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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강찬호 논설위원이 간다

“문제 없다던 문재인 청와대, 문건 공개되자 돌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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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강찬호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맹탕’으로 막내리는 기무사 계엄 문건 파동의 전말

강찬호 논설위원

강찬호 논설위원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당시 국군기무사령부(기무사)가 ‘계엄령 검토’ 문건을 작성한 것과 관련해 징계를 받은 전 기무사 간부 2명(중령)이 지난달 말 무혐의 판정을 받았다. 2018년 7월 당시 여당인 더불어민주당과 군인권센터가 기무사가 작성한 ‘전시 계엄 및 합수 업무 수행 방안’ 문건을 공개하자 문재인 당시 대통령은 ‘국기 문란 사건’이라며 민군 합동 수사단 구성을 지시했다. 수사단은 문건에 등장하는 20개 부대를 방문하고 90여곳을 압수 수색하는 등  전방위 수사를 펼쳤으나 혐의를 입증할 증거를 찾지 못한 끝에 문건 작성 실무자들까지 무혐의가 확정된 것이다. 허위 공문서 작성 등 혐의로 기소된 소강원 전 참모장 등 기무사 간부 3명도 2019년 12월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국민의힘에선 ‘쿠데타 몰이’의 진상 규명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곤욕을 치렀던 기무사 관계자로부터 내막을 들어봤다.

“청, 파동 넉달 전 법률 검토 끝내”
“문건 공개되니 쿠데타 음모 몰아”
“음모론 퍼지자 고강도 수사 전환”
기무사령관, 문건 반납안해 논란

“장관 본인도 잘못 아니라 해놓고…”

2018년 7월 20일 문재인 청와대의 김의겸 대변인(당시)이 문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기무사의 계엄 문건 세부 자료를 공개하고 있다. 국회의 계엄 해제 표결을 막고 언론사 보도를 통제하는 방안 등 자극적인 내용들이 소개됐다. [사진 청와대사진기자단]

2018년 7월 20일 문재인 청와대의 김의겸 대변인(당시)이 문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기무사의 계엄 문건 세부 자료를 공개하고 있다. 국회의 계엄 해제 표결을 막고 언론사 보도를 통제하는 방안 등 자극적인 내용들이 소개됐다. [사진 청와대사진기자단]

관계자 A씨에 따르면 파동의 시발은 2018년 7월 초 강한수 당시 국방부 정책보좌관이 국회 국방위 여당 간사인 이철희 의원(당시)에게 문건을 넘긴 것이다. A씨 전언이다.

“이 의원이 넘겨받은 문건을 공개한 게 2018년 7월 5일인데 나흘 뒤인 7월 9일 송영무 당시 국방부 장관은 국방부 정책 간담회에서 ‘위수령은 잘못된 게 아니다. 법조계에 문의해보니 최악의 사태를 대비한 계획은 문제 될 게 없다고 한다. 장관(본인)도 마찬가지 생각’이라 말했다고 한다. 송 장관은 당시 최재형 감사원장에게 문건에 대해 자문했는데 ‘법적으로 문제없다’는 답을 받고 간담회에서 이같이 말한 거다. 그래놓고 뒤로는 이 의원에게 문건을 넘겨 음모론이 퍼지게 한 것이다. 국방부 기무부대장 민병삼 대령도 2018년 7월 24일 국회 국방위에서 송 장관이 ‘위수령은 잘못된 게 아니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그러자 송 장관 측은 ‘거짓말’이라고 부인했다. 그러나 기무사가 송 장관의 발언 내용이 기록된 간담회 보고서를 국회 국방위에 제출하면서 민 대령 말이 사실임이 확인됐다.”

이 과정에서 국방부는 간담회 참석 간부들로부터 “장관이 ‘위수령 잘못 아니다’고 말하는 걸 듣지 못했다”는 서명을 받아 민 대령 주장을 부인하는 확인서를 공개했다. 하지만 참석자들 가운데 확인서에 서명한 이는 송 장관 직속 국방부 간부들뿐이었다. 이종섭 합참 차장과 김유근 미군기지 이전 사업단장 및 정권 실세 서주석 국방부 차관은 빠졌다. 또 국방부 간부였지만 기무사 소속이던 민병삼 대령은 “위증 못 하겠다”며 서명을 거부했다. A씨는 “민 대령은 그 직후 항의의 뜻에서 전역했다. 노수철 당시 법무관리관도 버티다 서명한 뒤 국방부를 떠났다. 명예가 생명인 군인과 군 공무원에게 거짓말을 강요한 결과”라고 했다. 중앙일보는 송 전 장관에게 입장을 물었으나 그는 인터뷰에 응하지않았다.

청와대 행정관 “문건엔 문제없어” 한밤 전화  

A씨의 이어지는 회고다. “문건이 공개된 직후인 2018년 7월 6일 밤 청와대 행정관 B씨가 내게 전화했다. ‘저희(청와대)도 그 문건을 3월에 보고받고 검토를 한 끝에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는데 송 장관이 왜 지금 터뜨려 난리를 치는지 모르겠다’고 하더라. 나는 ‘나도 이해가 안 된다. 기무사 죽이기 아닌가’라고 답했다. 7월 10일. 국방부 검찰단(단장 이수동 공군대령) 소속 2명이 문건 관련 수사차 나를 조사했다. 난 조사 말미에 ‘그제 청와대 행정관이 내게 전화해 ‘문건은 문제가 없다’며 불법성이 없음을 인정했다’고 했다. 그러자 다음날 B씨가 내게 전화해 ‘국방부 검찰단에서 연락이 왔다. 내가 문건에 문제가 없다고 했다는데, 난 그런 말 안 했지 않나’고 하더라. 어이가 없어 ‘엊그제 한 얘기가 어떻게 이리 확 바뀌냐’고 쏘아붙였다. 그는 ‘입장이 곤란하다’고 하더라. 나는 ‘아닌 건 아닌 거다. 기무사가 무슨 쿠데타를 했나’며 전화를 끊었다.”

