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대에 만난 첫사랑…너무 걱정 말아요

중앙선데이

입력 2022.08.13 00:01

업데이트 2022.08.13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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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1호 18면

[유주현의 비욘드 스테이지] 뮤지컬 ‘첫사랑’ 주역 윤영석·조순창

뮤지컬 '첫사랑'의 주연을 맡은 배우 조순창(오른쪽)과 윤영석(왼쪽). 정준희 기자

뮤지컬 '첫사랑'의 주연을 맡은 배우 조순창(오른쪽)과 윤영석(왼쪽). 정준희 기자

1980년대까지 가곡은 대중가요였다. TV를 틀면 성악가들이 ‘가고파’‘그리운 금강산’ 같은 가곡을 흔하게 불렀고, 부모님들이 흥얼거리는 콧노래도 그런 노래들이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우리 일상에서 가곡은 자취를 감추고, K팝이나 트로트만 들리게 됐다.

최초의 가곡 주크박스 뮤지컬 ‘첫사랑’(9월 2~4일 마포아트센터)이 반가운 이유다. 2016년 시작된 JTBC ‘팬텀싱어’를 통해 성악가들이 다시 인지도를 얻게 되면서 가곡이 부활하는 최근 흐름에 기름을 붓는 기획이다. 공연계 블루칩 오세혁 작·연출, 이진욱 음악감독 콤비가 ‘눈’‘내 영혼 바람되어’‘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등 작곡가 김효근의 주옥같은 노래들을 엮어 만드는 대극장 뮤지컬인데, 상업 프로덕션이 아니라 마포문화재단(대표 송제용)이 제작자로 나서 단 4차례 올려진다.

가곡 부활 트렌드에 기름 붓는 기획

제목 그대로 아련한 첫사랑의 기억을 되살리는 무대지만 흔한 복고풍은 아니다. 잘나가는 사진작가이자 인기 유튜버인 50대 주인공 태경이 풋풋했던 20대의 자신과 조우하는 스토리가 공연만의 시적 상상력과 가곡 특유의 아름다운 시어로 펼쳐지는 몹시 예술적인 무대다. 50대 태경은 ‘왕년의 팬텀’ 윤영석(51)과 ‘왕년의 콰지모도’ 조순창(42)이 맡아 탄탄한 가창력을 뽐낸다. 젊고 핫한 스타 위주로 돌아가는 뮤지컬판에서 오랜만에 주인공으로 출격하는 두 사람은 다소 들뜬 눈치다.

“어제 ‘지킬앤하이드’ 울산 공연을 마치고 새벽에 올라왔어요. 제가 왕년에 지킬이었는데, 지금은 친구 어터슨 역이죠. 사실 주인공 욕심은 오래전 내려놨어요. 김봉환 선배님이 이번 ‘지킬’ 공연중 칠순을 맞으셨는데, 제 꿈이자 목표가 ‘제2의 김봉환’이라 일찍부터 아버지 역할을 선점하고 있죠.(웃음) 그런데 이번 대본을 받아보니 50대가 주인공인 작품을 써준 게 너무 고맙고, 욕심이 나더군요.”(윤)

출처 마포문화재단

출처 마포문화재단

드라마 ‘태종 이방원’으로 친숙한 조순창에게는 꽤 오랜만의 무대다. 몇 해 전 개인 사정으로 고향인 전북 순창으로 내려가면서 무대를 잠정 은퇴했었기 때문이다. “무대란 게 잠시만 떨어져 있어도 두려워지거든요. 가곡 뮤지컬이라니 더 겁이 났는데, 대본이 너무 끌렸어요. 살면서 과연 이런 어려운 배역을 또 만날 수 있을까 욕심을 자극하는 이야기였고, 사람들도 너무 보고 싶었습니다. 나를 사랑해주는 동료와 팬들이 그리웠는데, 좋은 기회가 온거죠.”(조)

