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계약금 마늘로 달라" 집 3000만곳 텅빈 中 황당 판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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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베이징의 한 아파트 건설 현장을 노동자들이 걸어가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지난 4월 베이징의 한 아파트 건설 현장을 노동자들이 걸어가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협력사마다 6월 말까지 신축 미분양 아파트 최소 2채 이상 계약을 체결하라.

중국 산둥(山東)성 칭다오(靑島)시 서남부 신도시인 시하이안(西海岸) 신구의 쉐자다오(薛家島) 가도 판사처(동사무소 격)가 지난 13일 내놓은 “신축 부동산 구매 촉진에 관한 통지”의 지침이다. 통지문은 느닷없이 “모든 ‘악의적인 부동산 비구매자(惡意不買房·악의불매방)’를 조사해 만약 은행 통장에서 거액의 예금이 발견될 경우 약담(約談·사전 약속을 잡아 진행하는 조사와 교육) 처리하겠다”고 적시했다. 건설업체가 지방 정부와 연계해 사실상 반관반민으로 아파트를 짓다가 미분양이 누적되자 나타난 현상이다. 익명을 요구한 해당 동사무소 직원은 중국 경제매체인 ‘남방재경’ 기자에게 “상급 정부에서 내려온 조치”라며 “할당량을 채우지 못할 경우 연말 고과에서 감점이나 감봉 처분을 당할 수 있다”고 토로했다.

공무원이 버스 대절해 신축 단지 판촉 

중국 공무원의 부동산 판촉은 보편적인 현상이 됐다. 중국 경제관찰보는 27일 광시(廣西) 위린(玉林)의 초급 공무원 리수밍(李書明·가명)이 올 2월부터 부동산 판매에 뛰어든 상황을 밀착 보도했다. 그는 시골을 다니며 주택 구매 의향을 조사하고, 지방 정부의 각종 주택 구매 보조금을 홍보했다. 구매 희망자가 모이면 버스를 대절해 도심의 신축 단지 3~4곳을 소개하는 일이 주업무다. 올 초 위린시 정부가 책정한 판매 목표는 8000채, 리수밍이 배치된 진(鎭, 한국의 면)은 지난 네 달간 30~40채를 파는 데 그쳤다. 현(縣, 한국의 군) 내에서 하위권이다. 그는 자신이 속한 단톡방마다 “집을 살 때면 나를 찾으세요”로 대화명을 바꾸고 할당량 채우기에 여념이 없다.

중국 허난성 카이펑의 한 신축 아파트 단지에서 마늘 500g 당 5위안(960원)으로 환산해 계약금을 납부하게 해주는 ‘마늘로 아파트 바꾸세요’ 이벤트 홍보물 [웨이보 캡처]

중국 허난성 카이펑의 한 신축 아파트 단지에서 마늘 500g 당 5위안(960원)으로 환산해 계약금을 납부하게 해주는 ‘마늘로 아파트 바꾸세요’ 이벤트 홍보물 [웨이보 캡처]

농촌에서 수확한 밀이나 마늘로 아파트 계약금을 받는 프로모션도 등장했다. 허난(河南) 상추(商丘)시에서 신규 아파트 분양에 나선 부동산 개발업체 젠예디찬(建業地産)은 이달 “밀 1근(500g)당 2위안(384원), 16만 위안(3000만원)까지 납부 가능” 이벤트를 시작했다. 허난성의 올해 밀 시세가 근당 1.5위안인 것을 감안하면 분양가를 25% 할인하는 셈이다.

