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안혜리의 시선

김건희 5만원 치마 32만원 발찌 비밀…출처는 친오빠였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8면

안혜리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안혜리 논설위원

안혜리 논설위원

칭찬이든 비판이든 지겨울 만큼 쏟아지는 김건희 여사 패션 관련 기사를 대부분 제목만 보고 지나쳤겠지만 만약 내용까지 꼼꼼히 읽어봤다면 누구나 한 번쯤 이런 의문을 품을 수밖에 없었을 거다. 충북 구인사를 방문했을 때 입은 평범한 검은색 치마가 어느 특정 쇼핑몰의 5만4000원짜리 제품인지 어떻게 알았을까. 아니, 무엇보다 비공식 일정이라 사진기자 한 명 없는 자리였는데 대체 어느 독자가 이렇게 근접거리에서 김 여사를 촬영한 후 사진을 언론에 제공했을까. 윤석열 대통령 부부의 첫 해외 순방길에 김 여사가 두른 발찌가 국내 스타트업이 내놓은 32만 7000원짜리라는 건 또 어떻게 그렇게 금방 확인한 걸까. 청와대 개방을 기념해 열린 '열린음악회' 관람 때 입은 디올(DIOR) 재킷이야 해당 브랜드가 이번 시즌에 미는 주력 신상품이라 쉽게 구별할 수 있지만, 아무 특징 없는 검정 치마와 눈에 잘 띄지도 않는 발찌 정보가 어떻게 시시콜콜 나오는 걸까.

윤석열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가 지난 5월 충북 단양 구인사를 방문한 모습. 이날 입은 치마가 5만원대 쇼핑몰 제품이라는 게 화제가 됐다. [독자 제공]

윤석열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가 지난 5월 충북 단양 구인사를 방문한 모습. 이날 입은 치마가 5만원대 쇼핑몰 제품이라는 게 화제가 됐다. [독자 제공]

 윤석열 대통령과 부인 김건희 여사가 지난달 27일 스페인 마드리드에 도착해 공군 1호기에서 내리는 모습. 이날 김 여사가 착용한 발찌가 한 스타트업의 32만원대 제품이라는 정보가 많이 돌았다. 브로치가 2000만원대 티파니라는 건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윤석열 대통령과 부인 김건희 여사가 지난달 27일 스페인 마드리드에 도착해 공군 1호기에서 내리는 모습. 이날 김 여사가 착용한 발찌가 한 스타트업의 32만원대 제품이라는 정보가 많이 돌았다. 브로치가 2000만원대 티파니라는 건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정답은 오빠다. 오타가 아니다. 김건희 여사의 친오빠가 친분 있는 몇몇 기자들에게 직접 김 여사 사진과 패션정보 등을 텔레그램을 통해 전달해왔다. '김 여사의 소박한 패션' 류의 기사가 쏟아진 배경이다. 이미 여러 차례 논란이 된 김 여사 개인 팬클럽도 매우 비정상적이지만 아무 직책 없는 대통령 처가 식구가 기자들을 상대하며 선별적으로 대통령 부부 관련 정보를 전달해왔다는 사실은 믿기 어려울 만큼 비상식적이다.