두 사람은 이번 작품으로 처음 만난 사이인데도 ‘절친 케미’였다. 웃음과 눈물을 동시에 주는 ‘태경’ 캐릭터가 결코 쉽지 않지만, 함께 울고 웃으며 만들고 있단다. “창작이다 보니 우리 손에서 열리는 거라 같이 치열하게 만들어가고 있어요. 너무나 오랜만에 창작을 하게 되서 어려워도 즐겁습니다.”(윤) “저는 사실 악역 전문 배우인데, 작품 자체가 따뜻한 눈물과 행복한 웃음이 절로 나는 큰 내용이라 제 이미지가 잘 가려지는 것 같아요. 애가 셋이고 나이도 있으니 이제 사람 그만 죽이고(웃음), 아이들에게 교훈도 주는 가족적인 역할을 해야 할 시점이기도 하죠.”(조)

최초의 가곡 뮤지컬이 낯설기는 하다. 서정시 같은 가사들이 극에 잘 녹여질까, 노래가 다 비슷하지는 않을까 의문도 든다. 두 사람은 “음악이 가진 힘과 대본의 시너지가 너무 좋아서 연습 때 울음을 참기 힘들다”고 입을 모았다. 가곡 뮤지컬이라고 노래만 좋은 건 아니라는 얘기다. 유튜브 촬영을 위해 피아노 반주로 노래를 부를 때도, 두 사람의 그렁그렁 실감나는 눈빛 연기는 벌써 공연장에 가있는 듯 했다.

“김효근 선생님이 연습에 매일 나오시거든요. 원곡자가 연습을 지켜보는 건 처음인데, 눈에서 꿀이 뚝뚝 떨어지세요. 당신 곡이 우리 연기를 통해 드라마로 구현되어 가는 것이 즐거우신가 봐요.”(윤) “처음엔 엄청 쫄았는데, 저희와 같이 우시더군요.(웃음) 거장인데도 당신 것을 다 내어주셨어요. 편곡 과정에서 변형을 다 허락해 주셔서 단조롭지 않고 버라이어티하게 들릴 겁니다.”(조)

두 사람은 데뷔 초 라이선스 대작의 간판스타로 급부상한 공통점이 있다. 윤영석은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2002)의 ‘1대 팬텀’으로, 조순창은 2009년 ‘노트르담 드 파리’의 ‘2대 콰지모도’로 이름을 알렸다. 오리지널 제작진의 낙점을 받고 얼떨결에 큰 무대에 올랐던 시절을 회상하는 두 얼굴에 태경처럼 만감이 교차한다.

“저는 그냥 성악하던 사람인데, 오페라 ‘세비야의 이발사’의 피가로로 막 데뷔했을 때였어요. 연극적으로 만든 실험적인 작품이라 대학로에서 공연을 하던 중, 아내가 팬텀 앙상블 오디션 공고를 발견한 거죠. 아내의 강권에 어떤 작품인지도 모르고 얼떨결에 오디션을 봤는데, 오리지널 제작진이 팬텀 역에 지원한 쟁쟁한 배우들을 마다하고 앙상블로 지원한 저를 뽑은 거예요. 국내 제작사 입장에선 ‘듣보잡’을 데리고 모험을 해야 하니 힘들었을 테죠. 저도 7개월 공연하면서 13㎏이 빠질 정도로 힘들었구요. 내 소리가 좋다면서도 자꾸 소리를 버리라고 하니 이해가 안되더군요. 소리만 있고 감동이 없다는 게 무슨 뜻인지, 결국 무대가 가르쳐줬어요.”(윤)

“2000년에 학전에서 데뷔를 했어요. 그러다 어린 나이에 결혼을 하게 돼서 생계형 배우가 됐죠. ‘햄릿’ 앙상블로 뽑혀 연습을 할 때 ‘노트르담 드 파리’ 배우들이 ‘형은 외모도 노래도 다 괴물인데 왜 콰지모도 오디션을 안보냐’더군요. 그게 뭔지도 몰랐죠.(웃음) 우여곡절 끝에 콰지모도로 발탁되어 1년 동안 행복하게 공연하고 났더니 어느새 제가 주연급으로 통하고 있더군요. 돌이켜보니 학전 시절에 김민기 선생님이 제게 ‘노트르담 드 파리’ 영상을 보여주면서 잘 어울리겠다고 하신 적이 있어요. 좋은 아빠 되려고 열심히 하다보니 거기 가 있더라구요.”(조)

