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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시평

김정은의 7차 핵실험 딜레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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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김병연 서울대 국가미래전략원장

김병연 서울대 국가미래전략원장

북한이 또 핵실험을 할지는 김정은만이 알 것이다. 아니 그도 아직 마음을 정하지 못했을 수 있다. 북한이 핵실험을 해야 할 이유는 있다. 먼저 핵능력 고도화를 위해서다. 핵탄두를 소량화, 경량화하고 미사일 등에 장착할 수 있도록 표준화, 규격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미국을 압박하기 위해서도 그렇다. 2019년 하노이 회담 실패 후 북한은 ‘새로운 셈법’을 가져올 것을 요구했지만 미국은 움직이지 않았다. 바이든 정부 들어서 미국의 북한 문제에 대한 집중도도 약해졌다. 이런 미국의 현상유지 전략을 바꾸려면 2016∼17년처럼 대형사건(?)이 필요하다고 믿을 것이다.

지금 상황은 2016년 때와 달라
핵실험, 권력에 악영향 줄 수 있어
감행하면 구조적 변화 신호탄
7차 넘어 8, 9차로 이어질 가능성

하지만 북한이 올 4월, 6월, 7월 초에 핵실험을 하리란 예측은 다 빗나갔다. 왜일까. 핵실험을 단순한 문제로 보았기 때문이다. 김정은은 군사적 필요뿐 아니라 대내 상황과 국제관계에 미칠 영향을 모두 고려해 핵실험을 결정한다.

그런데 현 국면은 2016년 4차 핵실험을 할 때와 크게 다르다. 당시에는 핵개발을 위해 실험이 필수적이었고, 경제도 괜찮은 편이었으며, 대중·대미 관계에서도 잃을 것이 없었다. 그러나 지금의 핵실험은 핵무력 완성에는 도움 되겠지만 필수 불가결한 것은 아니다. 특히 핵은 과잉, 경제는 과소 투자된 상태에서 추가 핵실험은 자원 배분을 더욱 비효율적으로 만든다.

가장 큰 문제는 그의 권력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이다. 2016년의 핵실험은 정권 지지도를 끌어 올렸지만 7차 핵실험은 끌어내릴 것이다. 웬만한 북한 주민은 핵실험이 제재를 초래했고 그 때문에 자신의 소득이 급감했음을 알고 있다. 추가 핵실험 때문에 그들의 경제적 고통이 연장될 것도 직감하고 있다. 만약 코로나가 끝나도 경제가 나아지지 않는다면 불만은 거세질 것이다.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이 북한 이탈주민을 대상으로 이들이 북한에 거주할 당시에 주민의 김정은 지지도를 설문한 결과, 2017∼18년 평균 72.5%에서 2019년 62.5%로 10%포인트 하락했다. 제재로 인한 경제난과 하노이 회담 실패가 원인으로 보인다. 현재 지지도는 더 떨어져 집권 이후 최저수준일 것이다. 코로나 방역과 무역 봉쇄로 경제난이 극심해진 데다 주민 통제를 강화했기 때문이다. 이 상황에서의 핵실험은 정권에 위기감을 불러올 수준까지 지지도를 추락시킬 수 있다.

중국의 반응도 무시하기 어렵다. 중국의 시각에서 북한 핵은 양날의 칼이다. 유엔 안보리에서 중국은 대북 제재를 반대하겠지만 고심은 깊을 것이다. 일단 미·중 대립이 격화되는 형국에서 북한 카드의 가치가 올라간다는 점에서는 플러스다. 그러나 핵실험이 몰고 올 한반도 불안정은 중국 이익에 반한다. 냉정히 보면 북핵은 미국보다 북한에 인접한 국가가 더 우려할 문제다. 만약 중국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핵실험을 감행한다면 중국은 북한을 경제적으로 압박할 수 있다.

7차 핵실험만으로 미국의 현상유지 전략을 바꿀 수도 없다. 바이든 정부는 미국 대(對) 중·러의 대립이 격화된 지금, 북핵 대응 쪽으로 정책의 우선순위를 옮기기 어렵다. 11월 미국 중간 선거를 앞두고 성과를 내기 어려운 북한 문제에 집중하려 할지도 의문이다. 확장 억지를 강화하는 것 외에 미국의 대응 수단이 제한적인 점도 중요한 이유다. 중국과 러시아의 반대로 유엔 안보리의 추가 제재는 채택되기 어려울 것이므로 미국은 3자 제재(secondary boycotts)를 고려할 것이다.

그러나 북한과 러시아를 대상으로 한 3자 제재는 상징적일 뿐 실효성은 거의 없다. 효과를 거두려면 중국의 대기업과 은행을 제재해야 하겠지만 미국이 이에 따른 위험을 부담하려 할지 의문이다. 대중(對中) 제재는 중국을 러시아와 밀착하게 만들어 우크라이나 전쟁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김정은이 7차 핵실험을 감행한다면 8차, 9차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 김정은의 운신 폭은 매우 좁다. 유리한 국면을 만들기 위해 핵실험을 했다가 원치 않은 결과가 발생할 수도 있다. 그렇다고 2016년 이전으로 되돌아가기도 어렵다.

이런 모든 위험에도 불구하고 핵실험을 시도한다면 김정은의 결심이 확고하다는 의미다. 이는 그만큼 내부 상황이 절박하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코로나가 끝난 이후, 북중 무역의 재개와 중국의 경제지원을 기다릴 여유가 없다는 뜻이다. 만약 미국이 ‘새로운 셈법’을 내놓지 않는다면 북한은 8차, 9차 핵실험을 통해 미국을 더 강하게 압박하려 들 것이다. 2017년 상황이 재연되는 셈이다.

북한의 7차 핵실험은 일회적 사건이 아니라 구조적 변화의 신호탄이다. 북한의 변동성이 커지는 가운데 남한이 직면할 불확실성도 증가할 전망이다. 요동치는 세계 질서가 북핵 문제와 뒤엉키면서 경제의 하방 위험을 높일 것이다. 우리 정책 결정자는 이 큰 그림을 볼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미리 보고 세밀히 준비해야 한다. 지난 정부에서 앵무새처럼 되뇌던 뻔한 정책이 아니라 다양한 정책을 단계별로 혼합·배열하는 팔색조 정책을 펴야 한다.

김병연 서울대 국가미래전략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