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尹, 秋에 "남겨달라" 부탁한 그 검사...'박지원 고발' 맡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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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이 박지원·서훈 전 국가정보원장이 고발된 사건을 각각 서울중앙지검 공공수사1부, 3부에 맡기며 본격 수사에 나섰다. 문재인 정부의 대북 인권 문제와 관련한 대표적 사건들을 겨냥한 것이어서 전 정부 사정 수사가 시작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국정원이 자체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두 달가량 조사를 거친 후 두 전직 원장을 고발했다는 점에서 수사가 예상보다 빠르게 진행될 것이란 전망이다.

박지원(왼쪽), 서훈 전 국가정보원장. 중앙포토

박지원(왼쪽), 서훈 전 국가정보원장. 중앙포토

'공안통' 이희동 검사 수사 받는 박지원

서울중앙지검은 7일 박지원 전 원장이 ‘서해 공무원 피살’, 서훈 전 원장은 ‘탈북 어민 강제 북송’과 관련해 전날 국정원으로부터 고발된 사건을 각각 공공수사1부(이희동 부장검사)와 공공수사3부(이준범 부장검사)에 배당했다고 밝혔다. 서울중앙지검 관계자는 “전직 원장들과 함께 고발된 다른 국정원 직원들도 각자 관련 사건에 따라 수사 대상”이라고 밝혔다.

공공수사1부는 피살된 공무원 이대준씨 유족의 고발장을 지난달 22일 접수해 서훈 당시 국가안보실장, 김종호 전 민정수석, 이광철 전 민정비서관 등에 대해 수사를 벌이고 있었다. 이번에 박지원 전 원장에 대한 고발 사건까지 맡으면서 문재인 정부 청와대와 정보당국 등 대북 라인 전원을 수사하게 됐다. 일각에선 사안의 중대성 탓에 ‘특별수사팀’ 가능성도 제기됐지만, 현재로선 공공수사1부가 계속 수사하는 방안이 유력하다고 한다.

수사를 이끌 이희동(사법연수원 32기) 부장검사는 윤석열 대통령의 신임을 받는 공안통이다. 2020년 1월, 추미애 전 장관이 검찰총장이던 윤 대통령의 측근 학살 인사를 단행할 때 이 부장검사는 대검 선거수사지원과장이었다. 당시 윤 대통령이 대검에 남겨 달라고 마지막까지 요청한 6명의 검사 중 한 명으로도 알려져 있다.

유족 측 "박지원 구속해야"… 박 "바보짓 했겠나"

박 전 원장은 2020년 9월 21일 해양수산부 공무원 이씨가 서해상에서 실종된 후 이튿날 22일 밤 9시 북한군에 피살될 때까지 우리 측이 파악한 정보가 담긴 첩보 보고서 등을 무단 삭제한 혐의를 받는다. 당시 국정원 직원들이 북측 어선이 이씨를 최초 발견해 북한군에 통보한 이후 북측 교신 내용을 바탕으로 이씨가 최초 북측에 구조를 요청했는지, 월북 의사를 밝혔는지 여부 등이 담긴 실시간 정보상황 보고서 등을 생산해 보고했는데, 사후에 박 전 원장이 이를 삭제하라고 지시했다는 혐의다.

국정원은 박 전 원장에 대해 국가정보원법위반(직권남용죄) 외에 공용전자기록등손상죄도 고발장에 적시했다. 이 때문에 박 전 원장이 일부 문건을 직접 훼손했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국민의힘 하태경 의원은 “사건 직후인 9월 22일~24일 국정원이 (국회에) 보고할 게 없다고 했는데 이제야 이해하게 됐다. 다 삭제했다는 것 아니겠나”고 했다.

고(故) 이대준 씨의 형 이래진 씨가 5일 서울중앙지검에 대통령기록물 압수수색 요청서를 제출하고 있다. 연합뉴스.

고(故) 이대준 씨의 형 이래진 씨가 5일 서울중앙지검에 대통령기록물 압수수색 요청서를 제출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씨 유족 측은 8일 검찰에 박 전 원장 구속수사 요청서를 내기로 했다. 이씨의 형인 이래진씨는 “정부가 월북이라고 단정짓는 과정에서 박 전 원장이 어떻게 정보를 취급했는지 확실하게 밝혀야 한다”고 취지를 설명했다.

