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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 “비상상황” 비대위 힘실었지만 ‘사퇴’ 최고위원 참석 논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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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대통령 취임 80여일만에 초유의 지도부 붕괴 사태를 맞은 집권당이 1일 의원총회를 열고 비상대책위원회 전환에 패달을 밟았다. 이날 오후 국민의힘 의원 115명 중 89명이 참여한 의원총회에서 의원들은 비대위 전환이 필요하다는 데 뜻을 모았다.

양금희 원내대변인은 의총 직후 취재진과 만나 “당헌 96조의 ‘최고위 기능이 상실되는 등 비상상황이 발생할 경우 비대위를 둔다’는 대목과 관련해 현재 당이 비상상황이라고 보는지 의원들의 의견을 모았다”며 “한 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동의했다”고 말했다. 반대 입장을 밝힌 한 명은 초선인 김웅 의원이다.

1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국민의힘 의원총회에서 권성동 원내대표가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김성룡 기자

1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국민의힘 의원총회에서 권성동 원내대표가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김성룡 기자

국민의힘 당헌·당규상 비대위 구성 권한은 의총이 아니라 당 상임전국위원회 및 전국위원회에 있다. 최고위가 상임전국위와 전국위 소집을 의결하면 두 위원회가 차례로 비대위 구성 안건을 심의·의결하는 구조다. 상임전국위원은 약 40여명이고, 전국위원은 600명 이상이다.

이처럼 의총이 비대위 도입 과정에서 권한을 행사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의원 88명이 비상 상황이라는 데 동의한 만큼 '비대위로의 전환'이라는 흐름은 뒤집히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박형수 원내대변인은 “추후 전국위를 통해서 당헌·당규를 해석하고 비대위원장을 선출해 추인하는 절차를 밟을 예정”이라고 말했다.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1일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 참석하고 있다. 김성룡 기자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1일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 참석하고 있다. 김성룡 기자

전날 대표 직무대행직을 던진 권성동 원내대표는 굳은 표정으로 이날 국회 의총장에 들어섰다. 권 원내대표는 “당이 비상 상황에 직면했고, 이를 돌파하기 위해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며 “정상적인 당무 심의의결이 불가능한 상황”이라고 현 상황을 설명했다.

이어 “하루빨리 위기를 수습하고 국정을 뒷받침하기 위해 의총 전 초·재선, 3선 이상 중진과의 릴레이 간담회를 했고 혼란을 극복할 현실적 방법은 비대위 전환이라는 다수의 목소리를 들었다”며 “비대위 전환을 위한 여러분의 총의와 용단을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권 원내대표는 오전부터 의원들과 만나 비대위 전환에 힘을 실어달라고 설득에 나섰다.

이날 의총에는 친윤계 핵심인 장제원 의원도 참석했다. 장 의원은 “의총에서 이 상황이 비상 상황이라는 것을 확정했다”며 “특별한 것(반대) 없이 합의됐다”고 설명했다.

장제원 (가운데 ) 국민의힘 의원이 1일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 참석하고 있다. 오른쪽은 김기현 의원. 김성룡 기자

장제원 (가운데 ) 국민의힘 의원이 1일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 참석하고 있다. 오른쪽은 김기현 의원. 김성룡 기자

다수 여당 의원의 중지를 모은 만큼 비대위 전환은 일단 급물살을 탔다는 평가다. 당 초선의원은 통화에서 “당헌·당규 해석에 매달릴 정도로 당이 한가한 상황이 아니다”며 “비대위 전환을 통해 위기를 탈출해야 한다는 게 대세 여론”이라고 설명했다. 이미 여당 내부에는 비대위 도입을 전제로 비대위원장 하마평도 무성하다. 여권 관계자는 “대통령실에서도 다양한 경로로 현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출구전략을 찾는 거로 안다”며 “비대위 전환을 대비해 누가 비대위원장으로 적합한지도 검토하고 있다”고 전했다.

하지만 일각에선 여전히 비대위 전환에 부정적인 여론도 남아있어 잡음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당장 이날 오전 권 원내대표와 최고위원들의 간담회가 불발됐다. 정책위원장인 성일종 의원만 참석하고 비대위에 반대하는 친이준석계 정미경·김용태 위원은 불참했다. 정 위원은 이날 라디오에서 “윤핵관(윤석열 측 핵심 관계자)이 힘으로 비대위를 세게 밀어붙이는 것 같다”며 “이 대표를 내쫓으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 위원은 이날 의총 직후 페이스북에서 “선배 정치인처럼 잠시 살기 위해 영원히 죽는 길을 택하지 않겠다”고 의총 결정을 비판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인 김도읍 의원은 이날 중진의원 간담회 뒤 “종합적으로 근본적인 해법을 찾아야지, 여기서 왜 비대위를 몰아붙이냐”고 했다.

