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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이해 키워드 30]<일대일로> 서구 견제 뚫기 위한 중국의 서진 전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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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스리랑카가 국가채무 불이행(디폴트)을 공식 선언했다. 외환보유고는 바닥을 드러냈고 생필품 수입이 끊겨 정부가 쌀, 설탕 등을 배급했다. 전국에 정전 사태가 이어졌다. 결국 대통령이 퇴출됐다.

2022년 4월 9일, 스리랑카 콜롬보에서 시민들이 현 스리랑카 정부와 고타바야 라자팍사 전 대통령에 대항해 시위를 벌이고 있다 [사진 셔터스톡]

2022년 4월 9일, 스리랑카 콜롬보에서 시민들이 현 스리랑카 정부와 고타바야 라자팍사 전 대통령에 대항해 시위를 벌이고 있다 [사진 셔터스톡]

외환위기의 원인으론 코로나19 유행으로 인한 관광객 급감, 잇따른 경제정책 실패 등 여러 가지가 꼽히지만 서구 언론들은 중국의 일대일로(一帶一路) 프로젝트를 주원인으로 꼽고 있다. 스리랑카 국가채무의 10%에 달하는 중국에 대한 채무가 이 사태를 불러왔다는 것이다. 서구는 줄곧 일대일로 사업이 개발도상국에 거액을 빌려줘 중국 의존도를 높이는 ‘부채 외교’라고 비판해 왔다.

일대일로는 알려진 대로 중국의 서진(西進) 전략이다. 

일대(一帶)에 해당하는 ‘실크로드 경제벨트(絲綢之路經濟帶)’는 중국 서부에서 중앙아시아, 러시아를 거쳐 유럽과 발트해에 이르는 길, 중앙아시아와 코카서스를 거쳐 지중해에 도달하는 길, 동남아시아와 남아시아를 통해 인도양으로 통하는 길을 연결한다. 일로(一路)인 ‘21세기 해상 실크로드(21世紀海上絲綢之路)’는 중국 남동 해안에서 출발해 동남아시아, 남아시아 등이 있는 인도양을 거쳐 아프리카 동해안과 지중해로 연결되는 해로를 개척한다. 중국과 동남아시아, 중앙아시아, 아프리카, 유럽 등과 무역·금융·문화를 모두 아우르는 교류를 확대해 이 지역들을 일체화하겠다는 사업이다.

지난해 말 기준 150개국, 32개 국제기구가 일대일로 회원국으로 가입돼 있다. 세계 인구 63%에 해당하는 44억 인구를 대상으로 하고, 이와 관련한 GDP는 세계 GDP의 29%인 21조 달러 규모다. 회원국에 대한 인프라 투자와 자금 지원을 위해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을 설립했고 신개발은행(NDB), ‘실크로드 기금’이 중국 주도로 운영되고 있다.

중국의 일대일로 프로젝트 [사진 셔터스톡]

중국의 일대일로 프로젝트 [사진 셔터스톡]

2013년 이 사업 시작 후 중국은 총 9310억달러(약 1220조원)를 쏟아부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에 따르면 중국과 일대일로 지역 국가 간 교역 규모는 2016년부터 2020년까지 50%가량 늘었다. 이들 국가에 대한 중국의 직접투자액은 같은 기간 153억 달러에서 225억 달러로 47% 증가했다.

유라시아 대륙의 동쪽에 위치한 중국은 고대로부터 서진을 시도해 왔다. 한(漢)대의 장건(張騫)이 비단길을 개척했고 당(唐)대에도 서역 진출을 위해 탈라스 전투를 벌였으나 이슬람 세력에 막혔다. 명(明)대의 환관 정화(鄭和)는 대함대를 이끌고 해상 교역로를 통해 아프리카에 닿았다.

일대일로 프로젝트가 처음 언급된 건 시진핑(習近平) 주석 집권 직후인 2013년 9월이었다. 당시는 미국이 중동에서 철수하면서 ‘아시아로의 중심축 이동(Pivot to Asia)’을 천명하던 시기였다. 이후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동아시아와 동남아시아를 아우르는 봉쇄망을 구축하기 시작했다. 중국의 서진 전략은 이와 맞물리는 시점에 시작된 것이다.

