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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택 시장 거래 빙하기 오나] 전문가 75% “주택 시장 비관적”, 65% “장기침체는 없을 것”…2008년과 닮은 듯 달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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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1호 0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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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이달 둘째 주(8일 기준) 서울 아파트 매매수급지수는 84.4로 14주 연속 하락했다. 사진은 서울시내의 한 주택단지. [뉴시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이달 둘째 주(8일 기준) 서울 아파트 매매수급지수는 84.4로 14주 연속 하락했다. 사진은 서울시내의 한 주택단지. [뉴시스]

주택시장에 먹구름이 드리우고 있다. 기준금리 인상 등 대내외 악재 속에 거래량이 줄면서 집값은 하락세다. 지난해 3월 12억4000만원에 팔렸던 서울 노원구 상계주공7단지 79㎡형(이하 전용면적)은 올 6월 2억4000만원 하락한 10억원에 거래됐다. 경기도 평택 고덕국제신도시파라곤 84㎡형은 이달 6억4000만원에 거래돼 지난해 9월(9억8000만원) 대비 3억4000만원 하락했다. 그나마 최근까지 버티던 서울 강남 집값도 하락세로 돌아섰다. 송파구 잠실엘스 84㎡형이 지난달 22억5000만원에 거래돼 올 6월(24억원)에 비해 1억5000만원 하락했다. 세종·대전·대구 등지는 집값 하락세가 가팔라지고 있다. 세종 다정동 가온4단지e편한세상푸르지오 84㎡형은 지난달 7억3000만원에 거래돼 2020년 11월(11억2000만원) 대비 3억9000만원 하락했다.

지난해까지 이례적으로 집값이 폭등, 무주택자들이 고통의 늪에 빠진 것을 고려하면 완만한 집값 안정세(시장 연착륙)는 환영할 일이라는 게 각계의 공통된 인식이다. 문제는 올 들어 대내외의 각종 위기 징후로 한국 경제에 적신호가 켜진 상황에서 집값이 폭락, 부동산 시장이 장기 침체(시장 경착륙)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경우 가계부채 뇌관 등에 따른 국가적인 부담이 가중된다. 특히 최근 부동산 시장에선 소비심리가 극도로 위축되면서 거래량이 급감한 이른바 ‘거래절벽’ 현상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이 같은 거래절벽 현상은 집값 하락세를 폭락세로 바꿔 부동산 시장의 장기 침체를 유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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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반기 주택 거래량 작년의 반 토막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올 상반기 전국 주택 거래량은 31만260건으로 지난해 상반기(55만9323건)에 비해 44%가량 감소했다. 반 토막 난 셈이다. 매물이 나와도 지난해처럼 적극 매수하려는 수요가 없다. 국토연구원은 이달 보고서에서 국내 부동산 시장이 올 5월부터 본격적인 하락 국면에 접어들었고, 하반기엔 집값이 더 내려갈 것이라고 분석했다. 부동산 시장의 소비심리 지수와 거시경제 여건 등의 압력 지수를 종합(K-REMAP)한 결과 올 6월 87.9포인트로 지난해 6월 139.6, 12월 111.4를 각각 기록했을 때보다 하락세가 두드러진 것을 근거로 제시했다. K-REMAP은 115 이상일 때 상승장, 94 이하일 때 하락장을 가리킨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일각에선 최근 분위기가 금융위기 여파로 거래량이 줄면서 수년간 집값 하락세를 불러왔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와 비슷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장기 침체 국면의 초입인 게 아니냐는 것이다. 가파른 인플레이션(물가 상승)과 기준금리 인상, 글로벌 공급망 대란 등이 겹치면서 경제 위기론이 팽배한 올해 상황과 앞으로의 쉽지 않을 극복 여정을 고려하면 2008년 이후 수준의 부동산 혹한기(酷寒期)가 재현될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양지영 양지영R&C연구소장은 “세계적인 경제 위기라는 점뿐 아니라 원자재 가격 급등, 진보 정부 하에서 수년간 공급 부족에 따른 집값 폭등 후 보수 정부로 넘어왔다는 점 등이 금융위기 때와 매우 닮았다”고 말했다.

