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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321만 명이 최저임금 못 받는데, 무작정 올리다니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0면

한국은 최저임금이 너무 가파르게 올랐다. 심각한 경제 왜곡현상을 초래하고 있다.

한국은 최저임금이 너무 가파르게 올랐다. 심각한 경제 왜곡현상을 초래하고 있다.

내년 5% 올린 시간당 9620원 의결  

음식숙박업 40%가 최저임금 못 줘

최저임금위원회는 그제 파행 끝에 2023년 최저임금을 올해보다 5% 올린 시간당 9620원으로 의결했다. 인상률의 구체적 근거나 합리적 이유는 없었다. 민주노총 소속 근로자 위원들이 회의장을 박차고 나가고 사용자 위원들도 퇴장하면서 캐스팅 보트를 쥔 공익위원들과 한국노총 소속 근로자 위원들이 남아서 인상률을 결정했다.

이 같은 주먹구구식 결정은 이 제도가 얼마나 파행적으로 운영되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무엇보다 제도의 도입 목적과 결정 방식이 법 규정에서 벗어나고 있다. 최저임금법은 ‘근로자의 생계비, 유사 근로자의 임금, 노동생산성 및 소득분배율 등을 고려하여 정한다. 이 경우 사업의 종류별로 구분하여 정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이 조문은 유명무실해졌다.

엄연히 최저임금은 사업 종류별로 정할 수 있다고 규정돼 있으나 1988년 제도 도입 이후 36년간 한 번도 업종별 차등은 논의된 적이 없다. 최근 들어 필요성이 커지고 있으나 민주노총이 반대하면서 회의 테이블에도 오르지 못하고 있다. 그 결과 최저임금의 일차적 보호 대상인 취약 업종이 벼랑 끝으로 몰리고 있다. 취약 업종의 사용자는 알바를 내보내거나 폐업하고, 이에 따라 알바 일자리가 줄어들고 있다. 어렵사리 일자리를 구해도 최저임금을 받는 것은 언감생심이다.

최저임금 대상자 가운데 최저임금을 받지 못한 근로자는 지난해 321만5000명에 달했다. 미만율로 불리는 이 비율은 전체 근로자의 15.3%에 이른다. 특히 숙박음식업은 40.2%에 달한다. 최저임금이 현실과 괴리가 있어 현장에서 지키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약자를 보호하기 위한 법이 약자를 지키지 못하고 약자를 더 궁지로 몰아넣고 있다. 최저임금을 위반하는 사용자에겐 3년 이하의 징역이라는 무거운 형벌이 가해진다. 하지만 지키지 못하는 사용자가 넘치면서 처벌 조항이 유명무실해지고 있다.

이렇게 된 데는 문재인 정부의 책임이 크다. 사용자의 지불 능력이나 생산성 향상을 고려하지 않고 문 정부는 최저임금 1만원 정책을 몰아붙여 지난 5년간 연평균 7.36%씩 과속 인상에 나섰다. 이 기간 문 정부의 연평균 경제성장률은 대한민국 건국 이후 최저인 2.28%에 그쳤다. 결국 영세 자영업자·소상공인이 벼랑 끝으로 내몰렸고, 알바 자리라도 절박한 구직자로부터 고용의 기회를 앗아갔다.

윤석열 정부는 이 사태를 방치해선 안 된다. 최저임금법에 나온 대로 내년부터는 업종별 차등을 적용하라는 원칙이라도 제시해야 한다. 정부가 최소한의 책임도 지지 않으면서 최저임금위원회 뒤에 숨어서는 점점 커지는 ‘묻지마 최저임금 인상’의 부작용을 막을 수 없다. 민주노총의 폭주에는 원칙적 대응이 필요하다. 무작정 올리는 최저임금은 취약계층을 궁지로 몰 뿐이다.

중위임금을 기준으로 봐도 한국의 최저임금이 너무 가파르게 올랐다.

중위임금을 기준으로 봐도 한국의 최저임금이 너무 가파르게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