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구 권력의 충돌은 미국에서도 현재진행형이다. 그 중심에 선 인물이 법무장관이라는 점도 공교롭다. 미국 법무장관 메릭 갈런드(70)는 지금 화제의 중심이다. 지난 8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마러라고 자택 수색 영장을 승인한 이가 갈런드 장관이어서다. 미국 연방정부 특성상 그는 검찰총장도 겸한다. 그의 승인 하에 연방수사국(FBI)은 트럼프 전 대통령의 자택에서 최고수준 기밀인 특수정보(SCI)를 포함한 11건의 기밀문건을 확보했다.
플로리다주(州) 연방법원이 수색 영장을 공개하고 갈런드 장관이 직접 승인했다는 사실이 보도되면서 공화당 측은 전(前) 정권에 대한 압박 아니냐며 비판 수위를 높이는 중이다. 그러나 갈런드 장관의 칼날은 무뎌질 기미가 없다. 그는 지난 2월 취임 선서에서 최대 과제로 지난해 1월6일 의회 테러 진상 규명을 꼽았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극렬 지지자들이 워싱턴DC 의사당으로 난입한 사건이다. 그는 이를 “의회에 대한 테러”로 규정했다.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18일 “갈런드는 테러에 대해서 이골이 나있는 인물”이라며 트럼프 전 대통령 측이 긴장해야 한다는 톤의 기사를 냈다.
테러는 그의 전문 분야다. 검사 출신인 그가 해결한 대표적 사건이 1995년 발생한 오클라호마 테러다. 20대 전직 군인이 연방 정부 건물에 폭발물을 설치해 168명이 사망, 500여명이 부상을 입었다. 당시 최다 사상자 숫자였다. 테러범인 티머시 맥베이는 도주했으나 갈런드 당시 검사의 활약으로 붙잡혔고, 사형됐다. 그런 그가 지난 1월6일 의사당 난입을 ‘의회 테러’라고 규정한 것은 칼을 날카롭게 벼리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갈런드 장관 본인이 친(親) 민주당 성향을 강하게 드러낸 적은 없다. 그러나 갈런드에게 등용문을 마련해준 곳은 주로 민주당이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그를 대법관 후보자로 지명했지만 공화당이 당시에 비토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 재임 때인 2017년엔 공화당에서 그를 FBI 국장으로 천거하기도 했다. 갈런드는 지난해 인사청문회에서 “법무장관은 대통령의 변호사가 아니라 국민의 변호인”라며 “당파적이거나 정치적인 수사를 막기 위해 내가 가진 힘 안에서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당시 인사청문회에서 공화당 의원도 50명 중 20명이 그의 인준에 찬성표를 던졌다. 정치적 중립은 취임사에서도 화두였다. 그가 “민주당과 공화당을 위한 법이 따로 있지 않다”며 “법무부는 공평한 정의를 추구한다는 것을 말뿐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주겠다”고 강조한 것.
그런 그가 트럼프 전 대통령을 정조준하고 나선 것에 대해선 해석이 분분하다. 공화당에선 11월 중간선거 등을 앞두고 공화당에 불리한 국면을 조성하기 위해서라는 주장도 나온다. 그러나 그만큼 지난해 의회 테러에 대한 진상 규명 및 처벌 의지가 강하다는 뜻으로 해석하는 게 지배적인 분위기다. 갈런드 장관은 트럼프 전 대통령뿐 아니라 조 바이든 대통령의 아들, 헌터 바이든에 대한 수사도 지휘해야 하는 입장이다. 그 자신이 정치적 중립성을 강조한 상황에서 헌터 바이든에 대한 수사를 어찌 이끌어갈지도 초미의 관심사다. 헌터 바이든은 아버지가 부통령으로 재직하던 시절 우크라이나 에너지 기업 로비스트로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갈런드의 꿈은 한때 의사였다고 한다. 그러나 하버드대 사회학과에 입학하면서 법조인의 꿈을 키웠고, 하버드 로스쿨을 졸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