권성동 국민의힘 당 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가 1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김성룡 기자

권성동 국민의힘 당 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가 1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김성룡 기자

비대위 임기와 방향을 놓고도 당내 의견이 엇갈린다. 다수 친윤계 의원들이 단기 비대위를 거쳐 조기 전당대회를 열어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관리형 비대위가 아니라 돌파형 혁신 비대위가 돼야 한다”(조해진 의원)는 반론도 있다. 이날 3선의 하태경 의원은 “비대위를 출범시키되 이 대표의 당원권 정지 6개월이 끝나는 시점에 종료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비대위를 도입하되 당뿐만 아니라 대통령실과 정부도 적극적인 쇄신에 나서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초선인 김미애 의원은 이날 “비대위 체제로 가더라도 신속한 전당대회로 새 지도부를 구성해야 한다”며 “대통령도 특별감찰관과 검찰총장을 신속히 임명해 내부 부조리에 단호히 대응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야 한다”는 입장문을 냈다.

배현진 국민의힘 의원이 1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의원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김성룡 기자

배현진 국민의힘 의원이 1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의원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김성룡 기자

국민의힘은 이제 사실상 붕괴 상태인 최고위의 의결을 거쳐 상임전국위와 전국위를 소집해야 한다. 당헌·당규상 직무정지된 이준석 대표를 제외하고 재적 과반이 참석해야 최고위가 개최되는데 권 원내대표와 성일종 정책위의장은 참석이, 정미경·김용태 위원은 불참이 확실시 된다. 사퇴 의사를 밝힌 배현진·윤영석 의원은 전국위 의결을 위한 최고위만 ‘원 포인트’로 참석하겠다는 뜻을 당에 밝힌 것으로 확인됐다. 전날 사퇴 선언을 한 조수진 의원은 이날 사직서를 제출했다.

이에 따라 이론상으로는 조 의원을 제외한 재적 6명 중 권 원내대표, 성 의장, 배 의원, 윤 의원 등 4명이 참석하는 최고위를 개최해 그 중 과반인 3명이 찬성하면 전국위 개최 안건을 의결할 수 있다. 하지만 사퇴를 실행에 옮긴 조 의원과 달리 사퇴 선언 뒤 회의의 참석한 최고위원들을 놓고 정당성에 의문이 제기될 수도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실제 이날 하루 종일 권 원내대표 주도의 의원 선수별 모임과 의원총회가 진행돼도 별다른 의견 표명을 하지 않던 이 대표는 사퇴 선언을 했던 최고위원들을 다시 모아 최고위를 연다는 보도가 나오자 곧바로 페이스북에 글을 올였다. 그는 “(사퇴는 했지만 아직 사퇴서는 안 냈으니) 사퇴 선언을 이미 한 최고위원들을 모아서, 최고위원들이 사퇴해서 비상상황이라는 걸 표결한다는 것 자체가 제가 1년간 경험해온 논리의 수준”이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그 와중에 (회의 참석 최고위원) 숫자 안 맞아서 (최고위) 회의 못여는 건 양념 같은 것”이라고도 했다.

 이 대표는 이날 제주에서 당원들을 만난 자리에선 “지금 당 상황이라는 것에 대해서 궁금한 게 참 많으실 텐데 나도 궁금하다”며 “무슨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지 나도 뉴스를 통해 알게 된다”고 말했다.

마지막 관문인 전국위원회 의장인 서병수 의원이 비대위 전환에 반대하는 것도 묘한 변수다. 서 의원은 이날 중앙일보 통화에서 “당헌·당규상 비대위 체제 전환의 근거를 찾을 수 없고, (비대위 전환 시) 대표직을 박탈당하는 이 대표의 가처분 신청이 인용돼 혼란에 빠질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당헌·당규에 따라 최고위 의결이나 의원 4분의 1 이상의 찬성이 있으면 전국위를 소집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국민의힘 핵심 관계자는 통화에서 “비대위의 임기나 방향성을 두고는 당내 의견 수렴이 필요한 상황이지만, 비대위 도입 자체는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 됐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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