봉하마을을 방문하는 공식 일정에 김 여사가 사적 인연의 지인을 동행해 비선 논란을 야기한 게 불과 한 달 전이다. 반성과 아울러 공적 자리가 주는 무게가 얼마나 무거운지 충분히 교훈을 얻었을 법도 한데 어찌 된 일인지 대통령 부인과 그 가족은 이처럼 대담하게 공과 사의 선을 무너뜨리니 국민의 한 사람으로 보기 민망하다. 그저 김 여사 주변이 공사 구분을 잘 못 한다는 한탄으로 어물쩍 넘길 사안이 아니다. 대통령 부인을 담당하는 제2부속실이 없다고 퉁치고 넘어갈 일도 아니다. 윤 대통령 본인은 말할 것도 없고 대통령실이 이를 몰랐다면 무능이고 알고도 눈을 감고 있는 거라면 명백한 직무유기 아닌가. 지금은 지지율 하락 정도에 그치지만 앞으로가 더 큰 문제다. 통제 불능 대통령 측근의 부적절한 처신은 늘 정권의 위기로까지 이어지지 않았나.
지금 당장 그런 위기의 징후를 잘라야 하는데 상황은 정반대로 전개되고 있다. 대통령 가족의 소소한 패션 정보 유출을 넘어 지난 스페인 순방 때는 김 여사와 평소 친분이 두터운 민간인 신모씨가 동행하고 돌아올 때는 심지어 대통령 전용기로 함께 귀국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이 자체로도 매우 부적절하지만 신씨가 정부 부처와 여러 이해관계가 얽힐 수 있는 유명 한방병원 재단 이사장의 딸인 데다 대통령 측근인 이원모 대통령인사비서관의 아내라는 점에서 사안이 매우 심각하다. 그런데도 언론에 이 사실이 공개된 후 대통령실의 해명은 안이하기 그지없다. “행사 기획과 사전답사 업무를 맡기기 위해 우리가 도움을 요청했다”며 “민간인이라도 외무부 장관 결재를 통해 기타 수행원으로 분류할 수 있다"고 했다.
애초에 비상식적인 일이 없어야 하지만 이미 벌어져서 비판이 제기됐다면 사과하고 바로잡는 게 맞다. 그런데 이 무슨 궤변인가. 언론에 드러난 이력만 보면 신모씨는 아버지가 이사장으로 있는 재단 산하 J메디컬아카데미글로벌위원장, J바이오 대표를 지내면서 해외 몇몇 기관과 협력 관계를 맺은 정도다. 그런데 대통령실과 외교부가 그런 경력의 민간인에게 왜 순방 일정 도움을 요청한 것인지 대통령실은 꼭 밝히고 넘어가기 바란다.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지난달 29일 스페인 동포 만찬 간담회에 참석했다. 5만원대 쇼핑몰 치마 등으로 소박한 이미지를 강조해왔지만 이날 착용한 펜던트는 사이즈에 따라 수천만원에서 1억원을 넘는 반클리프앤아펠 스노우플레이크 모델이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지난달 29일 스페인 동포 만찬 간담회에 참석했다. 5만원대 쇼핑몰 치마 등으로 소박한 이미지를 강조해왔지만 이날 착용한 펜던트는 사이즈에 따라 수천만원에서 1억원을 넘는 반클리프앤아펠 스노우플레이크 모델이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더불어민주당이 5년 만에 정권을 내준 건 국민을 대놓고 우습게 봤기 때문이다. 비단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임명만을 얘기하는 게 아니다. 임기 초 김정숙 여사 옷값 논란 때도 그랬다. 임기 초 사치 논란이 빚어졌을 때 바로잡았으면 좋았으련만 정장 한 벌이 10만원대인 저렴한 홈쇼핑을 이용한다는 식의 진실과 거리가 먼 홍보로 일관했다. 당장 상황은 모면했을지 몰라도 문제는 점점 더 불어나 퇴임 때까지 대통령 발목을 잡았다. 지금 딱 그때 생각이 난다. 김건희 여사 주변에서 아무리 32만원 발찌로 국민 눈을 가려도 눈 밝은 국민은 그날 발이 아닌 가슴에 단 브로치가 2610만 원짜리 티파니 아이벡스 클립 브로치라는 걸 안다. 5만 원짜리 치마 타령을 한들 실제론 스페인 교포 간담회 때 목에 건 반클리프앤아펠 스노우플레이크 펜던트가 사이즈에 따라 적게는 6000만원대에서 많게는 무려 1억 원짜리라며 반감을 가질 뿐이다. 부적절한 가족의 개입도 문제지만, 진정성이 결여된 이런 얄팍한 언론플레이는 결국 역풍만 가져올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