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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민주당, 꼼수 방탄(防彈) 개정 아닌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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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기소 시 직무정지’ 조항은 유지했으나

당무위에 ‘정치탄압시 징계 백지화’ 권한

더불어민주당 우상호 비상대책위원장이 17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김성룡 기자

더불어민주당 우상호 비상대책위원장이 17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김성룡 기자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가 어제 ‘부정부패 관련 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당직자의 직무를 기소와 동시에 정지할 수 있다’는 당헌 제80조 1항을 유지하기로 했다. 전날 전당대회준비위원회에서 ‘하급심(1심 재판)에서 금고 이상 형을 받은 경우 직무정지’로 바꿔 의결한 걸 반영하지 않기로 한 것이다. 이재명 의원에 대한 검경 수사가 본격화하는 시점에 당헌을 개정하는 건 ‘방탄용 위인설법’이란 비판 여론과 당내 비(非)이재명계 의원들의 반발을 의식한 결정이다.

선뜻 잘했다고 박수 칠 수 없는 건 남겨진 방탄 조항 때문이다. 전준위는 이중의 방탄막을 마련했는데, 제80조 1항 외에 제80조 3항도 고쳤다. ‘정치탄압 등 부당한 이유가 있다고 인정되는 경우 중앙당 윤리심판원의 의결을 거쳐 징계(당직 정지) 처분을 취소 또는 정지할 수 있다’는 규정에서 윤리심판원을 당 최고위원회의로 수정했다. 당 지도부가 원하면 언제든 징계처분을 취소 또는 정지할 수 있도록 한, 어찌 보면 더 강력할 수 있는 방탄막이다. 비대위는 이걸 남겼다. 최고위 대신 당무위로 일부 수정했지만 말이다. “최고위보다 확장된 논의 기구에서 정한다”고 설명했지만, 최고위든 당무위든 정치적 판단을 하는 기구란 본질에선 차이가 없다. 당무위의 주체는 사무총장으로, 당 대표의 최측근이다. 당 지도부가 언제든 정치탄압 등을 내걸어 제80조 1항도 무력화할 수 있다는 의미다.

민주당은 이미 자신들을 향한 수사를 ‘정치탄압’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재명 의원부터 대장동 개발 의혹과 성남FC 후원 의혹, 변호사비 대납 의혹 등에 대한 검경 수사가 내부고발자나 언론의 보도 등에서 비롯됐는데도 “정치개입이자 국기 문란” “모든 영역에서, 모든 방향에서 최대치의 공격이 이뤄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검찰공화국의 야당 침탈 루트”라고도 했다. 이런 마당에 설령 이 의원에 대한 기소가 이뤄진다고 민주당이 징계에 나서겠는가.

심각성은 이 의원만 ‘방탄’을 두르는 게 아니란 점이다. 우상호 비대위원장의 실토에서 속내가 드러난다. 그는 “지금 야당 돼서 저쪽에서 우리 정치보복 수사를 한참 하고 있지 않느냐. 이제 그걸 보호하려고 지금 그러고 있는데”라며 “이재명 지키기라고 하는데 사실 기소될 가능성이 있는 친문 성향 의원들이 더 많다”고 했다.

어느 당 소속이든 잘못한 일이 있다면 책임을 져야 한다. 야당이라고 예외일 순 없다. 더욱이 문재인 정권은 권력형 범죄에 대한 수사를 극도로 억눌러 진실 규명이 제대로 되지 않은 의혹이 한둘이 아니다. 이제 와서 야당 의원에 대한 수사만 ‘정치보복’이라고 몰아붙여 자체 징계도 안 하겠다는 건 오만한 일이다. 당무위(19일)-중앙위(24일)에서 ‘꼼수’를 바로잡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