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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윤석만 논설위원이 간다

천장엔 물 새고 논문 구독비도 부족…위기의 대학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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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윤석만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구멍 뚫린 대학재정 어디까지 왔나

윤석만 논설위원

윤석만 논설위원

“대강당 천장에서 비가 새지만 고칠 돈이 없습니다.” 지난달 18일 국립대학육성사업 성과포럼에 토론자로 참석했던 이혁재 안동대 기획처장의 말이다. 그는 “객석만 1000석이 넘는데, 비만 오면 물이 뚝뚝 떨어진다”며 “냉난방도 잘 안 돼 한여름과 한겨울엔 사용하기 어렵다”고 했다.

2021년 안동대의 예산은 949억원(세출 결산)이었다. 대학교육의 질을 결정하는 교육·연구 및 학생지도 예산은 5.3%에 불과했다. 이 처장은 “10년 전만 해도 고정비의 비중이 30%대였는데 지금은 70%가 넘는다”며 “학교 재량으로 교육과 연구에 투자할 수 있는 돈이 해마다 줄고 있다”고 했다.

14년째 등록금 동결로 수입 감소
교육 환경은 80년대에 멈춰 있어
정부 예산은 초·중·고교에만 집중
“교육세·교부금, 대학도 지원해야”

구호에 그친 대학경쟁력 강화

지난해 9월 동국대 원흥관 천장에서 비가 새 학생들이 임시조치를 하는 모습. [사진 총학생회]

지난해 9월 동국대 원흥관 천장에서 비가 새 학생들이 임시조치를 하는 모습. [사진 총학생회]

돈이 없어 제때 시설을 못 고치고, 교육·연구 투자가 부족한 것은 일부 명문대를 제외한 400여개 대학 모두 비슷하다. 14년째 등록금 동결과 입학정원 감소로 수입은 줄었는데, 정부의 재정지원 비율도 낮아졌기 때문이다. 전체 교육예산 대비 실질 고등교육예산 비율은 2011년 10.8%에서 2020년 9.6%로 감소했다.

명목상으론 늘긴 했다(12%→15.1%). 그러나 이는 5200억원에서 4조원으로 증가한 국가장학금을 포함한 수치다. 김훈호 공주대 교육학과 교수는 “국가장학금은 학생에게 지급되기 때문에 대학회계에 포함되지 않는다”며 “인건비 같은 경직성 경비가 급증해 교육·연구에 투자할 예산이 쪼그라들었다”고 말했다.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역대 모든 정부가 반도체·IT 등 인재 강국을 내세웠지만, 정작 인재 양성을 책임지는 대학의 현실에는 눈을 감고 있다. 소비자물가지수는 2009년 83.9에서 2021년 102.5로 늘었는데(2020년=100), 등록금은 2009년 이후 동결 상태다. 김중백 경희대 기획조정처장은 “이 상태로 10년 후면 많은 대학이 고사 위기에 놓인다”고 했다.

해법은 명확하다. 대학 재정을 늘리려면 등록금을 현실화하거나 정부 지원금을 증액해야 한다. 이런 논의 없이 정치권에서 ‘반의반값 등록금’을 내걸거나, 재원 마련 없이 대학 경쟁력 강화만 꺼내는 것은 어불성설일 뿐이다. 위기에 처한 대학의 현실과 해결책을 들여다봤다.

“화장실 탓에 학교 못 가겠어요”

익명을 요청한 충청권의 국립대 교수 A씨는 지난 3월 첫 강의에서 신입생으로부터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었다. 자기소개 시간에 한 신입생이 “오기 싫었는데 어쩔 수 없이 입학했다”고 말한 것이다. 이 학생은 “화장실이 후져서 다니고 싶은 마음이 싹 사라졌다”고 했다.

A교수는 “처음엔 망치로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이해가 된다”고 했다. 30~40년 된 건물에 리모델링도 제때 하지 않아 화장실이 비좁고, 변기 규격도 요즘 학생들 체격에 맞지 않기 때문이다. A교수는 “1980년대와 비슷한 교육 환경에서 MZ세대의 불편함은 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교육부가 김병욱 국민의힘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40년 이상 돼 정밀점검 대상인 건물 수가 2018~2020년 국립대는 평균 4.7개동에서 6.4개동으로, 사립대는 1.6개동에서 2.1개동으로 늘었다. 지난해 D등급 재난위험시설로 판정된 대학 건물도 11곳이나 됐다. 김 의원은 “판정 직전까지도 학생들이 위험 건물에서 생활했다는 걸 생각하면 아찔하다”고 했다.

지난해 동국대 학생회가 공과대 건물을 조사해보니 천장에서 물이 새는 장소가 38곳이나 됐다. 2020년에는 교수 연구실 천장이 누수로 무너지기도 했다. 조성환 동국대 홍보실장은 “비가 새는 곳은 보수를 완료했다”면서도 “보통 40~50년 이상 된 건물이 많아 손 볼 데가 적지 않다”고 했다.

하지만 새로 짓거나 개축하고 싶어도 여력이 없다. 국립대의 경우 적게나마 시설유지 예산이 정부에서 지원되지만, 사립대는 그나마 없다. 조 실장은 “정부 지원금을 아껴 시설 보완에 쓰고 싶어도 사립학교의 재산 가치를 높여주는 일이라며 반대한다”며 “사립 초·중·고교는 교육청으로부터 시설 보수 예산을 받는 것과 대조된다”고 했다.