2016년 9월 5일, 중국 항저우에서 열린 G20 정상회담에서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 주석 [사진 셔터스톡]

2016년 9월 5일, 중국 항저우에서 열린 G20 정상회담에서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 주석 [사진 셔터스톡]

중국은 2009년 이후 세계 최대의 에너지 소비국이 됐다. 에너지 소비원은 중국 동부 해안에서 서부 내륙으로 퍼져나가고 있다. 말라카 해협 등 중국의 해상 에너지 운송로는 미국과 베트남 등 주변국들에 의해 언제든지 위협받을 수 있다. 중앙아시아를 통한 육상 수송로는 안전하고 중국 서부와 가깝다. 일대일로의 일환으로 건설되는 미얀마-파키스탄-중동 파이프라인은 에너지 안보와 관련돼 있는 셈이다.

중국은 2010년대 중반 이후 중진국형 경제성장률 추세를 보이고 있다. 국내 설비 과잉과 과잉 생산에 직면했고, 도농 격차 해소와 실업률 관리가 정권의 성패를 좌우할 과제로 떠올랐다. 해외에서 추진하는 대규모 건설 프로젝트들을 통해 잉여 생산력을 해외로 돌리고 국내 노동력까지 이동시켜 국내 경제 문제를 해소하는 것이 일대일로의 또 다른 노림수다. 일대일로 사업 지역을 위안화 플랫폼으로 만들겠다는 야심도 있을 것이다.

중국은 미국, 러시아와 함께 중앙아시아에 영향력을 투사하기 위한 경쟁을 벌여 왔다. 에너지, 경제와 더불어 지정학적 목적 등이 혼재되어 있다. 미국의 ‘신 실크로드’ 계획, 옛 소련의 부활을 꿈꾸는 러시아에 맞서 중앙아시아 지역에 대한 주도권을 확보하려는 노력 역시 일대일로의 배경이다. 서부의 위구르족 독립세력이 인접국과 연계하는 것을 억제하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앞서 스리랑카 사례에서 언급했듯 일대일로는 여러 번 비판의 도마에 올랐다. 도로·철도나 항만, 발전소 같은 대규모 인프라 공사가 정작 해당국 경제발전에 별 도움이 되지 않고 오히려 부채의 늪에 빠뜨린다는 비판이 많았다. 2012년 건설된 스리랑카의 함반토타항이 대표적인데 항구 이용률이 낮아 적자가 쌓이자 중국 국유기업이 인수해 항구 운영권을 가져갔다. 파키스탄의 1인당 GDP가 2010년대 들어 곤두박질친 것이 일대일로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탓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중국이 투자한 인프라 건설에서 현지인 대신 중국인을 데려다 쓰는 것에 대한 불만도 제기돼 왔다.

이런 비판을 중국 정부도 의식하는 모습이다. 왕이(王毅)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 등이 직접 아프리카를 방문해 채무 변제를 연기해주는 등 해당 국가들을 달래고 있다. 독재국가들이 많은 아프리카의 특성에 맞춰 장기 통치술을 전수해 주기도 한다고 뉴욕타임스(NYT)가 전했다. 탄소중립을 실현하겠다는 시진핑 주석의 약속에 따라 해외에 석탄발전소 건설도 중단했다.

일대일로 초기 ‘빚쟁이 국가’의 이미지에서 좀 더 세련된 우방국으로 변모하려는 모습이다. 잠비아는 지난해 정권 교체로 친중 정부가 물러나고 친미 정부가 들어섰으나 채무 변제 연기 등 중국이 당근책을 제시하자 결국 중국과 손을 잡았다. 스리랑카는 시 주석이 라닐 위크레마싱게 신임 대통령에게 지원을 약속하자 중국에 40억 달러 지원을 요청했다. 제3세계 외교무대에서 ‘차이나 머니’의 위력은 여전한 모습이다. 중국이 보다 회원국의 입장을 고려해 그들의 지지를 이끌어낸다면 일대일로 프로젝트는 서구의 대 중국 봉쇄 전략에 맞설 힘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차이나랩 이충형 특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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