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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 사태, 강 건너 불 아니다...학익진 같은 대비책 세워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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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김민석
김민석 기자 중앙일보 전문기자



대만 사태로 앞당겨진 미·중 충돌 시나리오

푸틴·시진핑 만난 뒤 우크라이나 침공 이어 대만사태 벌여중, 대만 포위해도 미 해군 항모·이지스함 적극 개입 어려워
대만 사태 나면 북한도 핵·미사일로 도발할 가능성 있어
불안해진 국제정세, 이순신처럼 선제적으로 전략 세워야

김민석 군사안보연구소 선임위원

김민석 군사안보연구소 선임위원

지난 주말 영화 ‘한산: 용의 출현’(감독 김한민)을 보았다. 수년 전 같은 감독이 제작한 영화 ‘명량’을 관람했기에 기대를 많이 했다. 이순신 장군(박해일 분)이 고심 끝에 창안한 학익진(鶴翼陣) 전술은 대승을 거두었다. 이순신의 함대는 학익진 전법으로 바다에 성을 쌓듯이 왜군(일본군)의 함대를 둘러싼 뒤 집중포화를 쏟아부었다. 왜군 함대는 순식간에 궤멸했다. 이순신의 완벽한 승리였다.
영화 ‘한산’은 1592년 8월 12일 남해안 한산도 앞에서 벌어진 한산대첩을 재연했다. 영화에도 나오지만 왜군은 그해 4월 13일 부산포에 상륙한 지 4개월 만에 평양성까지 파죽지세로 진격했다. 선조는 한양을 떠나 의주로 피신했고 국토는 초토화됐다. 왜군이 서해안과 호남지역만 점령하면 전쟁이 끝나는 절체절명의 순간이었다. 왜군의 기세는 하늘을 찔렀다. 그때 이순신 장군이 나타났다.

한산대첩 당시 이순신 장군이 운영한 학익진도로 우수영전진도첩에 나와있다.

한산대첩 당시 이순신 장군이 운영한 학익진도로 우수영전진도첩에 나와있다.

해상에서 처음 사용한 학익진 전법
당시 왜군은 해상에서의 학익진 전법은 듣도 보도 못했다. 학익진은 지상전투에서나 사용했었다. 이순신 장군은 창의적인 학익진 외에도 가능한 모든 조건을 유리하게 활용했다. 우선 학익진으로 왜군 함대를 완전히 포위한 뒤, 왜군 전함이 조선 수군 전함인 판옥선에 설치된 함포 유효사거리 안에 들어올 때까지 기다렸다. 왜군이 조총을 쏘면 방패로 막았다.
그러다가 함포 유효사거리에 완전히 들어오자 판옥선은 일시에 함포를 발사했다. 조총은 함포보다 사거리도 짧고 파괴력은 없다. 인명살상용이다. 그러나 함포는 왜군 전함 자체를 파괴했다. 밑바닥이 U자형으로 평평해 제자리 선회가 쉬운 판옥선을 좌우로 돌려가며 함포를 쐈다. 판옥선의 좌측에 설치된 함포를 쏘는 동안 우측 함포에 포탄을 장전하면서 판옥선을 돌려 곧바로 우측 함포를 발사하는 식이다.
단단한 소나무(적송)로 만든 판옥선과 거북선은 상대적으로 무른 삼나무나 전나무로 제작한 왜선에 충돌해 파괴하기도 했다. 이른바 충파(衝破)전술이다. 거북선이 왜군 함대 속에 들어가 좌충우돌하며 함포를 쏴 왜군 함대를 교란했다. 지리적 이점도 최대한 이용했다. 이순신은 좁은 해협인 견내량에 숨어있는 왜군 전함을 학익진을 펼 수 있는 한산도 앞바다로 유인해 격멸했다.
이순신의 전술과 전략은 천재적이다. 그래서 임진왜란과 이어진 정유재란의 7년 전쟁에서 23전 23승을 거두었다. 이런 연전연승은 세계 전쟁사에서 유일무이하다. 학익진을 해상에서 처음 사용해 완승한 한산대첩을 세계 4대 대첩에 넣는 이유다. 명량해전에선 겨우 13척으로 왜군 전함 133척에 승리했으니 그 평가는 말할 필요도 없다.

해군사관학교에 전시된 거북선

해군사관학교에 전시된 거북선

이순신은 한산대첩으로 왜군의 진격을 중단시켰고, 명량해전에서 왜의 수군을 와해시켰다. 마지막 노량해전은 전쟁을 끝냈다. 러일전쟁에서 러시아 발트함대를 격멸한 일본 함대사령관 도고 헤이아치로는 ‘(트라팔가르 해전에서 승리한) 넬슨 제독에 비견되는 군신이다’는 언론의 칭찬에 “군신에 어울리는 인물이 있다면 이순신이다”고 말했다. (이학수 전 해군사관학교 박물관장)
이순신의 위대한 승리는 우연히 이뤄진 게 아니다. 그는 임진왜란 1년 2개월 전인 1591년 2월 전라좌수사로 임명되자 거북선 건조에 들어갔다. 전쟁에 대비한 것이다. 3척으로 추정되는 거북선은 임진왜란이 발생하기 하루 전에 완성됐다. 이순신 장군이 선조에게 올린 장계는 “신이 일찍이 왜적의 난리가 있을 것을 걱정하며 특별히 거북선을 만들었사온데...”라고 적고 있다(김종대, 『여해 이순신』).