박 전 원장은 이날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관련 혐의를 모두 부인했다. 박 전 원장은 “제가 (첩보 보고서를) 삭제하더라도 국정원 메인서버에 (원본이) 남는다. 왜 그런 바보짓을 하겠냐"며 “(원본 삭제는) 불가능한 일”이라고 말했다. 또, ‘이씨가 북한군에 대한민국 공무원이라는 관등성명을 대며 구조를 요청했다’는 정황에 대해서도 박 전 원장은 “해수부 공무원이 관등성명을 북한에 얘기한 건 사실이다. 저도 (국회에) 얘기했다”며 “얘기를 다 한 것을 왜 삭제하겠나”고 말했다.

이에 국정원은 추가 입장문을 내고 "박 전 원장 등을 군사정보통합처리체계(메인서버)에 탑재돼 있거나 이를 통해 관리·유통되는 문건을 삭제한 혐의로 고발한 것이 아니다"며 "고발 내용과 전혀 무관하다. 수사과정에서 실체적 진실이 밝혀질 것"이라며 자신감을 보였다. 또 '고발 과정에서 기밀 문건의 관리 방식이 노출됐다'는 논란에 대해서도 "그런 사실이 없다"고 일축했다.

서훈, 공공수사1·3부 양쪽에서 수사 받는다

서 전 원장은 서해 공무원 사건과 별개로 탈북 어민 강제 북송과 관련한 수사도 받게 됐다. 사건을 맡은 서울중앙지검 공공수사3부는 최근 조직 개편으로 기존 형사10부에서 간판을 바꾼 부서다. 이준범(33기) 부장검사 역시 부산지검 공공·외사부장 등을 거치며 공안 수사 경험을 쌓았다.

이 사건은 2019년 11월 2일 북한 선원 2명이 동해상에서 동료 16명을 살해하고 탈북해 귀순 의사를 밝혔지만, 다시 북측으로 5일 만에 송환된 내용이다. 서 전 원장은 우리 정부의 합동신문 조사가 끝나지 않았는데 조기에 강제 종료시킨 혐의를 받고 있다. 국정원과 군, 경찰이 탈북자 신상, 귀순 의사 등을 파악하는 합동신문은 최소 보름에서 길게는 한 달이 넘게 소요된다고 한다. 하지만 당시엔 탈북자들이 나포된 시점부터 조사를 마치고 북송되기까지 단 5일이 걸려 논란이 일었다.

국정원은 서 전 원장을 고발하며 국가정보원법위반(직권남용죄)과 허위 공문서작성죄라고 밝혔다. 서 전 원장의 개입으로 탈북자들의 귀순 의사가 의도적으로 왜곡됐거나 북송까지 기간이 단축됐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서 원장은 아직 별다른 해명을 내놓지 않고 있다.

법조계에선 국정원이 철저한 사전 준비 끝에 고발 카드를 꺼냈다는 분석이 많다. 국정원은 6월부터 자체 TF를 꾸려 대대적인 감찰을 진행했다고 한다. 국정원 관계자는 “두 전직 원장 관련 사건도 TF에서 충분한 조사를 거쳤다”고 말했다.

국정원 TF 고발인 조사…'서버 압수수색' 가능성도

검찰은 조만간 국정원 태스크포스(TF) 관계자들을 고발인 신분으로 불러 사건의 윤곽을 파악할 것으로 예상된다. 국정원 내부 조사 결과와 고발 근거 자료를 확보하는 대로 수사에 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국정원 전산서버에 대한 전격 압수수색이 이뤄질 가능성도 있다. 박 전 원장의 공용전자기록 손상 혐의, 서 전 원장의 허위 공문서작성 혐의 등을 확인하려면 압수수색이 필요성이 커진다. 서해 공무원 사건에선 국정원 첩보 보고서가 담긴 서버, 탈북 어민 북송과 관련해선 국정원 내 대북 부서 결재라인이 압수수색 대상으로 꼽힌다.

두 사건 모두 문 정부 청와대를 겨누고 있는 만큼 청와대 윗선까지 수사가 확대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특히 서해 공무원 피살 당일 문 대통령 관련 이른바 '청와대 6시간 의혹'에 대해 여당을 중심으로 진실 규명 요구가 커지고 있다. '6시간'은 이씨가 북한에 나포된 사실을 우리 정부가 알게 된 시점부터 피살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검찰은 6시간 동안 문 대통령의 지시가 무엇이었는지, 이후 해경이 월북으로 발표한 경위 등을 확인하기 위해 당시 국가안보실 문건들이 보관된 대통령기록관을 압수수색하는 방안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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