태경이 20대의 자신을 만나 이런저런 조언을 해주는 것처럼 데뷔 초의 자신에게 하고 싶은 말도 있을 터. 태경과 마찬가지로 ‘파이팅’이란다. “모든 남자 배우들의 워너비인 팬텀 역을 쉽게 얻었는데, 첫공이 끝나자마자 그게 얼마나 큰 건지 알았어요. 언론의 십자포화를 맞았거든요.(웃음) 미숙하다, 신인티를 못 벗었다는 악평 속에 스트레스가 극심했던 저에게 ‘파이팅’ 해주고 싶네요. 악평은 흘려보내고, 네 할 일 묵묵히 하면 된다고요.”(윤) “20대, 30대를 거치면서 굉장히 많은 일을 겪었거든요. 어려운 시간이 분명히 오는데, 그 시간이 너한테 정말 아름답고 행복한 시간으로 바뀔테니 걱정하지 말고 힘내라고 해주고 싶어요. 훗날 정말 행복해질 거니까.”(조)

그가 “지금 정말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는 이유는 작품의 제목이자 모티브인 ‘첫사랑’과 통한다. 설령 기억을 다 잃어간다 해도 마지막까지 남을 단 하나의 강렬한 기억이 첫사랑이라는 이야기인데, 그 대상이 꼭 연애상대가 아닐 수도 있다. 조순창은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막내를 제대로 만난 시점이 ‘첫사랑의 순간’이라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그 아이를 만날 거라곤 상상도 못했으니까요. 처음 자폐 판정을 받았을 때 의사를 때릴 뻔 했죠. 그 상처를 견뎌내기까지 2년 동안 무수히 나쁜 생각을 했는데, 인정하고 나니 애가 천사로 보여요. 순창에 내려간 것도 아이 때문인데, 제 인생에 목표와 계획을 만들어준 거죠. 장애인 인식개선과 사회적 자립을 위한 사업을 시작해서 고군분투하고 있거든요. 요즘 ‘우영우’를 보면 고마워요. 저희 아이를 차갑게 바라보는 시선에 상처를 많이 받았는데, 드라마 덕에 이제 자연스럽게 같이 생활할 수 있다는 희망이 생겼으니까요.”(조)

중앙SUNDAY 유튜브 채널

중앙SUNDAY 유튜브 채널

50대에 20대의 자신 만나는 이야기

두 사람에게 주어지는 무대는 딱 2번씩이다. ‘왕년의 스타’들이 유명 공연장도 아닌 곳에서 단 두차례 무대를 위해 열정을 다하는 마음은 어떤 걸까. “‘오페라의 유령’ 때 제 팬페이지에 올라온 글에 큰 충격을 받았어요. 공연장에서 우연히 뇌종양에 걸린 동창을 만났는데, 귀도 잘 안들리는 애가 공연을 왜 보러올까 싶었다는군요. 그런 마음을 읽은 친구가 자기는 잘 들릴 때보다 더 많은 걸 느낄 수 있다고, 이 공간의 빛과 진동, 배우의 동작과 땀방울까지 너무 잘 느껴지는 게 좋아서 공연을 본다고 했다는 거예요. 한 대 맞은 것 같았죠. 그 전까지 저는 그냥 소리의 전달자라 생각했는데, 내 목소리를 잘 못 듣는 사람도 느낄 수 있다잖아요. 그때부터 무대에서 거짓말 못합니다. 가진 것 다 쏟아내야 무대죠.”(윤) “배우로서 가장 중요한 자세가 공감이거든요. 이번 공연도 관객 개개인이 누구나 품고 있는 첫사랑을 배우가 공감으로 연결시킬 수만 있다면 최고의 공연이 될 거라 생각해요. 우리가 엄청 스타는 아니지만 순전히 공연의 힘으로 공감시킨다면, 앞으로 더 많은 관객을 만나지 않을까요.”(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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