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간접 대북 소통과 정지작업 필요
한·일·관계 개선, 실천으로 이어지길
윤석열 대통령은 어제 8·15 경축사에서 ‘담대한 구상’이라 불리는 대북 제안을 천명했다. 북한이 핵개발을 중단하고 실질적 비핵화로 전환하면 그 단계에 맞춰 ▶식량 공급 ▶발전 송전 ▶항만·공항 현대화 등 획기적 지원을 하겠다는 방안이다. 북한이 거부감을 갖는 ‘선(先)비핵화 후(後)지원’이 아니라 북한이 협상장에 나오는 초기부터 지원 조치를 하겠다는 것이 핵심 포인트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유엔 제재의 부분적 면제도 국제사회와 논의할 생각임을 밝혔다.
그간 윤석열 정부의 대북 정책은 대북 제재와 압박에만 의지하는 강경 일변도의 것으로 인식되어 왔다. 비핵화를 조건으로 한 대북 지원 공약은 북한의 호응을 받지 못했던 이명박 정부의 ‘비핵개방 3000’과 비슷하다며 주목을 받지 못했던 게 사실이다. 이런 가운데 지난 5월 취임식 때 밝힌 ‘담대한 계획’을 구체화한 제안을 공표한 것이다.
새로운 제안은 식량과 전력 인프라 등 북한이 절실하게 필요로 하는 분야들을 망라했지만 북한의 반응은 미지수다. 역대 정부 사례에서 보듯 장밋빛 청사진만으로 북한이 태도를 바꾸지는 않을 것이다. 더구나 핵무력 완성 단계에 진입해 실질적인 핵보유국으로 자처하고 있는 김정은 체제의 북한이 하루아침에 대화로 나설 것이란 기대는 섣부른 낙관에 가깝다. 지난주만 해도 북한은 “남조선 당국 것들을 박멸하겠다”(김여정 노동당 부부장)는 등의 대결 자세를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북한은 강경 자세를 접고 윤 대통령의 제안에 응해 대화의 장으로 나오기를 촉구한다. 정부는 제안을 던져 놓고 북한의 변화만 기다릴 것이 아니라 북한과의 직간접 소통 및 주변국 등 국제사회와의 정지작업을 통해 적극적으로 북한을 협상장으로 나오게 하는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8·15 경축사에는 대북 제안 이외에도 눈여겨볼 대목이 있다. 일본을 “자유를 위협하는 도전에 맞서 힘을 합쳐 나아가야 하는 이웃”이라 규정하며 협력을 강조한 대일 정책 부분은 과거사 청산을 강조하는 게 통례였던 역대 경축사와는 확연하게 달랐다. 3·1운동과 임시정부에서 정부 수립, 산업화와 민주화로 이어져 온 한국 현대사를 ‘자유’의 실현 과정이란 관점에서 단절과 갈등이 아닌 계승과 발전의 역사로 총괄한 점은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대목이다. 건국절 지정 논란이나 편향적 역사 인식으로 8·15 행사가 오히려 사회 갈등을 부추긴 것과 달리, 국민의 상식과 눈높이에 맞는 통합의 역사관에 한걸음 다가선 것이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북 제안이든, 대일 정책이든 경축사에 담긴 과제들은 말의 성찬으로만 그칠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옮겨져야 한다. 열린 자세와 소통, 실행 능력이 뒷받침될 때 비로소 이런 과제들이 성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