실제로 중앙SUNDAY가 이달 1~6일 부동산·건설·도시공학 등 전공 교수, 관련 국책·민간 연구기관, 부동산 개발업 관계자 등 부동산 전문가 20명을 대상으로 부동산 시장 전망에 대해 물었더니 전문가의 75%(15명)가 부동산 시장을 ‘비관적’이라고 전망했다. ‘보통’이라는 응답이 20%(4명), ‘낙관적’이라는 응답은 5%(1명)에 그쳤다. 전문가 대부분이 부동산 시장이 이미 침체 단계에 접어든 것으로 진단한 동시에, 이 침체가 당분간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고 본 것이다. 윤수민 NH농협은행 부동산전문위원은 “집값이 고점에 이르렀다는 사회적 인식이 확산한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현재 부동산 시장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변수로 기준금리 인상을 꼽았다. 김덕례 주택산업연구원 주택정책실장은 “금리 인상과 함께 입주 등 공급 물량의 변화, 지난 수년간 가팔랐던 집값 상승세에 따른 피로감 확산 등이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거래량 감소와 집값 하락이 본격화된 최근의 주택시장 분위기를 놓고 보면 2008년 금융위기 초입 무렵과 비슷하다. 정권 교체로 부동산 정책이 일대 전환기를 맞았다는 점, 코로나19 팬데믹의 진정과 우크라이나 사태 등으로 금융위기 직전처럼 기록적인 인플레이션 상황이 빚어진 점 등도 그때와 유사하다. 이 인플레이션 때문에 올 들어 주거용 건물 건설 공사비용이 급등한 점도 2008년과 유사하다.

기준금리 2008년과 정반대로 움직여

그런데 전문가들은 2008년과 지금의 상황이 비슷한지를 묻는 질문에는 ‘비슷하지 않음’(40%, 8명)과 ‘매우 비슷하지 않음’(10%, 2명)을 더 많이 선택했다. ‘보통’(15%, 4명)이라는 응답자까지 고려하면 2008년과 비슷하다고 본 응답 비율을 앞섰다. 2008년 상황과 ‘비슷함’(20%, 4명) 또는 ‘매우 비슷함’(15%, 3명)을 선택한 응답자는 전체의 35%였다. 2008년처럼 주택시장이 침체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는데 2008년과는 차이가 있다는 인식은 크게 두 가지 이유 때문으로 풀이된다. 우선 2008년과 현재는 외형적인 차이가 있다. 김경민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는 “금융위기 이전엔 기준금리가 5%에 달했기에 금융위기가 닥친 뒤 (금리를) 2%대로 크게 인하할 수 있었다”며 “지금은 경제 위기 국면이지만 금리를 인상해서 인플레이션을 잡아야 하는 상황이라 그때와 비슷하지 않다”고 말했다. 기준금리가 2008년과는 정반대로 움직이고 있다는 얘기다.

그래픽=남미가 nam.miga@joongang.co.kr

그래픽=남미가 nam.miga@joongang.co.kr

주택시장의 질도 2008년과는 좀 다르다. 국토부에 따르면 2008년엔 전국에서 총 16만5599가구의 미분양 물량이 발생했다. 그런데 올 6월 기준 전국 미분양 물량은 2만7910가구다. 김승배 피데스개발 대표는 “2008년 당시엔 (2005년부터 시행된) 분양가상한제 회피 물량, 고분양가가 책정된 대규모 분양이 있어서 미분양 물량이 16만 가구에 달하는 공급과잉이 빚어지던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최근엔 문재인 정부가 주택 공급보다는 각종 규제를 통해 주택 수요를 줄이는 데 정책 초점을 맞추면서 공급이 크게 부족한 상황이 이어졌다. 그러다 보니 1년 전보다 44%가량 감소한 전국 주택 거래량에 비해 집값 하락 수준은 2008년보다 미미하다. KB국민은행에 따르면 올해 수도권 아파트 매매가격 변동률은 5월까지 ‘상승’을 유지하다 6월 들어 0.04% 내렸다. 7월에도 0.12% 하락했다. 서울의 ‘강남 불패’도 아직까지 비교적 유지되고 있다. 강남 3구(서초·강남·송파구) 가운데 송파구 정도만 눈에 띄는 집값 하락 사례가 있었고, 강남·서초구는 일반적으로 서울·경기 또는 전국 집값 하락세에 비해 미미한 하락률을 보이고 있다. 서초구의 경우 지난달까지만 해도 집값이 오히려 상승세를 보였다. 반면 2008년에는 서울 강남권의 하락장 시작이 뚜렷했다. 2008년 약 15억원 하던 강남의 한 아파트는 몇 년 뒤 7억~8억원까지 떨어지기도 했다.

