칭찬이든 비판이든 지겨울 만큼 쏟아지는 김건희 여사 패션 관련 기사를 대부분 제목만 보고 지나쳤겠지만 만약 내용까지 꼼꼼히 읽어봤다면 누구나 한 번쯤 이런 의문을 품을 수밖에 없었을 거다. 충북 구인사를 방문했을 때 입은 평범한 검은색 치마가 어느 특정 쇼핑몰의 5만4000원짜리 제품인지 어떻게 알았을까. 아니, 무엇보다 비공식 일정이라 사진기자 한 명 없는 자리였는데 대체 어느 독자가 이렇게 근접거리에서 김 여사를 촬영한 후 사진을 언론에 제공했을까. 윤석열 대통령 부부의 첫 해외 순방길에 김 여사가 두른 발찌가 국내 스타트업이 내놓은 32만 7000원짜리라는 건 또 어떻게 그렇게 금방 확인한 걸까. 청와대 개방을 기념해 열린 '열린음악회' 관람 때 입은 디올(DIOR) 재킷이야 해당 브랜드가 이번 시즌에 미는 주력 신상품이라 쉽게 구별할 수 있지만, 아무 특징 없는 검정 치마와 눈에 잘 띄지도 않는 발찌 정보가 어떻게 시시콜콜 나오는 걸까.
정답은 오빠다. 오타가 아니다. 김건희 여사의 친오빠가 친분 있는 몇몇 기자들에게 직접 김 여사 사진과 패션정보 등을 텔레그램을 통해 전달해왔다. '김 여사의 소박한 패션' 류의 기사가 쏟아진 배경이다. 이미 여러 차례 논란이 된 김 여사 개인 팬클럽도 매우 비정상적이지만 아무 직책 없는 대통령 처가 식구가 기자들을 상대하며 선별적으로 대통령 부부 관련 정보를 전달해왔다는 사실은 믿기 어려울 만큼 비상식적이다.
봉하마을을 방문하는 공식 일정에 김 여사가 사적 인연의 지인을 동행해 비선 논란을 야기한 게 불과 한 달 전이다. 반성과 아울러 공적 자리가 주는 무게가 얼마나 무거운지 충분히 교훈을 얻었을 법도 한데 어찌 된 일인지 대통령 부인과 그 가족은 이처럼 대담하게 공과 사의 선을 무너뜨리니 국민의 한 사람으로 보기 민망하다. 그저 김 여사 주변이 공사 구분을 잘 못 한다는 한탄으로 어물쩍 넘길 사안이 아니다. 대통령 부인을 담당하는 제2부속실이 없다고 퉁치고 넘어갈 일도 아니다. 윤 대통령 본인은 말할 것도 없고 대통령실이 이를 몰랐다면 무능이고 알고도 눈을 감고 있는 거라면 명백한 직무유기 아닌가. 지금은 지지율 하락 정도에 그치지만 앞으로가 더 큰 문제다. 통제 불능 대통령 측근의 부적절한 처신은 늘 정권의 위기로까지 이어지지 않았나.
지금 당장 그런 위기의 징후를 잘라야 하는데 상황은 정반대로 전개되고 있다. 대통령 가족의 소소한 패션 정보 유출을 넘어 지난 스페인 순방 때는 김 여사와 평소 친분이 두터운 민간인 신모씨가 동행하고 돌아올 때는 심지어 대통령 전용기로 함께 귀국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이 자체로도 매우 부적절하지만 신씨가 정부 부처와 여러 이해관계가 얽힐 수 있는 유명 한방병원 재단 이사장의 딸인 데다 대통령 측근인 이원모 대통령인사비서관의 아내라는 점에서 사안이 매우 심각하다. 그런데도 언론에 이 사실이 공개된 후 대통령실의 해명은 안이하기 그지없다. “행사 기획과 사전답사 업무를 맡기기 위해 우리가 도움을 요청했다”며 “민간인이라도 외무부 장관 결재를 통해 기타 수행원으로 분류할 수 있다"고 했다.
애초에 비상식적인 일이 없어야 하지만 이미 벌어져서 비판이 제기됐다면 사과하고 바로잡는 게 맞다. 그런데 이 무슨 궤변인가. 언론에 드러난 이력만 보면 신모씨는 아버지가 이사장으로 있는 재단 산하 J메디컬아카데미글로벌위원장, J바이오 대표를 지내면서 해외 몇몇 기관과 협력 관계를 맺은 정도다. 그런데 대통령실과 외교부가 그런 경력의 민간인에게 왜 순방 일정 도움을 요청한 것인지 대통령실은 꼭 밝히고 넘어가기 바란다.
더불어민주당이 5년 만에 정권을 내준 건 국민을 대놓고 우습게 봤기 때문이다. 비단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임명만을 얘기하는 게 아니다. 임기 초 김정숙 여사 옷값 논란 때도 그랬다. 임기 초 사치 논란이 빚어졌을 때 바로잡았으면 좋았으련만 정장 한 벌이 10만원대인 저렴한 홈쇼핑을 이용한다는 식의 진실과 거리가 먼 홍보로 일관했다. 당장 상황은 모면했을지 몰라도 문제는 점점 더 불어나 퇴임 때까지 대통령 발목을 잡았다. 지금 딱 그때 생각이 난다. 김건희 여사 주변에서 아무리 32만원 발찌로 국민 눈을 가려도 눈 밝은 국민은 그날 발이 아닌 가슴에 단 브로치가 2610만 원짜리 티파니 아이벡스 클립 브로치라는 걸 안다. 5만 원짜리 치마 타령을 한들 실제론 스페인 교포 간담회 때 목에 건 반클리프앤아펠 스노우플레이크 펜던트가 사이즈에 따라 적게는 6000만원대에서 많게는 무려 1억 원짜리라며 반감을 가질 뿐이다. 부적절한 가족의 개입도 문제지만, 진정성이 결여된 이런 얄팍한 언론플레이는 결국 역풍만 가져올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