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文정부 겨눈 대통령실 "자필 귀순의향서 무시, 조사 협조하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대통령실은 17일 탈북어민 강제북송 사건과 관련해 “야당과 지난 정부 관련자들이 해야 할 일은 정치 공세가 아니라 조사에 성실하게 협조해 진실을 밝히라는 국민의 요구에 응답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대통령실의 입장 발표는 정의용 전 국가안보실장이 이날 오전 해당 사건과 관련해 ‘흉악범 추방 사건에 대한 입장문’을 낸 데 대해 반박하는 형식으로, 최영범 홍보수석이 직접 마이크를 잡았다.

 최 수석은 이날 오후 3시 40분 용산 대통령실에서 한 브리핑에서 정 전 실장이 북송된 탈북 어민 2명을 ‘엽기적인 살인마’라고 칭한 데 대해 “제대로 된 조사도 없이 탈북 어민을 엽기적인 살인마라 규정한 것은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어 “당연히 우리 정부 기관이 우리 법 절차에 따라서 충분한 조사를 거쳐 결론 내렸어야 마땅한 일”이라며 “북송 어민들이 귀순 의사가 없었다는 것도 궤변이다. 그렇다면 이 사람들이 자필로 쓴 귀순의향서는 왜 무시했단 말이냐”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이 사안 본질은 우리 법대로 처리해야 마땅한 탈북 어민을 북측이 원하는 대로 사지로 돌려보낸 것”이라고 규정했다.

최영범 대통령홍보수석비서관이 17일 오후 용산 대통령실 브리핑룸에서 탈북어민 강제북송 사건에 대한 대통령실의 입장을 밝히고 있다. 대통령실 사진기자단

최영범 대통령홍보수석비서관이 17일 오후 용산 대통령실 브리핑룸에서 탈북어민 강제북송 사건에 대한 대통령실의 입장을 밝히고 있다. 대통령실 사진기자단

최 수석은 “국회 보고도 현장 지휘자의 문자메시지 보고가 언론에 노출되자 마지못해 한 것 아닌가”라며 “그렇게 떳떳한 일이라면 왜 정상적 지휘계통을 무시하고 국가안보실 차장이 국방부 장관 모르게 영관급 장교로부터 문자로 보고받았다는 것인가”라고 반문했다. 해당 사건은 2019년 11월 7일 당시 국회를 찾은 김유근 안보실 1차장이 공동경비구역 대대장에게 문자메시지로 ‘북한 주민 2명 송환 예정’ 등의 내용을 보고받은 게 언론사 카메라에 포착되면서 알려졌다. 정경두 당시 국방부 장관은 비슷한 시각 국회에서 ‘북한 주민 두 명을 북측으로 송환 예정인 사실을 알고 있나’라는 질문에 “언론을 통해서 확인했다”고 말해 ‘패싱’ 논란이 일었다.

 최 수석은 정치권에서 해당 사건에 대한 국정조사 요구가 나오는 데 대해 “특검이나 국정조사는 여야가 합의하면 피할 이유가 없다. 다만 야당이 다수 의석을 믿고 진실을 호도할 수 있다고 믿는 건 아닌지 궁금하다”며 “국민 눈과 귀를 잠시 가릴 순 있어도 진실을 영원히 덮어둘 수는 없다”고 말했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이 ‘탈북어민 북송 사건과 대통령실 사적 채용비선 논란을 동시에 국정조사하자’고 제안한 데 대해선 “급한 일부터 처리하는 게 순리다. 탈북 어민 강제 북송 사건의 진상이 뭐냐는 여론이 비등한 데 그것(탈북어민) 먼저 처리해야 맞다”고 했다.

