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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중앙] 판타지 속 판타지를 찾아서 54화. 던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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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과 성공이 공존하는 미지의 공간, 던전의 유혹

위험한 유산이 모습을 드러내고, 거대한 악의 세력이 세상을 위협합니다. 용감한 모험가들은 유산을 파괴하고자 위대한 모험에 나서죠. 하지만 눈에 띄는 모든 곳에 적들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거대한 산을 넘어가려는 계획이 실패하며 이제 그들에게 남은 길은 단 하나. 거대한 지하 미궁을 통과하는 방법뿐. 그렇게 모험가들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갑니다.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는 어둠의 세계, 던전을 향하여. 과연 그들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요?

현실에서 찾기 힘든 모험가라는 직업이 등장하는 판타지 세계에는 역시 우리 세계의 중세 유럽과 다른 여러 가지가 등장합니다. 그중에서도 던전은 판타지의 독특한 모험의 장소로 가장 유명하죠. 던전은 흔히 지하 미궁으로 나타나는 전설적인 장소를 말합니다. 지하 미궁은 거대한 동굴 같은 곳이지만 자연 동굴이 아니라 누군가의 손길이 깃든 공간이에요. 악마나 괴물이 마법으로 미로를 만들었거나, 오래전에 누군가가 만들었다가 버려졌거나, 고블린이나 코볼트 같은 괴물들이 살면서 꾸며놓은 장소죠.

던전은 때로 몬스터들이 대거 포진한 소굴이기도 하다. 모험가들을 유혹하는 던전을 만드는 게임인 ‘던전 키퍼’에서 플레이어는 지하감옥을 만들어 관리하며 몬스터와 싸운다.

던전은 때로 몬스터들이 대거 포진한 소굴이기도 하다. 모험가들을 유혹하는 던전을 만드는 게임인 ‘던전 키퍼’에서 플레이어는 지하감옥을 만들어 관리하며 몬스터와 싸운다.

던전이 동굴에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사악한 마법사가 만든 탑이나 유령이 점령한 마을, 고대인들이 세운 건물처럼 지상이나 심지어 공중에도 있을 수 있죠. 모험가들을 유혹하는 던전은 누군가가 오래전에 살았거나 지금 사는 장소이기 때문에 때때로 위험한 함정이 도사리고 있어요. 자신만의 캐릭터를 만들어서 종이와 연필로 계산하며 진행하는 테이블 탑 롤플레잉 게임의 원조인 ‘던전&드래곤’처럼 드래곤같이 무시무시한 괴물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죠.

함정이나 괴물이 없다고 해도 던전은 보통 좁고 어두워서 그냥 걸어 다니는 것만으로도 위험합니다. 어디에서 무엇이 튀어나올지 모르는 상황에서 믿을 수 있는 것은 고작 횃불이나 등불, 아니면 작고 미약한 마법의 불빛 정도니까요. 21세기 현재에도 동굴 탐사는 위험하기 이를 데 없는데, 중세 판타지 세계라면 더욱 말할 필요도 없겠죠. 그런데도 모험가들은 던전이라는 말을 들으면 일단 설레기 시작합니다. 왜냐하면 귀한 무언가가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던전에는 고대인이 남긴 전설의 무기나 아이템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괴물들이 모아둔 보물도 무시할 수 없어요. 보물을 좋아하기로 유명한 드래곤이라도 있다면 금상첨화죠.

드래곤이라면 그 자체로도 보물의 산이나 다를 바 없습니다. 강철보다 단단한 비늘은 여러 가지 무기의 재료가 되고, 엄청난 양의 고기를 얻을 수 있어요. 거대한 머리뼈는 국왕에게 바칠 만한 장식품이죠. 전설이 사실이라면, 드래곤의 피나 고기에는 특별한 마법이 깃들어 있다니 황금보다 귀한 물건일지도 몰라요. 물론 드래곤을 물리쳤다는 명성 하나만으로도 엄청난 보물 이상으로 가치가 있겠지만 말입니다.

이처럼 던전은 보물의 가능성이 있는 공간이지만, 그것만이 모험가들을 유혹하는 것은 아니에요. 무엇보다도 ‘미지의 공간’이라는 사실이 모험가를 유혹하며 그들을 던전으로 이끄는 것이죠. 언제, 누가 만들었을지 모르는 신비한 장소. 지금도 무엇이 있을지 모르는 경이로운 공간. 던전은 ‘무엇이 있는지 모른다’라는 사실만으로 호기심 가득한 모험가를 끌어들입니다. 그래서일까요? 최근 판타지에는 던전을 이용해서 모험가들을 끌어들여 돈을 번다는 이야기가 적지 않게 등장합니다. 놀이동산처럼 입장료를 받거나, 던전에서 필요한 물품을 팔아서 돈을 버는 거죠. 던전 안에 숙소나 상점을 두고 폭리를 취하기도 합니다.

때로는 던전에 도전하는 모험가들의 마음 자체가 던전 지배자의 힘이 되기도 합니다. 아니면, 모험가들을 보며 즐길 수도 있죠. ‘런닝맨’ 같은 TV 방송처럼, 오락이 부족한 중세 판타지 세계에선 모험가들의 활약과 고생 그 자체가 즐거운 오락이 될 수 있으니까요. 문제는 놀이동산처럼 던전이 늘어날수록 경쟁도 심해진다는 것입니다. 모험가들의 숫자는 한정되어 있고, 그들의 재산도 제한되어 있으니 입장료가 있는 던전을 들어갈 때는 그만큼 고민하기 마련이죠. 던전의 지배자로선 어떻게든 그들을 끌어들이고자 더욱 매력적인 던전을 만들려고 노력합니다. 보물이 많이 나오거나 손쉽게 큰돈을 벌 수 있게 해 준다거나, 심지어 돌파한 성적에 따라서 상금을 주기도 해요. 그야말로 목숨을 걸고 도전하는 익스트림 스포츠 같은 장소가 되는 것이죠.

던전은 위험과 성공이 함께 존재하는 미지의 공간입니다. 본래는 어둡고 죽음이 도사리는 끔찍한 장소. 가능하면 피하고 싶은 불길한 곳이었지만, 언제부터인가 판타지 세계 모험가들의 놀이동산 같은 곳이 되었죠. 물론, 절대로 안전한 공간은 아닙니다. 설사 던전 지배자들이 돈벌이를 위해 만든 곳이라도 까딱하면 목숨을 잃을지도 모르는 위험으로 가득하다는 점은 변함이 없으니까요. 하지만 오늘도 모험가들은 던전에 도전합니다. 목숨이라는 칩을 입장료로 걸고서. 왜냐하면 던전은 미지의 공간. 그리고 미지라는 말 자체가 호기심 많은 사람을 유혹하니까요.

전홍식 SF&판타지도서관장

전홍식 SF&판타지도서관장

※ 외부 필진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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