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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패·경제범죄 ‘중’→‘등’ 수정, 한동훈 한 글자 안 놓쳤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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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1호 05면

검수완박법 시행령 개정 논란

한덕수 국무총리(오른쪽)와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12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임시 국무회의에 참석해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덕수 국무총리(오른쪽)와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12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임시 국무회의에 참석해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야당이 전날 발표한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법안 관련 시행령 개정안을 비판한데 대해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추가 설명 자료를 내고 강하게 반박했다. 한 장관은 12일 “이번 시행령은 국회에서 만든 법률의 위임 범위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않는다”며 “서민을 괴롭히는 깡패, 마약 밀매, 보이스피싱, 갑질, 무고를 왜 수사하지 말아야 하느냐”고 반문했다. 법무부는 전날 검사의 직접 수사가 가능한 부패·경제범죄에 공직자·선거·방위사업범죄 중 일부를 포함시켰다. 시행령 개정을 통해 직권남용, 무고 등 검찰 수사 대상에서 제외된 범죄들도 수사할 수 있도록 범위를 대폭 확대한 것이다.

한 장관은 시행령의 근거를 지난 4월 27일 민주당 주도로 법사위를 통과한 검찰청법 개정안 원안이 아니라 박병석 당시 국회의장이 제안한 수정안이 최종적으로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것에서 찾았다. 당시 민주당 의원들도 검찰청법 제4조 ①항을 ‘부패범죄, 경제범죄 중→등’으로 수정하면서 수사범위가 확대될 수 있음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수정안이 본회의에 상정된 다음 날인 28일 이수진 의원은 “등과 중은 그 의미(차이)가 크다”며 “무엇 ‘등’이라고 하면 무엇 말고도 다른 것도 정할 수 있게 된다”고 말했다. 이틀 전인 26일 박주민 민주당 의원 역시 “(등은) 마치 6대 범죄 아니라 7대 범죄, 8대 범죄, 9대 범죄도 할 수 있는 것처럼 해석이 될 여지가 있어 ‘중’으로 바꾼 것”이라고 설명했다.

법사위 통과 때만 해도 ‘중’이던 검찰청법 개정안은 “이미 경제·부패라고 법률에 명시해놓은 상태에서, 하위법인 시행령이 이를 거스르고 수사 범위를 늘릴 수 있겠느냐”(법사위 1소위원)는 주장이 나오면서 ‘등’으로 타협이 이뤄졌다. 당시 검사 출신인 송기헌 민주당 의원 역시 “대통령령으로 확대하려 하더라도, 경제·부패 범죄가 아닌 경우엔 법원이 (위법임을) 명백하게 판단해줄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30일 열린 본회의에서 진성준 민주당 의원도 수정안 제안 설명에서 “부패범죄, 경제범죄 ‘중’을 부패범죄, 경제범죄 ‘등’으로 수정했다”며 “검사가 부패범죄와 경제범죄에 한하여 수사를 개시할 수 있도록 한다는 입법의 취지에는 다름이 없다”라고 설명했고, 이 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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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의 의견은 엇갈린다. 양홍석 법무법인 이공 변호사는 “민주당은 검찰 수사범위를 제한하고자 했으나 입법 기술적으로 이를 구현하는 데 실패했다”며 “그렇다고 무고, 도주, 범인은닉, 증거인멸, 위증 등은 부패·경제범죄가 아닌데도 이를 ‘사법질서를 저해하는 범죄’라며 수사 개시가 가능하도록 한 것은 법률의 한계를 뛰어넘는 것이 아닐까 싶다”고 말했다. 정웅석 서경대 법학과 교수는 “형사소송법 제196조 ①항(검사는 범죄의 혐의가 있다고 사료하는 때에는 범인, 범죄사실과 증거를 수사한다)에는 검사의 수사권을 제한하는 어떤 표현도 없다”며 “이를 전제로 한다면, 검사의 수사개시 범위를 위임하고 있는 시행령을 가능한 넓게 해석하는 것이 법률정합성에 맞다”고 말했다. 한 장관은 “정부가 범죄 대응에 손을 놓고 있으면 오히려 직무유기”라며 “시행령과 관련해 국회에서 부르면 언제든 나가 성실하게 설명하겠다”고 덧붙였다.

법무부의 시행령 개정으로 경찰 내부가 다시 끓어오르고 있다. 경찰은 시행령으로 검사의 직접 수사범위를 확대하는 것은 법률 개정 취지를 훼손할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법무부가 2020년 5월 유권해석을 의뢰하자 법제처는 “법률에서 6개 범죄유형을 나열한 취지가 검사의 직접수사를 제한하려는 데 있으므로 6개 범죄유형에 준하는 범죄에 한해 추가함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경찰은 시행령이 개정되면 6대 범죄 이외 영역에서도 검찰의 수사 개입 가능성이 커질 것을 우려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시행령을 보면 검사가 못하는 게 없다”며 “수사권과 기소권을 함께 갖고 있는 검찰이 옛날처럼 입맛따라 사건을 고르겠다는 것이냐”고 반발했다.

경찰청은 조만간 법무부에서 입법예고안에 대한 관계부처 의견조회가 오면 이에 대해 공식 의견을 회신할 예정이다. 경찰 관계자는 “법제처 유권해석처럼 상위 법에서 정해진 범위가 있는데 그걸 시행령으로 우회하는 건 일종의 꼼수”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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