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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리공포가 2030 무주택공포 꺾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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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전세살이를 전전하다가는 벼락거지가 될 것 같아 영끌해서 집을 샀는데 이제는 하우스푸어가 될 것 같아 숨이 막힙니다.”

지난해 가을 서울 노원구의 30평대 아파트를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 대출)로 샀다는 30대 중반 대기업 직원 김모씨는 자신이 샀을 때보다 아파트 호가가 1억원가량 떨어졌는데, 그나마 매매도 안 된다며 한숨을 쉬었다.

금리가 크게 오르고 ‘거래절벽’ 속에 아파트값이 떨어지는 곳이 늘어나면서 지난해 뒤늦게 영끌 대열에 합류한 20~30대의 시름이 커지고 있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5일 한국부동산원의 아파트 매매 거래 통계에 따르면 30대 이하의 서울 아파트 매수 비중은 반기 기준으로 2020년 상반기(34.6%)부터 커지기 시작해 지난해 상반기엔 41.4%, 지난해 하반기엔 42.0%까지 올라갔다.

그런데 이들의 매수세가 몰렸던 서울 강북권과 경기, 인천 등에서는 최근 매물이 쌓이고 최고가 대비 수억원 낮은 가격에 거래가 이뤄지는 등 ‘패닉바잉’ 후유증이 나타나고 있다.

2020~2021년 서울에서 20~30대 아파트 매수가 가장 많았던 노원구(1만4283건)의 경우 올해 아파트값이 0.59%(한국부동산원 기준)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 전체 누적 하락률(-0.19%)을 웃도는 수치다. 노원구 중계동의 한 공인중개사는 “지금이라도 팔아야 하는 것 아니냐고 묻는 젊은 집주인들이 많다”고 말했다.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2020~2021년 경기도에서 20~30대 매수가 가장 많았던 용인시(1만2522건), 고양시(1만2294건), 수원시(1만2185건) 등의 올해 아파트값 하락세도 두드러진다. 이날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에 따르면 수원시 영통구 ‘광교호반베르디움트라엘’ 전용 100.51㎡는 지난 2월 14억1000만원(11층)에 거래됐지만 지난달 22일에는 3억8000만원 내린 10억3000만원(15층)에 팔렸다.

용인시 수지구 성복동 ‘성복역 롯데캐슬 골드타운’ 전용 84㎡도 지난 18일 11억7000만원(5층)에 거래돼 지난해 10월 최고가(14억9000만원·29층)와 비교해 3억원 넘게 떨어졌다.

이렇게 상황이 변하자 20~30대의 매수세가 꺾였다. 부동산원에 따르면 올 1월부터 5월까지 서울 아파트 거래(7917건)중 30대 이하 매수 비중은 38.7%(3063건)를 기록했다.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오는 9월 결혼을 앞둔 30대 초반 성모씨는 집을 사는 대신 전셋집에서 신혼 생활을 시작하기로 했다. 성씨는 “최근 금리가 많이 올라 이자 부담이 커진 데다 당분간 집값이 더 오를 것 같지 않다고 판단해 아파트 구매를 보류했다”고 말했다.

부동산 정보제공업체 직방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도시 근로자 가구 평균 가처분소득(약 419만원) 대비 서울 아파트 월 주택담보대출 상환액 비율은 금리가 연 4%일 때 평균 45%지만, 금리가 연 7%까지 상승할 경우 평균 62%로 치솟는 것으로 나타났다.

주담대와 함께 신용대출 등을 끌어모아 집을 산 20~30대 영끌족의 경우 원리금 부담이 더 커지는데, 집값까지 하락한다면 ‘하우스 푸어’로 전락할 수 있다는 경고음도 나온다.

정부는 목돈이 부족한 무주택 20~30대를 위해 이달부터 생애 최초 주택 구매자에게는 주택 구매 시 주택 소재지나 가격, 소득과 관계없이 주담대비율(LTV)을 80%까지 높여주기로 했다. 대출한도 역시 최대 6억원으로 확대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당분간 20~30대의 주택 구매가 크게 활성화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전망한다. 김효선 NH농협은행 부동산 수석위원은 “금리 인상으로 부담이 늘어 지난해와 같이 적극적으로 대출을 활용해 주택을 구매하기엔 부담스러울 것”이라고 말했다.

권일 부동산인포 리서치팀장은 “20~30대 생애 최초 주택 구매자의 경우 공공임대 등을 활용해 우선 주택구매자금을 모으며 기다리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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