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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내리고 운전차 몰고…15명 발달장애인이 일하는 그곳

중앙일보

입력

톡톡이네 카페에서 일하는 발달장애인 김영서씨의 모습. 영서씨는 커피를 내릴 때 기분이 제일 좋다고 한다. 양수민 기자

톡톡이네 카페에서 일하는 발달장애인 김영서씨의 모습. 영서씨는 커피를 내릴 때 기분이 제일 좋다고 한다. 양수민 기자

곱게 갈린 원두 가루를 은색 바스켓에 꾹꾹 눌러 담는다. 기계에 끼우고, 버튼을 눌러 에스프레소 샷을 추출한다. 준비해 둔 얼음물에 샷을 넣어 아메리카노를 만든다. 여기까진 여느 카페에서 볼 수 있는 커피 내리는 풍경이다. 다만, 여기에 특별한 문구가 적힌 종이 홀더가 추가된다.

“장애인근로자들이 조금 서툴고 느려 보일 수 있지만 정성을 다해 열심히 일하고 있어요. 이해와 응원을 부탁드려요^^”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행복한 일터를 꿈꾸는 곳이 있다. 경기도 용인시에 위치한 자회사형 장애인표준사업장 ‘톡톡이네’가 그 주인공이다. 톡톡이네의 직원은 총 31명인데, 그 중 15명이 지적·자폐성 장애를 가진 발달장애인이다. 취재에 동행한 황윤의 가톨릭대 특수교육과 연구원은 “분명 서투른 부분이 있지만, 장애의 정도가 비교적 중하지 않아 사회에서 충분히 일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이라고 설명했다.

파란색 고슴도치처럼…톡톡 튀는 개성

톡톡이네의 카페에서 사용 중인 컵홀더. '조금 서툴고 느릴 수 있지만, 열심히 일하고 있으니 이해와 응원을 바란다'는 문구가 적혀있다. 톡톡이네 제공

톡톡이네의 카페에서 사용 중인 컵홀더. '조금 서툴고 느릴 수 있지만, 열심히 일하고 있으니 이해와 응원을 바란다'는 문구가 적혀있다. 톡톡이네 제공

톡톡이네의 상징은 파란색 고슴도치다. ‘왜 하필 고슴도치냐’는 질문에 조아라 대표(52)는 “가시가 ‘톡톡’ 하잖아요”라며 웃었다. 조 대표는 “고슴도치는 가시를 갖고 있지만, 자기가 편하고 좋아하는 사람들한테는 그걸 세우지 않아요. 발달장애인도 마찬가지에요”라며 “또 발달장애인들은 다들 개성 있고 능력도 달라요”라고 했다. “톡톡 튀는 개성에, 자기 역할도 톡톡히 잘 해낸다는 의미에서 그렇게 이름을 지었다”는 거다.

커피 추출하고, 몸보다 큰 운전차 몰고  

톡톡이네에서 발달장애인이 청소차를 몰고 있는 모습. 톡톡이네 제공

톡톡이네에서 발달장애인이 청소차를 몰고 있는 모습. 톡톡이네 제공

지난달 24일에 방문한 톡톡이네에서도 장애인과 비장애인은 함께 일하고 있었다. 카페에서 커피를 내리거나, 편의점에 부족한 물건을 채웠고, 몸보다 큰 청소차를 몰고 바닥을 닦았다. 이들의 업무 분담은 선호에 맞게 정해졌다는 게 대표의 설명이다. 물건을 제자리에 두는 걸 좋아하는 김영민(26)씨에게는 청소와 사무보조를, 원두 기계를 만지는 걸 좋아하는 김영서(26)씨에게는 바리스타 업무를 맡기는 식이다.

“일하는 게 힘들지는 않냐”는 질문에 발달장애인 직원들은 “하나도 힘들지 않다”고 입을 모았다. 김영민씨는 “새로운 걸 경험하면서 제가 발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라고 했다. 청소차를 모는 서재민(21)씨는 “힘들 때도 있지만 재미있다”고 했다. 질문을 단번에 이해하지 못하거나 발음이 서투른 경우도 있었지만, 일을 사랑하는 마음이 기자에게 전해졌다.

“남들보다 시간 조금 더 걸릴 뿐”

'톡톡이네'에서 일하는 발달장애인과 근로지원인의 단체사진. 직원들 뒤로 '우리가 함께 세상을 바꾼다'는 말이 영어로 쓰여 있다. 톡톡이네 제공

'톡톡이네'에서 일하는 발달장애인과 근로지원인의 단체사진. 직원들 뒤로 '우리가 함께 세상을 바꾼다'는 말이 영어로 쓰여 있다. 톡톡이네 제공

비장애인 직원 이동윤(27)씨는 “장애인과 함께 일하는 건 생전 처음이다. 처음에는 이들이 ‘1인분을 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있었다”고 털어놨다. 이씨는 “물론 처음부터 업무의 100%를 하지는 못했지만, 시간이 약이 됐다. 지금 지켜보면 일을 얼마나 잘하는지 모른다”고 말했다. 카페 매니저 임경효(44)씨는 “초기에는 주문을 못 받거나 포스기를 입력하는 게 서툴었다. 하지만 남들보다 시간이 조금 더 걸렸을 뿐, 지금은 문제가 없다”고 덧붙였다.

장애인의 업무를 돕는 근로지원인도 큰 힘이 됐다. 이들은 발달장애인에게 일의 순서를 정해주고, 돌발 상황이 생기면 관리하는 역할을 겸한다. 근로지원인으로 일하는 김주환(36)씨는 “전에 한 직원이 크게 소리를 지르거나 모르는 여성들을 빤히 쳐다본 적이 있어요. 그럼 조심히 불러서 그러면 안 되는 이유를 이해할 수 있게 설명해주면 돼요”라며 “그럼 알아듣고 다음에는 안 하거든요. 그렇게 함께 나아가는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장애인과 함께 사는 법 찾아야 발달장애 가정 비극 끊는다”

자회사형 장애인표준사업장 ‘톡톡이네’를 운영 중인 조아라 대표.그의 아들은 발달장애인이다. 톡톡이네 제공

자회사형 장애인표준사업장 ‘톡톡이네’를 운영 중인 조아라 대표.그의 아들은 발달장애인이다. 톡톡이네 제공

톡톡이네가 설립되는 데에는 발달장애인 당사자 가족의 애환이 있었다. 톡톡이네 대표 조아라씨는 아들이 발달장애인이다. 조씨는 “발달장애인 가정의 사망 사건들이 언론에 나오잖아요. 그런 죽음을 막으려면 장애인이 사회에서 함께 살아가야 해요”라고 강조했다. 그는 한 명의 발달장애인 직원을 뽑으면 한 가정을 살릴 수 있다고 믿는다.

발달장애인의 꿈은 비장애인과 다르지 않았다. 김영서씨는 “편의점 직원과 카페 직원을 병행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리고 내 집을 마련하고 싶다”고 말했다. 서재민씨는 “돈 많이 벌어서 효도하고 불우이웃을 돕고 싶다”고 했다. 황윤의 연구원은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살 수 있는 법을 적극적으로 찾아야 한다”며 “그래야 서로를 더 알게 되고 발달장애인 가정의 비극도 끊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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