최영범 홍보수석이 17일 용산 대통령실 브리핑룸에서 탈북어민 강제북송 사건에 대한 대통령실 입장을 밝히고 있다. 대통령실 사진기자단

최영범 홍보수석이 17일 용산 대통령실 브리핑룸에서 탈북어민 강제북송 사건에 대한 대통령실 입장을 밝히고 있다. 대통령실 사진기자단

 이어 대통령실은 조사 과정의 조기 종료와 탈북 어민의 귀순 여부, 법 적용 등 3대 문제점을 담은 별도의 보도 참고자료도 배포했다. 대통령실은 먼저 “당시 조사 과정에서 본인 자백 외에는 물증이 전무한 상황에서 추가 조사가 필요함에도, 청와대는 신호 정보에만 의존해 탈북 사실을 사전에 파악하고, 어민들이 우리 측으로 넘어오기도 전에 ‘흉악범 프레임’을 씌워 해당 어민의 북송을 미리 결정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2020년 9월 해양수산부 공무원 피살 사건을 언급하면서 “해당 공무원의 북측 해역 표류 시에는 신호 정보를 장시간 방치해 북한군에 의한 피살을 막지 못했으면서도, 2019년 탈북 어민 처리에서는 신호 정보를 기민하게 활용해 흉악범으로 간주, 강제 북송 조치를 결정하는 등 모순된 행태를 보였다”고 지적했다. 또 “문재인 정부 청와대는 자필 귀순의향서와 중앙합동정보조사를 평가절하했다. 그리하여 보통 1~2개월 걸리는 검증 과정을 2~3일 이내에 끝내는 등 합심 과정을 졸속으로 처리하고 해당 어선 반환 등 탈북민 합심 조사를 부실하게 강제로 조기 종료시켰다”고 주장했다.

 대통령실은 이들의 귀순 의사 여부와 관련해선 “탈북 어민들은 NLL(북방한계선)을 넘기 전 ‘이제 다른 길이 없다. 남조선으로 가자’며 자발적인 남하를 결정했다. 나포 후 보호 신청서 자필 서명 등을 통해 귀순 의사를 명확히 밝혔다”고 강조했다. 또 “인권과 법치를 강조하는 문재인 대통령도 과거 페스카마호에서 우리 국민을 살해한 외국인 선원도 우리 동포로서 따뜻하게 품어줘야 한다고 한 바 있다”고 덧붙였다. 페스카마호 사건은 1996년 참치잡이 원양어선에서 조선족 선원 6명이 선상 반란을 일으켜 한국인 선장 등 11명을 살해한 사건으로, 문 전 대통령은 이 사건의 2심 변론을 맡았다.

통일부는 2019년 11월 판문점에서 탈북어민 2명을 북한으로 송환하던 당시 촬영한 사진을 12일 공개했다. 당시 정부는 북한 선원 2명이 동료 16명을 살해하고 탈북해 귀순 의사를 밝혔으나 판문점을 통해 북한으로 추방했다. 사진은 탈북어민이 몸부림치며 북송을 거부하는 모습. 통일부 제공

통일부는 2019년 11월 판문점에서 탈북어민 2명을 북한으로 송환하던 당시 촬영한 사진을 12일 공개했다. 당시 정부는 북한 선원 2명이 동료 16명을 살해하고 탈북해 귀순 의사를 밝혔으나 판문점을 통해 북한으로 추방했다. 사진은 탈북어민이 몸부림치며 북송을 거부하는 모습. 통일부 제공

 여권은 공세 수위를 계속 끌어올릴 전망이다. 익명을 원한 여권 고위 관계자는 “강제 북송된 어민들이 ‘남한에서 살고 싶다’는 취지의 자기소개서와 보호 신청서를 작성한 것으로 파악됐다”며 “합심 조사에 참여했던 직원들조차 ‘한참 조사를 하는 중에 갑자기 북송이 결정돼 어리둥절해 했다’고 한다”고 전했다. 국민의힘 핵심 관계자는 “북한으로 송환될 당시 촬영된 영상의 공개 여부도 검토하고 있다”며 “북측으로 넘지 않으려고 강하게 저항하며 남긴 음성, 그들의 표정, 몸의 상처 등이 담긴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