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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사] 핀란드, 병원·학교 대체복무 다양…한국 “사회적 합의 먼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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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대체복무 리포트] 해외 사례와 한국 논의는

지난 6월, 예비군인 베이코 티모넨(왼쪽)은 핀란드 라핀야르비 민간대체복무센터에서 대체복무 교육을 받았다. 미코 레이요넨 민간대체복무센터장(오른쪽)도 대체복무자 출신이다. 여성국 기자

지난 6월, 예비군인 베이코 티모넨(왼쪽)은 핀란드 라핀야르비 민간대체복무센터에서 대체복무 교육을 받았다. 미코 레이요넨 민간대체복무센터장(오른쪽)도 대체복무자 출신이다. 여성국 기자

핀란드는 과거 100여년간 러시아의 지배를 받았고, 1939년 ‘겨울 전쟁’에서 소련에 영토 10%를 빼앗겼다. 핀란드에서 나토 가입 찬성 비율은 몇 년간 20~30%였는데,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후인 지난 5월 76%(공영방송 윌레)를 기록했다. 징병제 국가인 핀란드는 대체복무제를 함께 운영한다. 지난 6월 말 핀란드의 대체복무 현장을 찾았다.

핀란드는 1931년 대체복무법에 의해 양심적 병역거부를 처음 인정했다. 핀란드 헌법은 ‘양심에 근거한 군사적 국방참여를 면제받을 권리는 법률로 정한다’(127조)고 명시한다. 핀란드의 대체복무제는 국내 병역법상의 사회복무요원과 대체복무요원이 통합된 제도로 볼 수 있다. 전문연구요원, 산업기능요원 같은 제도는 없다. 대체복무기간은 군 복무(최소 165일)의 약 2배인 347일로, 합숙이 아닌 출·퇴근 형태다. 신념에 따라 집총 거부 신청서만 내면 심사 없이 대체복무를 할 수 있다.

핀란드 민간대체복무센터에 따르면 징집 대상 남성의 7%인 2000명가량이 매년 대체복무를 신청하고, 약 1300명이 복무한다. 지난해 신청자는 2022명이었는데, 올해는 러시아가 전쟁을 일으키면서 상반기에만 1200명가량이다. 지난해보다 20% 늘었다. 대체역 편입을 신청하는 예비군도 급증해 핀란드 정부와 언론이 이를 주목하고 있다.

핀란드 국방부 국방정책 담당자 사미 누르미(55) 준장은 대체복무로 인한 병역기피 우려에 대해 “징집 대상 남성 70% 이상은 군 복무를 하고, 즉시 전력감 예비군이 28만명이다. 대체복무자는 1000명대에 불과하다. 핀란드는 군 복무 만족도가 높아 매년 일정 비율로 현역 수가 꾸준히 유지돼 걱정 없다”고 말했다. 이어 “국방에 인적·물적 자원 투입을 늘리면서 동시에 사회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핀란드에서는 2019년 법 개정으로 이전에 병역 면제였던 여호와의증인 신도들도 군 복무를 하게 됐다. 여호와의증인의 대체복무는 매년 400명 이내. 나머지 1000명 정도는 개인적 신념에 따른 경우로 추산한다.

핀란드에선 “대체복무, 징벌 아닌 기회”

핀란드 북부 이발로 노인 요양시설에서 대체복무를 수행 중인 사물리 사이니오. [사진 사물리]

핀란드 북부 이발로 노인 요양시설에서 대체복무를 수행 중인 사물리 사이니오. [사진 사물리]

대체복무 신청자는 복무지로 가기 전 4주 동안 군사훈련 대신 5가지 교육과정(①화재구조·민간보호 ②폭력예방 ③환경과 사회 ④일상안전 ⑤시민참여) 중 하나를 이수한다. 미코 레이요넨 민간대체복무센터장은 “대체복무도 사회에서 중요한 일을 한다는 인식을 모두 공유한다”며 “일반인을 고용하면 1년에 4만 유로지만 대체복무자는 1만 유로면 된다”고 말했다.

코로나19가 한창이던 지난해 2월부터 1년간 사물리 사이니오(29)는 핀란드 북부 이발로 지역 노인 요양시설에서 대체복무를 했다. 사이니오는 “노인 30명을 관리하기 위해 간호사가 3교대로 일했지만 일손이 부족했다. 대체복무자가 그 공백을 채웠다”고 말했다.

지난 6월 30일 만난 대체복무자 칼레 라팔라이넨(19)은 탐페레 종합병원 소화기·비뇨기 병동에서 환자가 사용한 병실과 휠체어를 정리한다. 함께 일하는 아리아 발리바라(60) 수간호사는 “의료진이 바쁠 때 잡무를 처리하지 못하기 때문에 모두가 칼레 연락처를 갖고 있다”며 “사회에 필요한 분야에서 대체복무하는 게 모두에게 이익”이라고 말했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핀란드 민간대체복무센터에 따르면 이들처럼 의료·보건분야에서 복무하는 경우는 복무자의 23%로, 교육(33%)과 비영리 종교단체(26%)에 이어 세 번째로 높은 비중이다. 알토대 건물관리 보조로 대체복무 중인 라씨 바이니카이넨(24)은 “개인이 지망한 곳 중 하나에 배치되기 때문에 복무자 사이에 기피 분야가 따로 없어 형평성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관리자인 교직원 안니까오옐마(30)는 “핀란드의 대체복무제는 징벌이 아닌 기회다. 복무자가 왜 대체복무를 택했는지 아무도 묻지 않는다”고 했다.

“병역 공정성 측면 있어, 현역의견 중요”

대체복무자 출신인 파보 아르힌마키(46) 헬싱키 부시장은 “장애인학교 보조교사로 대체복무한 경험이 큰 정치적 자산이 됐다. 핀란드에서 대체복무는 특별한 선택이 아니다. 나토 가입 양해 각서에 서명한 외무장관도 대체복무자”라고 소개했다.

해외 대체복무제

해외 대체복무제

한편, 핀란드와 안보 상황이 다른 국내에서는 시행 초기인 대체복무제를 당장 개선하기보다 제도를 유지하고 점검하는 것이 먼저라는 지적이 있다. 전반기 국회 국방위원장을 지낸 민홍철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사회의 소외된 곳으로 복무 분야를 넓히는 등 현행 제도 개선 필요성이 있다”면서도 “복무 기간 3년이 아직 지나지 않아 개선 논의는 이른감이 있다. 실태 점검과 사회적 합의가 먼저”라고 말했다.

육군 중장 출신으로 후반기 국방위 여당 간사인 신원식 국민의힘 의원은 “3년 교정시설 합숙 복무라는 제도의 골격을 벌써 흔들어선 안 된다”고 말했다. 그는 복무지 확대 주장에 대해 “절충안이 아닌 후퇴안이나 다름없다”며 “병역은 공정성 측면에서 봐야 한다. 복무 중인 현역들 의견도 반드시 듣고 제도 개선 논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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