A씨는 “B씨의 전화는 문건이 2018년 3월 16일 이석구 기무사령관에게 처음 보고된 직후 청와대도 문건의 존재를 보고받고 법률적 검토를 한 끝에 문제없다고 판단했음을 보여주는 증거”라며 “그러나 청와대는 근 넉 달 뒤인 7월 5일 국방부가 돌연 이철희 의원에게 문건을 넘겨 문건이 공개되고 박근혜 정권의 쿠데타설이 확산되자 문건에 문제가 있다는 쪽으로 입장을 뒤집었다”고 말했다.

A씨는 “국방부 검찰단은 나를 조사한 직후 B씨에게 내가 B씨와 통화한 내용을 진술했다고 알려줬을 공산이  크다. 놀란 B씨가 내 입을 막기 위해 내게 ‘그런 얘기한 적 없다’고 말을 뒤집는 전화를 한 거다. 수사 내용을 청와대(B씨)에 흘린 국방부 검찰단은 증거 인멸 교사로 처벌받아 마땅하다”고 했다.

민주당 의원이 녹취록 공개 자제 요청

A씨는 B씨와의 전화 대화를 녹음해뒀다고 한다. 기무사 관계자로서 청와대 발 전화를 받으면 업무 실수를 막기 위해 녹음하는 원칙을 세워뒀기 때문이라고 한다. 2018년 하반기 내내 고강도 수사를 받은 A씨는 2019년 들어서도 군인권센터 등 친 민주당 단체들이 쿠데타 음모론을 이어가면서 “윤석열 당시 서울중앙지검장이 수사를 제대로 하지 않고 기무사를 봐줬다”는 주장을 추가하자 분노해 B씨에게 메시지를 보냈다고 한다. “당신과의 통화를 녹음해뒀다. 말도 안 되는 음모론을 계속 방치하면 공개하겠다”는 내용이었다. B씨의 답변은 없었다.

다음날 A씨는 민주당 모 의원의 전화를 받았다고 한다. 이 의원은 A에게 “B씨가 내 사무실에 와 ‘A씨가 나와의 통화를 녹음했다. 그를 톤다운 시켜달라’고 하더라”며 녹취록 공개 자제를 요청했다고 한다. A씨는 “근거 없이 음모론을 주장하는 세력을 말리지 않으면 공개할 것”이라 답하고 전화를 끊었다. A씨는 “다음날부터 음모론 목소리들이 잦아들더라”고 했다.

사라진 보고서의 행방은

문제의 문건은 2017년 2월 박근혜 대통령 탄핵 직후 “치안 불안에 따른 계엄 선포 가능성에 대비해 절차를 검토하라”는 한민구 당시 국방부 장관의 지시에 따라 기무사가 ‘계엄 절차’(8쪽)에다 ‘참고 사례’(50여쪽)를 첨부해 만든 보고서다. 절차를 검토한 보고서일 뿐, 현역 부대에 내려보내는 ‘실행 계획’은 아니라는 게 관계자들의 공통된 설명이다.

전직 기무사 고위 간부는 “보고서에서 참고 사례는 당초 21개였으나 ‘국회 통제’ 등 독소 조항 9개를 빼 12개로 줄었다”며 “그런데도 청와대는 21개가 들어간 참고사례 최초본(67쪽)을 정본인 양 공개해 음모론을 부추겼다”고 주장했다.

이 보고서는 1년 뒤인 2018년 3월 16일 이석구 신임 기무사령관이 송영무 장관에 보고했다. 송 장관은 석 달이 지난 6월 28일에야 이 문건을 청와대에 보고했다. 그러나 B씨의 전화에서 드러났듯이 청와대는 그 훨씬 전 보고서의 존재를 알고 법률 검토까지 마친 정황이 드러났다. A씨는 “이석구 기무사령관이 3월 16일 송 장관에게 보고한 직후 청와대에도 보고서를 줬기 때문일 것”이라고 했다.

A씨의 전언이다. “이 사령관은 송 장관에 보고할 때 보고서 2부를 들고 갔다. 장관에게 1부를 주고 자신이 1부를 보며 보고해야 하기에 그런 거다. 보고가 끝나면 1부는 장관에게 주고, 남은 1부는 생산처인 기무사 방첩처에 반납해야 한다. 2급 비밀 문건이라 반납 안 하면 군사보안법 위반이다. 그러나 이 사령관(현 주 UAE 대사)은 이 보고서를 지금껏 반납하지 않고 있다. 내가 전화해 돌려달라고 했지만, 그는 ‘집무실에서 파기했다’고 하더라. 사령관이라도 비밀문건은 임의로 파기하면 안 된다. 그럴 이유도 없지 않나. 정황을 보면 이 사령관은 그 보고서를 청와대에 넘겼을 가능성이 높다. 청와대는 문건에 문제가 없다고 결론을 내렸으나 넉 달 뒤 문건이 공개되고 쿠데타 음모론으로 비화하자 입장을 바꿔 기무사 때려잡기에 나섰다. 이런 사정이 드러나면 문재인 청와대가 곤란해지니까 이 사령관이 ‘내가 파기했다’며 보고서를 넘긴 사실을 감추고 있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