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을 중심으로 발생한 80년만의 폭우에 차량 침수 피해가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다. 사흘여 만에 집계된 손해액만 1200억원을 넘었다. 외제차 침수가 이어지며 피해액이 커진 영향이다.
손해보험협회에 따르면 11일 낮 12시 기준 각 보험사에 집계된 차량 침수 피해 건수는 9189건, 추정 손해액은 1273억7000만원이다. 차량별로는 국산차가 6156대, 손해액 528억3000만원이고 수입차가 3033대, 손해액 745억4000만원으로 집계됐다.
업계 1위인 삼성화재의 경우 지난 8일부터 11일 낮 12시까지 접수된 피해 건수만 3399건, 추정 손해액이 551억8000만원 수준이다. 국산차가 2073건에 추정 손해액이 206억1000만원이고, 외제차가 1326건에 추정손해액 345억7000만원이다.
태풍이나 집중 호우로 차량 침수 피해가 발생하는 경우도 그동안에 많았다. 지난 2020년 7~9월에도 장마와 태풍이 겹치며 차량 2만1194대가 침수돼 1157억원의 피해가 발생했다. 다만 이번에는 단기간의 폭우에도 큰 피해가 발생했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강남 지역에서 침수된 고가 차가 많다 보니 일반적인 장마나 폭우보다는 피해액이 크다”고 말했다.
자동차 보험사가 내줘야 할 보험금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며 손해율이 급증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손해율은 보험사로 들어온 보험료 대비 나간 보험금 비율을 뜻한다. 통상 손해율 상승은 보험료 인상 요인이다.
올해 상반기 상위 4개 손해보험사(삼성화재·현대해상·DB·KB)의 올해 상반기 손해율은 75.9~78% 수준이다. 보험업계에서는 이번 침수로 8월 손해율이 80%를 넘어설 것으로 보고 있다. 보험업계는 적정 손해율을 80% 선으로 보고 있다.
다만 이번 침수 피해가 자동차 보험료 인상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작다는 게 보험업계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보험사는 한 해 동안의 손해율 등을 토대로 보험료율을 정한 뒤 보험개발원의 검증을 받는 방식으로 보험료를 정한다. 다만 자동차보험은 의무보험 성격이 강한 만큼 보험사가 일방적으로 보험료 인상 여부를 결정할 수 없고, 금융당국의 입김이 상당 부분 작용한다.
특히 올해에는 금융당국이 자동차 보험료 인상을 용인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자동차보험료는 소비자물가지수 구성 품목인 만큼 보험료가 오르면 가뜩이나 치솟은 물가에 기름을 부을 수 있다. 국내 자동차 보험에 가입된 차량이 2000만대가 넘는 만큼 체감 폭도 크다.
금융당국은 내년부터 경상 환자가 4주 이상의 치료를 받을 경우 진단서 제출을 의무화하게 하는 등 불필요한 보험금 누수를 줄여 보험료 인상 요인을 최대한 막겠다는 방침이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피해 규모가 확정되지 않은 데다, 보험료는 지난 1년간 손해율 등을 토대로 산정해야 할 문제”라고 말했다.
코로나19 확산 등으로 손보사가 자동차 보험에서 이익을 본 것도 보험료 인상을 막는 요인이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보험사들이 자동차보험에서 본 영업이익은 3981억원으로 2020년(-3799억원)보다 크게 늘었다. 2017년 이후 4년 만에 흑자 전환이다. 지난해 자동차보험의 손해율이 81.5%로 떨어진 영향이다.
금융당국은 이런 손해율 등을 근거로 보험사에 2%대의 보험료 인하를 요청했고, 손보사들은 지난 4월 자동차보험료를 1.2~1.4% 인하했다. 올해 상반기 자동차 보험 손해율은 지난해보다 더 하락했다. 이날 실적을 발표한 삼성화재의 경우 지난해 상반기 손해율은 79%였는데, 올해 상반기는 76.5%를 기록했다.
게다가 보험사들이 예상하지 못한 초과 손해 발생에 대비해 초과손해액 재보험(XOL) 등에 가입하고 있는 만큼 실제 부담액은 피해액보다는 적을 전망이다. 삼성화재의 경우 500억원이 넘는 손해액이 발생했지만, XOL 등을 감안했을 때는 145억 원 정도만 삼성화재가 부담하면 된다.
이런 이유로 보험업계에서도 올해 자동차 보험료 인상은 힘들 것이라는 입장이 다수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올해 (보험료) 추가 인하를 걱정했어야 하는 분위기였던 만큼 이번 침수로 보험료 인상이 이뤄질 것 같지는 않다”며 “다만 손해율이 다시 오르는 추세에서 침수피해로 많은 보험금이 지급돼 추가 인하 여력도 사라진 것 아니냐”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