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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재개장 열흘 만에 집회·시위 장소 전락한 광화문광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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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15일 세종대로 일대에서 '자유통일 주사파 척결 8·15 일천만 국민대회'가 진행되고 있다. 집회 참가자들이 광화문광장 일부를 차지했다. [연합뉴스]

15일 세종대로 일대에서 '자유통일 주사파 척결 8·15 일천만 국민대회'가 진행되고 있다. 집회 참가자들이 광화문광장 일부를 차지했다. [연합뉴스]

인근서 집회 연 보수단체, 광장 차지해

경찰 수사와 별도로 근본 대책 있어야

‘숲과 그늘이 풍부한 공원 같은 광장’으로 재탄생했다는 서울 광화문광장이 재개장 열흘 만에 집회 참가자들에게 점령당했다.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담임목사가 대표로 있는 보수단체가 그제 광화문 동화면세점 앞에서 집회를 하다가 광화문광장 남쪽을 차지하기 시작했다. 서울시가 재개장하면서 과거의 문제 사례로 지적한 ‘인근에서 집회·시위를 하다 광화문광장으로 밀고 들어오는 경우’가 그대로 재현된 셈이다. 집회 참가자들이 모여 앉은 지점은 서울시가 시민참여행사에 할당한 공간도 아니었다. 서울시는 세종대왕 동상 옆 놀이마당(2783㎡)과 육조마당(2492㎡)을 문화행사에 활용하도록 지정했다. 그런데 이날 집회 참가자들은 행사용 공간이 아닌 이순신 장군 동상 주변에 모여 태극기를 흔들었다. 경찰이 집회 신고 장소를 벗어난 참가자들에게 해산 명령을 했으나 소용없었다. 시위대가 인근 도로를 점거해 심각한 교통체증이 빚어졌다. 주말마다 대규모 집회와 시위로 시민에게 큰 불편을 주던 과거로 돌아간 것이다.

광화문광장 면적을 두 배 이상으로 확대하고 나무 5000그루를 심어 광장 4분의 1을 녹지로 채운 변화는 여야가 모두 동의했기에 가능했다. 800억원이 넘는 세금을 들여 멀쩡한 광장을 뜯어내고 새롭게 조성하겠다고 나선 사람은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다. 박 전 시장의 급작스러운 죽음으로 광장 개조가 무산 위기를 맞았으나 박 전 시장이 임명한 부시장이 바통을 이어받아 착공을 강행했다. 보궐선거에서 오세훈 시장이 당선되면서 공사 지속 여부가 도마 위에 올랐으나 이미 많은 예산이 투입돼 되돌리기 어려웠다.

지난 6일 마무리된 광장 재구조화 사업은 더불어민주당이 첫 삽을 뜨고 국민의힘이 완공했다. 우리 역사와 문화가 살아 숨 쉬는 서울의 중심부를 시민에게 휴식공간으로 돌려주자는 공감대가 형성됐기에 가능한 협업이다.

하지만 새 단장이 끝나자마자 집회·시위 장소로 되돌아갈 위기를 맞았다. 서울시와 경찰의 대응은 실망스럽다. 김광호 서울경찰청장은 어제 “채증 자료를 보고 수사 여부를 면밀히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지만, 집회 현장에선 효율적으로 대처하지 못했다. 서울시는 광화문광장 사용 허가 신청을 받을 때 참여 인원과 사용 목적 등을 상세히 적도록 하고 집회와 시위로 변질할 가능성이 있는 행사는 자문단 회의를 거쳐 허가 여부를 판단하겠다고 밝혔다. 1㎡에 시간당 10~13원의 사용료도 부과한다. 그러나 이번 집회처럼 인근에 신고한 뒤 밀고 들어가면 속수무책인 허점이 드러났다. 새 광장의 취지를 훼손하지 않도록 서울시와 경찰은 머리를 맞대고 해법을 찾아야 한다. 보수와 진보를 떠나 집회 주최자들이 광장을 시민의 휴식공간으로 지켜주려는 자발적 노력이 절실함은 물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