마늘로 아파트 계약금 판촉까지

같은 허난성의 카이펑(開封)시 치(杞)현의 신축 단지에서는 지난달 마늘 이벤트로 톡톡한 효과를 봤다. 시세보다 30% 비싼 근당 5위안(960원)으로 환산해 10만 위안(1919만원)까지 계약금을 낼 수 있게 하는 행사였다. 모두 30채 계약에 성공, 마늘 86만근을 계약금으로 받았다. 도시 주민들에게 미분양 물량을 판매하지 못하자 시골로 방향을 돌려 농민들의 수요를 끌어내려는 ‘마늘 판촉’ 고육책이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제로 코로나’로 경제 성장률이 하락하는 조짐을 보이자 중국 당국이 부동산 부양에 나서고 있다. 지난해는 부동산 기업 헝다(恒大)가 디폴트(채무불이행) 위기에 빠지는 등 규제 일변도 정책이었지만 올해 들어선 180도 돌변했다. 중국 국가통계국이 집계한 부동산 경기지수는 지난해 2월 이후 15개월 연속 하락세다. 지난 4월 주요 도시의 부동산 거래량은 전년 대비 42.4% 감소했다. 5월에는 마이너스 36.6%로 감소 폭은 줄었지만, 여전히 부동산 경기는 한겨울이다. 그러다보니 부동산 경기 부양책으로 방향을 틀었다.

부동산 침체에 지방 정부 재정 위협 

중국에서 부동산 투자는 코로나19가 발생했던 지난 2020년 전체 투자 중 26%를 기록하며 경제 성장을 견인했다. 중국 부동산은 인프라와 연결돼 투자를 견인할 뿐만 아니라 연계 효과로 성장의 직간접 기여율이 30%에 달한다. 부동산 경기가 냉각되면 지방 정부 수입의 약 30%를 차지하는 토지사용권 매각 수입이 줄면서 재정을 위협한다. 그런데 올해 ‘제로 코로나’로 봉쇄가 이어지면서 상하이 정부의 경우 과장급 공무원 연봉이 35만 위안(6720만원)에서 20만 위안(3840만원)으로 깎였다. 저장·장쑤·푸젠 등에서도 공무원 임금이 15~20% 감소했다고 홍콩 명보가 지난 17일 보도했다. 산둥 옌타이(煙臺)에서는 최근 연봉이 10년 전 수준으로 돌아간 교사들이 임금인상을 요구하는 집단 시위까지 벌였다.

“부동산 재고떨이하나” 여론 반발

중국 일반 여론은 공무원까지 앞세운 부동산 판촉에 부정적이다. 신조어 ‘악의적 비구매자’까지 등장하자 네티즌들은 “공공연한 약탈이 시작됐다”, “정부와 부동산 개발업체가 한 통 속” 등 반발하고 있다. 중국 경제전문지 ‘증권시보’는 23일 “갖가지 부동산 판촉은 재고 떨이에 나선 지방 부동산 시장의 절박한 심리를 반영한다”며 “급박하다는 이유로 정책이 변질되면서 역효과를 불러선 안 된다”고 경고했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문제는 현재 중국이 부동산이 공급 과잉이라는 점이다. 올 5월 기준으로 중국의 미분양 부동산 물량은 총 5억5433만㎡로 지난 2018년 이후 줄곧 증가세다. 이 가운데 주택은 2억6815만㎡로 지난해 동기 대비 15% 증가했다. 미국 CNN은 헝다 위기가 한창이던 지난해 10월 중국 전체 미분양 아파트를 3000만 가구로 추산했다. 이는 독일 전체 인구와 맞먹는 8000만 명이 거주할 수 있는 물량이다.

중국 상하이시의 한 아파튼 신축 공사장 모습. 경제 성장률 올리기에 들어간 중국 지방 정부들이 미분양 아파트 재고 떨이에 나섰다. [로이터=연합뉴스]

중국 상하이시의 한 아파튼 신축 공사장 모습. 경제 성장률 올리기에 들어간 중국 지방 정부들이 미분양 아파트 재고 떨이에 나섰다. [로이터=연합뉴스]

이치훈 국제금융센터 신흥경제부장은 “시진핑 주석이 지난주 브릭스 회의에서 공개적으로 언급할 정도로 올해 경제성장률 달성에 빨간불이 들어온 상황에서 중국이 부동산을 앞세운 경기 부양에 들어갔지만 냉각된 경기가 쉽게 살아날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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