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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배우들의 고결한 광대놀음, 연극 존재이유 증명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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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9호 19면

[유주현의 비욘드 스테이지] 6년만에 부활한 ‘햄릿’ 

요즘 연극은 영 판타지가 없다. 배우와 관객의 거리는 점점 좁아진다. 무대를 없애고 객석만 가득한 공간을 배우들이 누비고 다니고, 창작과정을 보여준다면서 창작에 실패했음을 고백하기도 한다. 작은 휴대폰 화면 안에서 온갖 판타지가 펼쳐지는 디지털 세상에 아날로그 연극의 존재의미는 오로지 경계 파괴에 있는 걸까 궁금하다.

강필석·박지연 등 젊은 배우가 주역

연극 ‘햄릿’의 장면들. 햄릿 역 강필석. [사진 신시컴퍼니]

연극 ‘햄릿’의 장면들. 햄릿 역 강필석. [사진 신시컴퍼니]

오랜만에 찾아온 연극 ‘햄릿’(8월 13일까지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이 각별한 이유다. 실종됐던 정통 대극장 연극이 돌아왔을 뿐 아니라, 내로라할 ‘레전드’들이 총출동했다. 연극계 트로이카 박정자·손숙·윤석화를 비롯해 유인촌·전무송·정동환·김성녀·권성덕·손봉숙·길해연 등 ‘명품배우’들이 경쟁하듯 각자의 아우라를 뿜어내는 명장면의 릴레이다.

연극 ‘햄릿’의 장면들. 오필리어 역 박지연. [사진 신시컴퍼니]

연극 ‘햄릿’의 장면들. 오필리어 역 박지연. [사진 신시컴퍼니]

2016년 ‘한국 연극의 아버지’ 이해랑 탄생 100주년과 셰익스피어 서거 400주년을 기념해 이해랑연극상 수상자들로만 꾸몄던 무대인데, 6년만에 고스란히 부활한 건 아니다. 초연 당시 햄릿과 오필리어, 레어티즈 같은 주요 배역을 맡았던 노배우들이 조역이나 단역으로 수평이동하고, 그 자리를 강필석·박지연·박건형 등 젊은 배우들로 채웠다. 그간 미투 사태와 블랙리스트, 코로나 팬데믹까지 거치며 산산조각난 연극계가 상징적이나마 세대 통합을 이룬 현장인 것이다.

연극 ‘햄릿’의 장면들. 유랑극단 배우들 역의 박정자, 손숙, 윤석화, 손봉숙. [사진 신시컴퍼니]

연극 ‘햄릿’의 장면들. 유랑극단 배우들 역의 박정자, 손숙, 윤석화, 손봉숙. [사진 신시컴퍼니]

연극평론가 김미혜 한양대 명예교수는 “다른 장르와 달리 계파도 없이 잘 뭉치던 연극계가 몇 년새 극심한 세대 분열을 겪었다”면서 “구세대에 대한 청년의 분노를 부추겨 노인들이 설 자리가 없어진 현상을 완화하는 의미의 기획이라고 본다. 6년 전보다도 나이든 배우들이 자신의 영광과 명예를 위해 단역으로 선 건 아닐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박명성 프로듀서는 “선배들을 모시고 연극을 한다는 건 왜 연극을 해야 하는가, 어떤 연극을 만들 것인가, 어떤 정신으로 연극을 만들 것인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는 것과 같다”면서 “‘햄릿’을 통해 선배 한 분 한 분이 가진 예술에 대한 지고지순한 헌신을 후배들과 관객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세대를 초월한 연극에 대한 열정 하나만으로 앙상블을 만들어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연극 ‘햄릿’의 장면들. 거투르드 역의 김성녀와 클로디어스 역의 유인촌. [사진 신시컴퍼니]

연극 ‘햄릿’의 장면들. 거투르드 역의 김성녀와 클로디어스 역의 유인촌. [사진 신시컴퍼니]

세대 화합의 의미는 400년을 이어온 ‘햄릿’ 이야기의 근간과도 연결된다. 손진책 연출이 말했듯 햄릿의 기본 심상은 복수가 아닌 죽음이다. “이번 공연은 ‘죽음 바라보기’에 집중했다”는 손 연출의 가이드라인을 따라 극을 바라보니 과연 그렇다. 삼촌은 아버지를 죽이고, 자신은 애인의 아버지를 죽여 애인까지 죽음에 이르게 하고, 애인의 오빠와 결투 끝에 삼촌도 어머니도 자기 자신도 모두 다 죽고 마는 ‘햄릿’은 그 자체로 죽음의 향연이다. 거트루드 말마따나 ‘죽음, 죽음, 죽음이 죽음을 부르니, 사방 천지에 온통 죽음 뿐’이다.

‘죽음 바라보기’가 필요한 건 왜일까. 이 죽음의 행렬은 삼촌 클로디어스가 왕좌를 차지하기 위해 선왕을 죽이면서 시작됐다. ‘알렉산더도 지금쯤 술통 마개로 굴러다니고 있을 거네’‘천하를 떨게 하던 저 시저 황제, 이제는 흙반죽이 되어 바람벽에 난 구멍이나 때우는 신세’라는 햄릿의 대사처럼 죽음은 누구에게나 오는 것인데, 우리는 그걸 잊고 부질없는 욕심을 부리며 살아간다. 죽음은 왕에게도 공평하다는 진리를 망각한 클로디어스가 그깟 왕좌를 차지하려 죽음의 행렬을 시작한 것처럼.

