기엔 ‘방역 모범국’으로 불렸으나 백신 확보가 늦었고, 올해 들어 확진자가 급증했다. 지지율은 지난 6월 36%로 집권 2기 최저로 떨어졌다가 펠로시 방문 뒤 반중 정서가 고조되면서 45.7%로 회복됐다. 대만여론재단(TPOF)이 지난 16일 공개한 여론조사(대만 성인 남녀 1035명 대상)에서 대만인의 52.9%가 펠로시 방문 추진을 ‘잘한 일’이라고 했고, 78.3%는 ‘중국의 대규모 군사 훈련이 두렵지 않다’고 답했다.

이지용 계명대 인문국제대학 교수는 “중국이 위협 수위를 높이면서 대만 국민이 결집하고 있으며, 정치권·학계에도 반중 정서가 번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현재 분위기라면 2024년 총통 선거도 민진당에 유리할 수 있다”며 “다만 차이 총통만큼 상징적인 지도자가 아직 보이지 않는 게 과제”라고 짚었다. 대만 총통은 임기 4년에 재임(再任)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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