중국의 대만 포위 훈련에 미국 대처 못 해
임진왜란을 장황하게 얘기한 이유는 이런 전쟁이 반복될까 우려해서다. 임진왜란 이후 한반도 주변에서 전쟁은 병자호란(1637년)-청일(1894년) 및 러일전쟁(1904년)-태평양전쟁(1941년)-한국전쟁(1950년) 등으로 이어졌다. 기우일 수도 있지만 우크라이나 전쟁과 대만 사태를 보면 국제 상황이 심상치 않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베이징 동계 올림픽 직전인 2월 4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만난 뒤, 같은 달 24일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 의장의 지난주 대만 방문에 대한 중국의 반응은 도를 넘었다. 중국은 작정한 듯이 대만을 포위해 미사일과 야포를 쐈다. 푸틴과 시진핑이 짠 것처럼. 중국은 전에 없이 강한 발톱을 드러냈다.
그런데 중국의 이번 대만 포위 훈련사격에서 나타난 문제는 미국이 아무런 조치도 할 수 없었다는 점이다. 중국은 대만 주위에 6개의 사격 표적 구역을 설정해 미사일과 야포를 쏘았고, 대만 영공을 침범하기도 했다. 더구나 사격 표적 구역 가운데 3곳은 대만 영해에 겹쳐 있었다. 명확한 주권침해다. 중국이 대만을 주권국으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의미다. 그런데도 대만이나 미국은 관망만 했다.
만약 이런 사태가 다른 나라에서 발생했다면 피해국은 응분의 무력조치를 취했을 것이다. 어쩌면 중국은 대만이 대응하기를 바랐을지도 모른다. 혹시라도 대만이 군사적으로 받아치면 중국은 몇 배로 대만을 공격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그래도 미국이 쉽사리 개입할 수 없다는 게 현 상황이다. 미 해군이 중국 탄도미사일 위협을 감수하고 대만 사태에 개입할 수 있는 태세가 아직 부족해서다.
중국은 미 해군 항공모함이나 이지스 구축함이 개입해올 경우에 대비해 내륙에 탄도미사일을 대거 배치해두고 있다. 극초음속 미사일 둥펑-17을 비롯해 항모 킬러로 불리는 둥펑-21D 등은 미 항모와 구축함을 격침할 능력이 있다.

중국 탄도미사일 위협에 미 항모 접근 못 해
중국이 이번 사격훈련에서 둥펑 미사일을 11발이나 쏜 이유도 미 해군의 접근을 경고한 조치로 보인다. 중국 인민해방군 동부전구의 스이 대변인은 지난 5일 둥펑 미사일 발사에 대해 “정밀타격과 지역 거부능력을 점검했다”고 말했다. 미 해군이 유사시 대만을 돕기 위해 진입하면 둥펑 미사일로 정밀 타격한다는 말이다. 실제로 미 항모 로널드 레이건함은 필리핀 인근에 비상 대기했다.
미국은 이런 상황이 빨라야 2025년, 늦으면 2030년쯤 발생할 것으로 생각했다. 중국이 2025년 이후부터 제1도련선 안으로 미 해군 진입을 막는다고 한다. 이른바 반접근/거부(A2AD)전략이다. 2030년은 중국이 대만에 상륙작전 능력을 갖추는 시기다.

그래서 미국은 스텔스 구축함과 무인 함정으로 구성된 유령함대(Ghost Fleet)를 2025년쯤 창설할 계획이었다. 중국이 대만을 공격하면 미국은 항모타격단을 보내기 전에 유령함대를 선봉에 세워 중국 함정과 내륙 탄도미사일 기지를 제거한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펠로시의 대만 방문을 계기로 중국이 제1도련선을 차단했고, 미 해군 세력은 접근도 막았다. 중국이 선수를 친 셈이다.
이번 사건으로 미국은 큰 충격에 빠졌을 것으로 보인다. 바이든 미 대통령이 “중국이 긴장을 고조시키는 추가 행동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지만 형세가 이미 기울어졌다. 중국이 앞으로도 대만을 얼마든지 괴롭힐 수 있다는 게 증명됐다.

중국의 바시 해협 차단은 해상수송로 위협
중국이 이번 군사훈련을 감행하면서 바시 해협을 일시 차단한 것은 보통 심각하지 않다. 중국 국방대학교 멍샹칭 교수는 지난 5일 언론 인터뷰에서 “대만 남부 해역에 설정한 2개의 훈련구역은 대만과 필리핀 사이의 바시 해협을 봉쇄하는 의미다”라고 말했다. 바시 해협은 동남아·인도·중동·아프리카·유럽을 오가는 한국과 일본의 해상물동량이 지나는 관문이다. 중국이 미국의 견제를 받지 않고 한·일의 해상수송로를 차단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이번 사건은 강 건너 불이 아니다. 미·중 군사적 긴장은 커졌고, 충돌 예상 시기도 앞당겨질 것으로 판단된다. 러시아와 중국의 군사행동에 북한까지 가세하면 사태는 더 심각해진다. 소련의 스탈린과 중국 공산당 마오쩌둥의 지원을 받아 북한 김일성이 한국전쟁을 도발했을 때와 유사한 형국이다.
 이젠 미국이 대비책 마련에 적극적으로 서두를 것이다. 일본도 복잡해진 국제정세에 대비하기 위해 헌법을 개정하고 방위비도 올릴 것이다. 한국은 대만 사태와 직접 연동돼 있다. 미국이 대만과 한반도에서 동시에 전쟁을 수행하기엔 한계가 있다. 한국이 자구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얘기다. 충무공 이순신의 거북선과 학익진처럼 창의적이고 치밀한 유비무환 전략을 세워야 한다.

☞제1도련선=필리핀~대만~오키나와 서쪽~일본 남부의 섬을 잇는 가상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