손 연출이 강조한 햄릿의 ‘죽음 바라보기’란, 세대별로 쪼개져 버린 연극판에 대한 거대한 은유가 아닐까. 극중 명을 다하지 못하고 때 이른 죽음을 당한 선왕의 망령이 구천을 맴돌며 산 사람들을 죽음의 향연으로 초대하듯, 연극판의 변화도 갑작스런 단절로 왔을 때 건강한 세대교체가 가능할 리 없기 때문이다.

아테네 신전에 모인 연극의 신 같아

햄릿(강필석, 왼쪽)과 레어티즈(박건형)의 결투 장면. [사진 신시컴퍼니]

햄릿(강필석, 왼쪽)과 레어티즈(박건형)의 결투 장면. [사진 신시컴퍼니]

지난해 재개관한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은 이런 큰 무대를 올리기에 걸맞은 규모다. 6년 전에도 이 자리에서 공연됐지만, 당시엔 객석을 무대로 올리고 600석 규모로 운영해 전석매진 신화를 썼었다. 이번엔 리모델링된 프로시니엄 무대를 그대로 활용해 객석 규모를 2배로 키웠다. 대극장 뮤지컬이나 오페라보다 긴 무려 3시간짜리 공연이지만 겁먹을 것 없다. 웅장한 오케스트라 사운드나 현란한 무대전환은 없어도, 대한민국 명배우들 각각의 개성이 생생히 펼쳐지는 연기열전에 시간가는 줄 모른다.

유랑극단 배우 역 4인방. [사진 신시컴퍼니]

유랑극단 배우 역 4인방. [사진 신시컴퍼니]

6년 전 ‘60대 햄릿’을 연기했던 유인촌의 카리스마는 ‘70대 클로디어스’에게도 여전했다. ‘나는 살고 싶다. 살아야겠다’는 그의 독백은 저 유명한 햄릿의 ‘사느냐 죽느냐’ 만큼이나 강렬했다. 83세 최고령의 무덤지기 권성덕도 경쾌한 리듬으로 연기장인의 내공을 드러내며 6년 전 건강문제로 중도하차했던 아쉬움을 씻어냈다. 선왕 역 전무송의 쩌렁쩌렁한 에너지도 인상적이었다.

‘죽음의 향연’을 끝내고 무덤 앞에 선 망령들. [사진 신시컴퍼니]

‘죽음의 향연’을 끝내고 무덤 앞에 선 망령들. [사진 신시컴퍼니]

그런데 진짜 감탄스러운 것은 그다지 연기하지 않는 유랑극단 배우1, 2, 3, 4 역 4인방, 박정자·손숙·윤석화·손봉숙의 존재감이었다. 일견 이름없는 단역 신세인 양 대사도 거의 없지만, 무대를 열고 닫는 상징적인 역할이다. 특히 마지막 검술시합 장면이 백미다. 무대 양켠에서 스르르 등장해 햄릿과 레어티즈의 덧없는 칼싸움을 고요히 바라보고 선 모습이 어떤 고전 명화 속 인물들 같다. 가로세로 거대한 기둥 몇 개가 무겁게 움직이며 만들어내는 장엄한 미장센이 더해지니, 혹시 아테네 신전에 모인 연극의 신들이 이런 모습 아닐까 싶다.

그러고 보면 ‘햄릿’은 우리에게 연극의 이데아 같은 작품이다. ‘이것은 나의 무대, 나의 연극, 나는 배우, 자네는 관객. 사라지는 건 내 몫이고 남는 것은 자네 몫이지. 불이 꺼지고 이 모든 소란이 잦아들 때, 자네가 밝은 빛 속에서 다시 눈을 뜰 때, 나는 여기 없을 거야’라는 햄릿의 마지막 대사는 이 시대 연극의 ‘죽음’을 말하는 듯하다. 여기에 소환된 배우들은 산산이 쪼개진 연극의 신전을 있는 힘껏 지탱하고 선 형상인 것이다.

그 벌어진 틈 사이, 도처에 즐비한 가상현실로 금방이라도 빨려 들어가 버릴 것 같은 나를 이 땅 위에 발 딛고 서있을 수 있게 붙들고 있는 것이 저들인 것 같았다. 거대한 프로시니엄 너머의 환상 속 존재들이었지만, 액자를 뚫고 나와 객석을 누비며 환상을 깨는 배우들보다 연극의 존재이유를 더 크게 웅변하고 있었다.

‘어둡다, 어두워’‘춥다, 뼈가 시리게 추워’‘멀리서 종이 울리네. 뎅, 뎅, 뎅, 뎅’‘이 기나긴 광대놀음도 이제 끝인가’. 배우1, 2, 3, 4가 연극의 막을 닫는 마지막 대사가 울림이 길다. 이 고결한 ‘광대놀음’을 다시 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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