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도 남자였다. 제임스 매티스 전 미국 국방장관 이야기다. “군대와 결혼했다”던 그가 72세에 화촉을 밝혔다. ‘천상 군인’인 그를 품절남으로 만든 여성은 누구일까. 크리스티나 로머스니라는 신부는 물리학자이자 기업가다. 미국 경제전문지 포천(Fortune)이 2015년 “세계에서 가장 촉망받는 여성 기업가” 중 한 명으로 선정했던 인물이다.
영어권 인맥관리 사이트인 링크드인 자기소개란 첫머리에 그는 이렇게 썼다. “다양한 경험을 쌓은 경영가, 발명가이자 멘토, 그리고 리더로, (중략) 과학 및 산업 분야에서 여성의 참여를 높이는 데 열정적(passionate).” 자수성가한 여성 과학자 겸 기업인인 셈이다. 정확한 나이를 이 플랫폼에 공개하진 않았다.
매티스는 뼛속까지 군인으로, 한국과도 인연이 깊다. 2020년엔 백선엽 한ㆍ미 동맹상을 수상했고,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시절엔 안보 협의를 위해 수차례 방한했다. 한ㆍ미 동맹을 정책의 최우선 가치로 놓지 않았던 트럼프에게 반기를 들다가 경질됐다. 그에 대한 군에서의 미담은 차고 넘친다. 한없이 엄한 상관이지만 부하를 위해 직접 군복을 칼 각을 세워 다려줬다는 일화 등이다. 독신을 고수했던 그를 두고 미 국방부가 발행하는 매체인 성조지는 “군대와 결혼한 남자”라고 부르곤 했다.
또다른 별명은 ‘미친개(mad dog)’이다. 콜린스 영영사전 등에 따르면 이는 “누군가를 위협하듯 노려보는” 것을 뜻한다. 또는 “한 번 물면 놓지 않는다”는 뜻으로 군인으로서의 그의 특징을 잘 설명하는 말이기도 하다.
그런 그가 운명의 짝을 만난 곳은 폴리티코 및 성조지 등을 종합하면 술집이다. 언뜻 접점이 없어 보이는 군인과 과학자 겸 기업인을 맺어준 것이 술 한 잔이었던 셈. 우연히 만난 것인지, 주선자가 있었던 것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로머스니가 현재 갖고 있는 명함엔 퍼시픽노스웨스트 내셔널 연구소(PNNL)의 상용화 담당 국장이라고 적혀 있다. 지난해부터 과학 및 기술 전문 기업인 PNNL에서 제품화 및 마케팅 등의 분야를 지휘해오고 있는 셈이다.
시애틀대에서 물리학을 공부했고, PNNL의 소개란에 따르면 재료 공학과 전기화학을 전문 분야로 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연구실에만 틀어박히는 대신 2007년 나노 기술 관련 스타트업 모듀멘털을 창업했다. 이후 발로 직접 뛰며 투자자를 만났고, 포천지에 따르면 1억 달러(약 1300억원)에 달하는 자금을 끌어모았다. 그에게 투자한 기업 중엔 포천지가 선정한 세계 500대 그룹도 상당수였다고 한다. 그는 이어 과학 분야에서 여성의 커리어를 지원하는 일에도 열정을 기울여왔다.
재미있는 건 그의 삶의 터전이 미 서부 소재 워싱턴주(州)인데 부군이 된 매티스는 동부 워싱턴DC에서 주로 활동해왔다는 점. 그래서일까, 이들은 워싱턴DC에서 가족과 지인을 포함한 조촐한 식을 올린 뒤, 서부의 라스베이거스에서도 식을 한 번 더 올렸다. 라스베이거스에서의 식에선 둘의 유머 감각도 엿보인다. 라스베이거스에선 엘비스 프레슬리처럼 분장한 이들이 익살스럽게 부부의 연을 맺어주는 문화가 있는데, 매티스와 로머스니는 이 식을 택했다. 이 부부의 친구들이 트위터 등으로 공개한 사진에 엘비스 프레슬리 분장 배우가 보이는 건 그래서다.
프레슬리 역할을 했던 배우 브라이언 밀스는 성조지에 “올해에만 8만 커플이 라스베이거스에서 식을 올렸는데, 군인은 별로 없었다”며 “매티스는 내가 20년간 맺어준 부부 중 가장 행복해보이는 신랑 중 하나였다”고 말했다. 매티스는 그러나 역시, 군인이었다. 프레슬리 역할을 맡은 밀스가 군대에서 통용되는 제스처인 ‘나이프 핸드(knife hand)’를 따라하자 바로, “이봐, 그렇게 하는 게 아니라니까”라며 버럭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