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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블레스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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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서정민 기자 중앙일보 중앙SUNDAY 문화부장
서정민 중앙SUNDAY 문화선임기자

서정민 중앙SUNDAY 문화선임기자

지난달 말 방영된 KBS 드라마 ‘미남당’ 1회. 강력7팀에 새로 전입해 온 형사팀장 한재희(오연서)는 팀원들과 통성명도 하기 전, 범인을 잡기 위해 현장으로 달려간다. 범인은 열심히 도망쳐보지만 결국 허공을 날아오른 재희의 발차기 한 방에 쓰러진다. 널부러진 범인의 팔에 수갑을 채우던 재희가 한마디를 날린다. “살아있는 걸 다행으로 알아. 법블레스유.”

‘법블레스유’는 영어 ‘God bless you(당신에게 행운이 깃들길)’에서 따온 신조어다. 한자어 ‘법(法)’과 영어 ‘블레스(bless·축복하다)’를 합친 것으로 ‘법이 너를 살렸다’ ‘법의 은총 덕분에 살아있는 줄 알아’ ‘법 아니었으면 너는 이미 끝났다’라는 뜻이다. 위 드라마 장면을 예로 들어 설명하면, 정의감에 불타는 형사 재희의 진짜 속마음은 사실 이렇다. “이 XX야, 내가 지금 형사라서 법을 지켜야 하니까 어쩔 수 없이 너를 살려두는 거야. 안 그랬으면 벌써 너는 내 손에 죽었어.”

신조어 ‘법블레스유’. [사진 네이버 이미지 캡처]

신조어 ‘법블레스유’. [사진 네이버 이미지 캡처]

젊은 친구들이 즐겨 쓰는 SNS에선 상대에게 현재 매우 화가 나서 감정이 격해져 있는 상태임을 알리거나 또는 애써 분노를 가라앉히고 이번에는 너를 용서하겠다는 표현을 대신할 때 많이 사용된다.

매일 아침 사건·사고 뉴스를 대할 때마다 반인륜적 범죄 때문에 분노가 치민다. 돈과 권력으로 법망을 요리조리 잘도 피해 다니는 ‘법꾸라지’는 또 얼마나 많은가. 입에서 절로 욕이 튀어나오지만 일단 “워~워~” 마음을 가라앉힌다. 진실을 밝히는 것에 진심인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더 많아져서 법의 이름으로 소시민의 억울함이 말끔히 풀리길 기대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