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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김종인, 尹취임날 이준석에 "미국서 사회과학 공부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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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윤석열 대통령의 취임식 당일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를 만나 “당분간 미국에 가서 공부하라”고 조언했다는 얘기가 정치권에 퍼졌다.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이 지난달 1일 서울 광화문 사무실에서 열린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김상선 기자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이 지난달 1일 서울 광화문 사무실에서 열린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김상선 기자

중앙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김 전 위원장은 윤 대통령의 취임식이 열렸던 5월 10일 이 대표와 오찬 회동을 했다. 이 자리에서 김 전 위원장은 이 대표에게 “당분간 미국에 가서 공부를 하고 오는 것이 좋겠다”고 말했다는 내용이다. 특히 김 전 위원장은 “학부를 공학을 했으니 이번에 미국에 가서는 사회과학을 공부하는 게 어떠냐”며 구체적인 진로 조언까지 했다는 얘기도 있다. 이 대표는 2007년 미국 하버드대에서 주전공으로 컴퓨터과학 학사 학위를 받았다.

김 전 위원장은 앞서 박근혜 전 대통령이 대선에서 승리한 직후인 2013년에도 이 대표에게 비슷한 조언을 했다고 그를 잘 아는 지인들이 전했다. 당시 이 대표는 박 전 대통령이 위원장을 맡았던 새누리당(국민의힘의 전신) 비상대책위원회의 비대위원직을 마친 뒤였다. 이 두 차례의 조언을 결과적으로 이 대표가 받아들이지는 않은 셈이다.

 김 전 위원장은 이 대표 스스로 “정치 기술을 그분께 배웠다”고 표현할 만큼 믿고 상의하는 ‘정치적 멘토’다. 정치권에선 드물게 이 대표에게 조언하거나 설득할 수 있는 친분이 있는 원로로 평가받는다. 이 대표가 당헌ㆍ당규까지 개정해가며 ‘이준석 지우기’에 속도를 내는 당에 대해 연일 비판 수위를 높이는 중인데, 김 전 위원장이 이런 이 대표 ‘달래기’에 나설 수 있다는 전망도 그래서 나온다.

김 전 위원장은 지난 달 18일 방송 인터뷰에서 이 대표에게 “나라면 지난 일 잊어버리겠다. 사람이 자꾸 자기가 한 것에 대해 생각하면 정신적으로 (편안하게)되지 않는다”고 조언하기도 했다.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국민의힘의 대선 총괄선대위원장을 맡았던 지난해 12월 7일 오전 서울 국회의사당에서 열린 중앙선대위 1차 회의에서 모두 발언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이준석 대표, 김 전 위원장, 윤석열 당시 대선 후보, 김병준 당시 상임선대위원장. 임현동 기자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국민의힘의 대선 총괄선대위원장을 맡았던 지난해 12월 7일 오전 서울 국회의사당에서 열린 중앙선대위 1차 회의에서 모두 발언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이준석 대표, 김 전 위원장, 윤석열 당시 대선 후보, 김병준 당시 상임선대위원장. 임현동 기자

특히 친윤계에선 당이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로 전환할 경우 이 대표가 법원에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할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하고 있다. 3일 당 상임전국위원회ㆍ전국위원회 의장을 맡고 있는 서병수 의원은 기자회견을 통해 5일 상임전국위, 9일 전국위를 열어 당헌을 개정한 뒤 비대위를 출범시키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그러나 당내에서도 “현 당헌ㆍ당규대로라면 애초에 비대위 출범이 불가능하다”(하태경 의원), “지금이 (비대위 출범요건인)비상상황이라고 보기 어렵다”(최재형 의원) 등 비대위의 정당성에 대한 비판이 쏟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 대표 역시 3일 직접 페이스북을 통해 “지지율 떨어지니 내놓은 해법이 이준석 복귀를 막겠다는 건데, ‘용피셜’하게 우리 당은 비상 상태가 아니다”라고 비꼬았다. ‘용피셜’은 ‘용산 오피셜(official)’을 함축한 말로, 대통령실의 의중을 의미한다는 게 측근들의 설명이다. 이 대표는 뒤이어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비대위 전환을 촉구한 초선 의원들의 지난 달 29일 성명서가 익명인 점을 들며 “정리해서 앞으로 모든 내용은 기록으로 남겨 공개하겠다. 곧 필요할 듯해서”라고 본격적으로 가처분 신청 가능성을 예고했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비대위 출범 자체가 ‘꼼수’인 만큼 이 대표가 가처분 신청을 하면 인용될 가능성이 있지 않느냐”고 말했다.

이때문에 당내에선 친윤계가 김 전 위원장을 일종의 ‘메신저’로 내세워 이 대표의 가처분 신청 자체를 저지하려 할 것이란 관측도 나왔다. 실제로 배현진 의원이 최고위원직 사퇴를 선언한 지난 달 29일 ‘윤핵관(윤석열 핵심관계자)’으로 꼽히는 정진석 국회부의장과 장제원 의원이 김 전 위원장을 만나기도 했다. 참석자들은 “단순한 식사 자리”라고 말을 아꼈지만, 여권에선 이 대표와 관련한 의미 있는 대화가 오갔을 가능성에 주목한다.

다만 김 전 위원장이 직접 비대위원장으로 등판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분석이 많다. 대선 과정에서 윤석열 대통령과 갈등을 빚는 등 ‘불편한 관계’이기도 하다. 김 전 위원장은 3일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나는 당 상황에 관심이 없다”고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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