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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현대판 음서제’ 민주 유공자 예우법, 재추진 안 된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0면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민주유공자법 정기 국회 통과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스1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민주유공자법 정기 국회 통과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스1

더불어민주당이 ‘민주 유공자 예우법’을 재추진하는 것은 부적절하다. 해당 법안은 문재인 정부 시절인 2020년 우원식 의원이 발의했다가 공정 논란이 일면서 추진이 무산됐다. 운동권 출신 의원들이 ‘셀프 특혜를 준다’는 비판이 겹치면서 설훈 민주당 의원은 지난해 같은 취지의 법안을 발의했다 철회한 바 있다. 그런데도 재추진 동참 연판장에 민주당 소속 163명과 친야권 의원 등 174명이 서명했다. 여당이 반대해도 강행 처리할 수 있는 상황이다.

해당 법안은 유신 반대 운동이나 6월 항쟁 등에 참가했던 운동권 인사들을 유공자로 지정하고, 그 배우자와 자녀에게 의료비와 교육비, 장기저리 대부 등을 지원하는 내용이다. 정부와 공공기관 취업 때 10% 가산점도 주도록 했다. 민주당은 재추진하려는 ‘우원식 안’이 지원 대상을 ‘사망 또는 행방불명, 상이를 입은 사람과 가족’으로 한정했기 때문에 현재 정치인들은 대상에서 빠져 셀프 특혜가 아니라고 항변한다.

하지만 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대학 입시에서 특혜를 받을 수 있어 ‘현대판 음서제’라는 비판이 나온다. 이 법이 없는 상태에서도 2020년까지 8년간 ‘민주화 운동 관련자’ 자격으로 대학 수시전형에 합격한 학생이 119명에 달했다. 자료가 공개됐을 당시 ‘대학 입시와 민주화 운동이 무슨 상관이냐’ ‘민주화 운동이 계급이냐’는 반발이 나왔었다. 유공자로 인정되면 이들을 뽑는 특별전형이 대다수 대학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 공정 경쟁이 생명인 대입에서 특혜 대상은 매우 엄격해야 한다.

취업에서 가산점을 받도록 한 것은 더 큰 문제다. 대학을 졸업하고도 좋은 직장에 취업하기는 하늘의 별 따기다. 지난 대선에서 드러난 2030 젠더 갈등도 일자리 경쟁과 무관치 않다. 조국 전 장관 딸의 입시 비리 의혹과 최근 윤석열 정부 대통령실 채용 등이 비난을 산 것도 같은 맥락이다. 대입이라는 무한 경쟁에 내몰리고 구직에서도 좌절하고 있는 젊은이들에게 ‘운동권 부모를 둔 게 실력’이라고 말할 셈인가.

민주화에 헌신하다 목숨을 잃거나 부상을 당해 가족까지 고통을 겪은 이들을 외면하자는 게 아니다. 이미 민주화 운동 관련자 명예 회복 및 보상 등에 관한 법이 시행돼 상당한 보상이 이뤄졌다. 민주화 운동 경력으로 국회의원이나 장관이 되는 등 사회적 대우를 받은 이도 많다. 군사 독재 시절 우리 국민 중 민주화를 열망하지 않은 이가 얼마나 되겠나. 민주당의 무리한 법안 재추진은 민주화 세력에 대한 반감만 불러올 수 있는 만큼 중단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