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아기 압사에도 침묵한 母…5m 물탱크위 밤새 버틴 198명 기적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주민 198명 지름 5m 물탱크 올라 극적 생존 

폭우에 고립된 주민이 물탱크에 올라가 극적으로 생존한 ‘시루섬의 기적’ 실제 주인공들이 정확히 50년이 되는 날에 한 자리에 모였다.

충북 단양군은 한국예총 단양지회와 함께 19일 시루섬의 기적 50주년 행사를 개최했다. 당시 시루섬 주민 중 이몽수(81) 전 이장 등 60명이 참석했다. 시루섬의 기적은 1972년 8월 19일 태풍 ‘베티’가 몰고 온 폭우로 남한강이 범람했을 때 시루섬 주민 198명이 지름 5m, 높이 6m 크기의 물탱크에 올라가 서로 팔짱을 낀 채 14시간을 버텨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일을 말한다.

시루섬 옛 모습. 사진 단양군

시루섬 옛 모습. 사진 단양군

안타깝게도 사람들 속에 있던 한 아이는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숨을 거뒀다. 아이 어머니는 주민들이 동요할까 봐 죽음을 알리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남한강 변에 아이 어머니의 희생정신을 기리는 동상이 설치돼 있다. 시루섬 주민은 충주댐 건설에 따른 수몰 이주 등으로 고향을 떠나 뿔뿔이 흩어졌다.

50주년 기념행사에 앞서 단양관광호텔에 모인 주민들은 서로를 부둥켜안거나,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보였다. 한복을 차려입은 최옥희(83)씨는 시루섬에 고립됐던 50년 전 상황을 생생하게 기억했다.

시루섬의 기적 만남 행사에 참석한 최옥희씨. 최종권 기자

시루섬의 기적 만남 행사에 참석한 최옥희씨. 최종권 기자

단양 시루섬 기념 동상. 최옥희씨가 이 동상의 실제 주인공이다. 사진 단양군

단양 시루섬 기념 동상. 최옥희씨가 이 동상의 실제 주인공이다. 사진 단양군

100일 된 아들 세상 떠났지만 슬픔 삼킨 엄마

최씨는 “점심을 먹고 나와보니 담배 창고에 물이 가득 차 있었다”며 “5살 아이를 업고, 100일이 갓 지난 아들은 품에 안고 물탱크에 올라갔다”고 말했다. 사람들이 한 둘씩 올라오면서 물탱크 위는 ‘콩나물 시루’ 같았다고 한다. 최씨가 안고 있던 아이는 사람에 밀리고, 눌리기를 반복했다. 최씨는 “새벽 무렵 안고 있던 갓난아이가 울지도 않고, 잠을 자는 것처럼 조용해서 이미 목숨을 잃었다고 생각했다”며 “사투를 벌이는 이웃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아이가 죽은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고 했다.

이몽수 전 이장은 “한 사람만 균형을 잃어도 물에 떠내려갈 수 있는 상황이었다”며 “아이와 노약자를 가운데에 넣고, 청년들이 물탱크 테두리에서 팔짱을 끼고 14시간을 버텼다”고 말했다. 김순봉(64)씨는 “어두 컴컴해서 불어난 물이 보이지 않은 게 두려움을 줄여준 것 같다”며 “이튿날 오전 5시쯤 물이 빠지고 나니 마을이 폭탄을 맞은 것처럼 폐허가 돼 있었다”고 말했다.

1972년의 시루섬 물탱크. 연합뉴스

1972년의 시루섬 물탱크. 연합뉴스

단양군 50돌 생일잔치, 영웅 호칭 헌정 

시루섬 사람들 재회 행사는 희생자를 추모하는 천도제와 마을 자랑비 제막식 등 식전 행사를 시작으로 오후 6시부터 1~2부로 나눠 진행한다. 1부 50돌 합동 생일잔치는 밤새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극적으로 생존한 사람들은 모두가 동갑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시루섬에 가서 생일잔치를 하자는 생존자의 염원을 담아 계획됐다. 뽕잎 주먹밥 체험은 물탱크에서 내려와 수해 잔재물로 처음 해먹은 밥으로 당시를 재현해 시식하는 행사다.

2부는 시루섬 생존자에 대한 영웅 호칭 헌정과 희망의 횃불 점화 등 프로그램으로 꾸며진다. 당시 시루섬 사람들의 생존을 기원하며 켰던 희망의 횃불을 다시 들어 올리며 ‘희망의 노래’를 함께 부를 계획이다. 김문근 단양군수는 “시루섬의 기적은 희생과 단결 정신으로 대홍수의 위기를 극복하고 견뎌낸 평범한 사람들의 위대한 이야기”라면서 “시루섬을 단양의 역사로 계승 발전시켜 나가겠다”고 말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