이 때문에 전문가 65%(13명)는 ‘2008년 이후처럼 부동산 시장이 장기 침체되진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손재영 건국대 부동산대학원 교수는 “현 시점에서 금융위기 수준의 강한 경제 위기 조짐까진 나타나지 않고 있다”며 “금융위기 이후처럼 집값이 크게 하락하거나 침체가 장기화되진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다만 침체 수준이 ‘상당히 비슷할 것’(25%, 5명) 또는 ‘어느 정도 비슷할 것’(10%, 2명)이라는 응답도 적지 않았는데, 이들 역시 금융위기 때보단 침체 강도가 덜할 것으로 내다봤다. 이들에게 침체기가 어느 정도 이어질지를 물었더니 4명이 ‘3~5년’이라고 답했고, 2명은 ‘6~7년’, 1명은 ‘1~2년’이라고 응답했다. 금융위기 이후엔 2014년까지 6년 이상 침체가 이어졌다. 3~5년 침체를 예상한 권대중 명지대 교수는 “대외 경제의 불확실성과 내수 경제 침체 가능성, 인플레이션과 금리 인상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3~5년 정도 침체가 불가피해 보인다”고 분석했다.

전문가 55% “집값 10%대 이하 하락”

향후 집값(서울 기준)이 2008년 이후보다 완만하게 하락할 것으로 내다본 전문가도 가파른 하락을 예상한 전문가보다 많았다. 가장 많은 30%(6명)의 응답자가 고점 대비 ‘1~9% 하락’을 예상했고, ‘10%대 하락’이라는 예측이 25%(5명)로 뒤를 이었다. ‘반등 후 상승’을 내다본 응답자도 20%(4명)나 됐다. 윤지해 부동산R114 수석연구원은 “고가 부동산 시장인 서울 중심지나 핵심지의 재건축 사업이 2008년 이후 같은 큰 폭의 하락 발생을 방지한다”며 “서울 집값이 짧은 조정기를 거쳐 반등 후 상승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20%대 하락’과 ‘30%대 하락’을 점친 응답자는 각 10%(2명), ‘40%대 하락’을 예상한 응답자는 5%(1명)뿐이었다.

전문가들은 시장 침체의 강도보다도 문재인 정부가 강화한 규제로 인해 주택시장이 왜곡돼 있다는 점을 우려한다. 주택 공급 대신 규제로 일관하면서 집값이 급등해 이 과정에서 상대적으로 소득이 적은 20~30대 ‘MZ세대’가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은) 대출을 통해 무리하게 집을 샀고, 이제는 금리 인상으로 MZ세대의 상환 부담이 가중되고 있다. 집값이 최근 하락세로 돌아섰지만, 최근 5년간 가파르게 오른 탓에 무주택자의 내 집 마련은 여전히 요원하다. 그렇다면 전·월세 등 임대차 시장이라도 안정적이어야 하는데, 주택 공급의 지연과 임대차법 개정 등으로 몇 년째 불안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 수년간 무주택자들을 괴롭혔던 기록적인 집값 폭등세가 꺾인 것은 반가운 일이지만, 문제는 간단하지 않다. 우리 국민 전체의 순자산 중 3분의 2 이상(75.3%)은 주택 등 부동산에 묶여 있다(주택 52.6%, 주택 이외 부동산 22.7%). 이런 상황에서 부동산 시장이 경착륙하면 한국 경제의 활력도는 떨어질 수밖에 없다. 가계부채 문제가 악화하면서 소비 침체와 내수 불황으로 이어질 공산이 커지기 때문이다. 윤 수석연구원은 “부동산 시장 연착륙을 위해서는 실수요까지 옥죄고 있는 대출이나 세금, 공급 규제와 같은 비정상적인 것부터 정상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오지윤 한국개발연구원 부동산연구팀장은 “지금의 거래절벽은 금리에 대한 불확실성, 나아가 인플레이션에 대한 불확실성에서 비롯된 측면이 강하다”며 “정부가 기대인플레이션을 안정화하려는 노력을 이어가야 한다”고 덧붙였다.

설문에 응답해주신 분(가나다 순)

고준석 제이에듀투자자문 대표,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 김경민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 김덕례 주택산업연구원 주택정책연구실장, 김승배 피데스개발 대표, 김인만 부동산경제연구소장, 김학렬 스마트튜브 부동산조사연구소장,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수석전문위원, 박합수 건국대 부동산대학원 겸임교수, 서진형 경인여대 부동산학과교수, 손재영 건국대 부동산대학원 교수, 양지영 양지영R&C연구소장, 오지윤 한국개발연구원 부동산연구팀장, 우병탁 신한은행 WM컨설팅센터장, 윤수민 NH농협은행 부동산전문위원, 윤지해 부동산R114 수석연구원, 이창무 한양대 도시공학과 교수, 이현철 아파트사이클연구소장, 정민하 부동산지인 대표,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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