다른 사람 아이디로 논문 열람

대학의 재정위기는 교육과 연구의 질마저 떨어뜨린다. 대표적인 게 전자저널을 구독하지 못하는 일이다. 영남권의 한 국립대 공대 교수 B씨는 최신 논문을 볼 때면 유명 대학에 재직 중인 선후배들의 아이디를 빌려 쓴다. 그는 “학교의 예산이 부족해 필요한 저널들을 구독하지 못한다”고 했다.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학생들은 더욱 열악하다. B교수는 “도서관에 신청해 인쇄본을 받는데, 이용 편수가 제한돼 있다”며 “논문 읽기가 공부의 기본인데, 뒷받침해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했다. 충청권의 국립대 교수 C씨는 “심야 전기료처럼 전자저널도 밤에 쓰면 싸다”며 “밤중에 불 켜진 연구실은 논문을 다운 중인 경우가 많다”고 했다.

세계대학평가(QS) 국내 국립대 2위인 전북대조차 돈이 없어 다른 예산을 끌어다 쓴다. 지난해 전자저널 구독 예산(30억원)의 절반을 국립대육성사업 지원금에서 사용했는데, 사업평가에서 감점 요인으로 지적받았다. 국립대육성사업은 지역특화 연구와 소수학문 육성 등으로 비목이 정해져 있어, 전자저널 구독에 쓰면 안 된다는 이유였다. 정용채 기획처장의 이야기다.

감점을 무릅쓴 이유가 있나.
“몇 년 전 교비회계 예산이 부족해 전자저널 일부를 끊은 적 있다. 그러자 교수·학생의 원성이 컸다. 논문 보는 게 연구와 교육의 기본 아닌가. 기본적인 자료조차 볼 수 없다면, 무슨 공부를 할 수 있겠나. 우리도 고육지책이었다.”
대학재정이 어려운 이유는.
“14년째 등록금 동결 상태다. 대부분 편법으로 대학원 등록금만 올렸다. 대학과 비슷했던 대학원 등록금이 지금은 1.5배 차이다. 지난 정부에서 용역 근무자였던 직원들까지 정규직화되면서 비용 부담이 커졌다. 등록금을 현실화할 수도 없고, 재정지원도 빠듯하니 교육·연구에 쓸 돈이 없는 거다.”

사립대는 더욱 어려워 교수들의 임금이 사실상 동결 상태다. 김병욱 의원에 따르면 국립대 조교수의 평균 연봉은 2016년 6608만원에서 2020년 7730만원으로 늘었다. 국립대는 그나마 공무원 임금 인상분만큼은 올라서다. 그러나 사립대는 같은 기간 114만원 상승(5409만원→5523만원)에 그쳤다.

수도권의 한 사립대 교수는 “40세 전후의 조교수가 초임 3000~4000만원 곳도 많다”며 “명문대를 제외한 다수는 처우가 중소기업만도 못하다”고 했다. 김훈호 공주대 교수는 “교수 환경이 열악해지면 교육의 질도 낮아진다”고 말했다.

대학생보다 초등생 지원이 많아

대학의 재정위기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2가지다. 첫째는 등록금 인상을 허용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부정적 여론이 많아 쉽지 않다. 가뜩이나 고물가로 고통받는 상황에서 인플레이션을 부추길 수 있어 정부 역시 부담이다. 결국 실현 가능한 해법은 재정지원 확대다.

한국의 대학생 1인당 공교육비(1만1290달러)는 OECD 평균(1만7065달러)의 66%에 불과하다. 반면 초등학생(1만2535달러)은 평균(9550달러)의 131%다. OECD 국가 중 대학생 공교육비가 초등학생보다 적은 유일한 나라다. 박영호 창원대 기획처장은 “초·중·고교는 정부의 집중투자로 세계적 수준에 올랐지만 대학은 반대”라고 했다.

1998년만 해도 대학생 1인당 공교육비(6365달러)가 초등학생(2838달러)의 2.2배였지만 2014년 역전됐다. 초·중·고교에 쓰이는 교육교부금이 내국세의 20.79%로 고정돼 있어 매년 예산이 큰 폭으로 늘기 때문이다.

추가경정 예산안 편성 때도 ‘돈벼락’이 떨어지곤 한다. 지난 5월 올해 초과 세수가 53조원으로 잡히자, 교부금 예산도 11조원가량 자동 증액됐다. 지난해 갑자기 6조원이 늘었을 때도 11개 교육청은 학부모에게 재난지원금 4700억원을 지급하고, 중·고교 신입생에게 1인당 30만원 또는 노트북을 주는 등 예산이 낭비됐다.

박영호 처장은 “인구가 계속 줄어드는데 교부금 제도를 지금처럼 묶어 놓으면 재정 운영의 효율성이 떨어진다”고 말했다. 실제로 1970년 100만 명이던 연간 출생아 수는 2020년 30만 명으로 급감했다. 박 처장은 “초·중·고교에서 잘 키운 인재가 대학에서 꽃을 피우려면 대학도 교부금을 쓸 수 있게 탄력적 재정 운영이 필요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