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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불법공매도와 전쟁' 선포에도…개미들 "헛다리 짚는다" 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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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주식시장 신뢰 회복을 위해 정부가 야심 차게 내놓은 불법 공매도 대책이 빈축을 사고 있다.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 한국거래소, 대검찰청까지 나서 “예전과는 다를 것”이라고 호언장담했지만, 개인투자자는 “공매도(와 관련한 문제) 개선 의지는 없고, 피해가 발생한 뒤에 수사나 하겠다는 것”이라며 냉담한 반응이다.

한국거래소 공매도 종합상황실.[사진 한국거래소]

한국거래소 공매도 종합상황실.[사진 한국거래소]

공매도는 주가가 하락할 것으로 예상하는 종목의 주식을 빌려서 판 뒤, 일정 시점이 지나 주가가 내려가면 싼값에 주식을 사서 갚고 그 차익으로 수익을 얻는 투자 기법이다. 주가가 내려가야 수익을 낼 수 있어 그동안 개인투자자는 공매도를 주가 하락의 원흉으로 꼽았다.

금융당국은 코스피 200과 코스닥150 종목에 대한 공매도를 부분 재개했지만, 나머지 종목에 대해서는 2020년 3월 이후 2년 5개월째 공매도가 금지된 상태다. 외국인과 기관에 '기울어진 운동장'이란 논란 속 개인투자자가 공매도 완전 금지를 요구하고 있다. 국내 공매도 시장에서 기관‧외국인 비중은 98%, 개인은 2%에 불과하다.

정부의 대대적인 불법 공매도 대책에도 개인 투자자는 '헛다리 짚지 말라'는 반응이다. 공매도 상환 기간 제한 등 실제 필요한 조치가 빠진 탓이다. 개인 투자자는 그동안 기관‧외국인 투자자의 공매도 상환 기간을 개인 투자자와 같은 수준으로 제한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개인 투자자는 공매도를 위해 빌린 주식을 90일 안에 갚아야 한다. 반면 기관‧외국인 투자자는 상환 기한이 없다. 대신 증권사 등은 당사자 간 협의에 따라 기관과 외국인 투자자에게 언제든 주식을 갚으라고 요구하는 '리콜'이 가능하다. 다만 실제 '리콜'이 이뤄진 경우는 거의 없다는 게 업계의 이야기다.

이런 차이가 발생하는 데는 개인 투자자와 기관‧외국인 투자자가 공매도를 위해 주식을 빌리는 시장과 방식이 다르기 때문이다. 개인 투자자는 대주 시장, 기관‧외국인은 대차 시장에서 주식을 빌려야 한다.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주식을 빌릴 때의 담보도 다르다. 개인투자자가 주식을 빌리는 대주의 경우 주식매각대금이나 증권 등을 담보로 하지만, 대차의 담보는 국·공채나 주식 등이다. 주식을 빌릴 수 있는 대상 종목도 대주는 상장지수펀드(ETF) 등 250여개 정도의 상장 주식이지만, 대차는 2000여개 상장 주식과 상장 채권, ETF 등으로 이뤄져 있다.

금융당국은 기관‧외국인 투자자의 공매도 상환 기간을 제한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국제대차거래 표준약관(GMSLA)에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이윤수 금융위 자본시장정책관은 “기관‧외국인 투자자의 공매도 상환 기간을 제한하려면 대차 기간을 제한해야 하는데 국제 거래 관행상 어려운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공매도를 위해 주식을 빌릴 때 적용하는 담보 비율 차이도 논란이다. 개인 투자자는 140% 이상 담보가 있어야 하지만 기관‧외국인 투자자의 경우 대체로 105~120% 수준이다. 때문에 개인 투자자는 기관‧외국인 투자자의 담보 비율을 개인만큼 높여 형평성을 확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금융당국은 이번 대책에서 기관‧외국인의 담보 비율을 높이는 대신 개인의 담보비율을 120%로 낮췄다.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기관‧외국인에 대한 규제를 강화해 형평성을 맞춰달라고 했더니 오히려 공매도를 부추기고 있다”는 지적이 이어지는 이유다.

수기로 이뤄지는 공매도 주문 시스템도 불신의 이유다. 국내 공매도 주문은 주식을 빌리려는 사람이 전화나 메신저로 차입 협상을 한 뒤 그 결과를 자사 주식 대차 시스템에 수기로 입력한다. 그동안 적발된 불법 공매도(무차입 공매도) 대부분이 이 과정에서 주식 차입자의 입력 실수로 발생했다.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금융위에 따르면 결제 수량 부족 계좌나 선매도·후 매수 의심계좌 감리 건수는 2020년 33건에서 2021년 1735건으로 늘었다. 특히 무차입 공매도 의심계좌 적발 건수가 크게 늘었는데 대부분 유상증자 일정 착오나 대여주식 상환 착오, 종목명 착오 등이라는 게 금융위의 설명이다.

미국이나 유럽 등에선 대차 거래가 자동으로 이뤄진다. 주식 차입자와 대여자가 대차 종목이나 주식 수, 계약 일자 등을 확정하면 그 내용이 일련번호와 함께 기록으로 남는다. 실수로 인한 무차입 공매도가 발생할 수 없는 구조다. 주문 후에 공매도 주문 수량이나 시간을 비교하면 무차입 공매도 여부도 확인할 수 있다.

공매도 주문을 수기로 입력하는 국가는 한국과 대만, 동남아시아 등이다. 익명을 원한 증권업계 관계자는 “공매도에 대한 개인 투자자의 불신을 야기하는 가장 큰 이유가 조작이 가능한 수기 거래 방식”이라며 “공매도에 대한 근본적인 신뢰 회복을 위해서 자동화 시스템 구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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