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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박순애 정책 논란…이번엔 외고 폐지, "당장 철회하라" 폭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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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공개적으로 폐지를 언급해 놓고 이제 와서 연말까지 논의하겠다니….”

7일 교육계의 한 인사가 외국어고등학교(이하 외고) 폐지 추진 논란에 대해 한숨은 내쉬었다. 박순애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지난달 29일 ‘화두’로 던진 외고 폐지가 거센 반발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교육부가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겠다”고 수습했지만, 논란은 더 커지는 양상이다. 앞서 만 5세 입학 추진을 던졌다가 고개를 숙였을 때와 비슷하다.

박순애 “외고 폐지” vs 학부모 “졸속 행정”

외고 학부모들은 “교육 선택권을 보장하라”며 시위에 나섰고, 외고 연합은 법적 대응을 예고했다. 이들은 윤석열 대통령이 대선 후보 때 “학생들의 선택권을 위해 고등학교가 다양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힌 것을 근거로 정부 정책의 모순점을 지적하고 있다.

전국외고학부모연합회 회원들이 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외고 폐지 정책을 철회하라"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뉴스1

전국외고학부모연합회 회원들이 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외고 폐지 정책을 철회하라"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뉴스1

외고 폐지 논란은 박 장관이 지난달 29일 대통령 업무보고 사전 브리핑에서 “자사고는 존치하되 외고는 폐지하거나 일반고로 전환하는 것을 검토한다”고 밝힌 이후 촉발됐다. 같은 날 벌어진 만 5세 입학 논란에 잠시 가려졌다가 뒤늦게 폭발력을 내고 있다. 전국외고학부모연합회는 지난 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토론회나 공청회를 거치지 않은 교육부 장관의 일방적인 발표는 졸속 행정”이라고 비판하며 외고 폐지 방침 철회를 요구했다. 연합회는 “과학고, 영재고, 자율형사립고 유지의 명분이 교육 자율성과 다양성에 있다면 정책의 일관성 유지를 위해 외고와 국제고 역시 존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학부모들은 윤 대통령의 대선 공약과 달리 박 부총리가 외고 폐지 방침을 갑자기 언급했다고 비판하고 있다. 당시 박 부총리는 자사고는 존치하면서 외고를 폐지하는 이유에 대해 “세상이 변했기 때문에 외국어 교육을 목표로 하는 특수목적고는 달라져야 한다”며 “외고를 일반 교과 특성화고로 전환하는 방안을 고려 중”이라고 설명했다. 지난 1일 정례브리핑에서도 최성부 교육부 대변인은 “외고의 경우 미래사회에 부합하지 않는 측면이 있어 폐지 또는 외국어 교과 특성화 학교 등으로 전환을 검토한다”고 밝혔다. 국제고에 대해서는 “국제 전문 인재 양성을 위한 국제고는 충분한 검토를 거쳐 (존치 여부를) 발표하겠다”고 했다. 이에 전국 30개 외고 교장들은 1일 “외고 폐지 검토계획을 즉시 철회하라”며 법적 대응을 예고했다. 외고학부모연합은 박 부총리의 사퇴를 요구했다.

박순애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4일 오전 정부세종청사 브리핑룸에서 2학기 방역과 학사 운영 방안 계획을 설명한 뒤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박순애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4일 오전 정부세종청사 브리핑룸에서 2학기 방역과 학사 운영 방안 계획을 설명한 뒤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교육부 “연말까지 논의” 수습에도 혼란 커져

교육부가 지난 5일 보도설명자료를 내고 “정책연구, 토론회 등 각계각층의 다양한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고, 사회적 논의를 충실히 거쳐 고교체제 개편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설명하면서 논란이 확산됐다. “외고 폐지는 확정된 정책이 아니다”라는 취지의 설명에 “확정된 계획이 아니면 부총리가 언급하지 말았어야 한다”는 비판이 나오면서다. 교육부는 외고·국제고의 존치 여부를 담은 고교체제 개편 세부 방안을 12월에 발표할 계획이다. 한 교육계 관계자는 “논란이 큰 사안을 성급하게 발표해 화를 불렀다”고 꼬집었다.

외고 학부모들은 오는 11일 서울 중구 이화여자외고 강당에서 외고 폐지에 반대하는 기자회견을 열 계획이다. 전국외고학부모연합회 측은 “용산 대통령실 앞에도 갈 것”이라며 전의를 불태우고 있다. 외고 폐지 철회 국민동의청원은 지난 1일 게시돼 7일 오후 5시 1만5562명의 동의를 받았다. 외고 1학년 재학생이라고 밝힌 청원인은 “비싼 학비와 외고 졸업생의 저조한 어문계열 진학률 때문에 외고를 폐지해야 한다지만, 외고보다 훨씬 비싼 자사고·국제고가 많다. 외고 학생들이 왜 반드시 어문계열 학과에 진학해야 하는지도 의문”이라고 주장했다.

지난 2019년 7월 23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숭문고등학교 학부모들이 자율형사립고등학교 재지정 취소 철회를 촉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뉴스1

지난 2019년 7월 23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숭문고등학교 학부모들이 자율형사립고등학교 재지정 취소 철회를 촉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뉴스1

일부 전문가들은 특정 학교의 설립과 폐지는 정부가 일방적으로 결정할 문제가 아니라고 지적했다. 문재인 정부가 폐지한 자사고를 윤석열 정부가 부활시키는 식의 단기 정책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의 교육부는 자사고·외고가 설립 취지와는 달리 학교 간 서열을 만들고 사교육 부담을 키운다는 이유로 특목고를 일반고로 전환하는 정책을 추진했다. 반면, 윤석열 대통령은 후보 시절 특목고 존치, 학생의 선택권, 수월성 교육 등을 강조했다. 홍후조 고려대 교육학과 교수는 “자사고와 외고 등 특정 학교의 설치와 폐지 권한은 중·장기 과제를 담당하는 국가교육위원회가 결정하도록 권한을 분산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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