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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화점이 더 싸잖아?" 환율 1300원 날벼락에 면세점 비명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최근 항공 규제 해제와 무격리 여행지 증가로 회복세를 기대했던 면세업계가 '고환율'로 고심하고 있다. 지난 24일 서울 송파구 롯데면세점 월드타워점에 환율 정보가 표시돼 있다. 뉴스1

최근 항공 규제 해제와 무격리 여행지 증가로 회복세를 기대했던 면세업계가 '고환율'로 고심하고 있다. 지난 24일 서울 송파구 롯데면세점 월드타워점에 환율 정보가 표시돼 있다. 뉴스1

달러 대비 원화가치가 계속 떨어지면서 면세업계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여름 휴가철을 앞두고 국제선 항공편 운항이 속속 재개되면서 면세점 이용객이 늘 것으로 기대했지만, 고환율에 여행경비는 물론 면세품 가격이 오르면서 모처럼 맞은 호재가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백화점이 면세점보다 싸네?”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지난 23일 약 13년 만에 종가 기준 1300원을 넘어섰고, 24일에도 1298.2원을 기록했다.
면세사업은 인건비과 임차료 등을 제외하면 모든 거래가 달러로 이뤄진다. 달러 강세로 원화 가치가 떨어지면 같은 수량을 수입해도 돈을 더 줘야 한다. 통상 3개월 치 재고를 가져가는 면세점 입장에선 환율이 낮을 때 산 상품을 더 높은 가격에 팔 수 있어 단기적으론 이득일 수 있지만, 고환율 기간이 길어질수록 판매가격이 올라 소비자 구매가 줄고 면세업체 수익도 줄 수밖에 없다. 특히 한국은 면세한도가 여전히 600달러(약 78만원)로 묶여있어 고가의 명품 브랜드 상품 중에는 백화점이 면세점보다 오히려 싼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

지난 23일 원달러 환율은 전날보다 4.5원 오른 1301.8원에 마감했다. 환율이 종가 기준으로 1300원을 넘은 것은 2009년 7월 13일(1315.0원) 이후 처음이다. 연합뉴스

지난 23일 원달러 환율은 전날보다 4.5원 오른 1301.8원에 마감했다. 환율이 종가 기준으로 1300원을 넘은 것은 2009년 7월 13일(1315.0원) 이후 처음이다. 연합뉴스

업계는 소비자 가격 부담을 줄이는 자구책 마련에 나섰다. 롯데면세점은 환율보상 행사에 들어갔다. 매장 기준 환율이 1300원을 넘어서면 최대 3만5000원까지 선불카드 개념의 LDF페이를 지급하기로 했다. 롯데인터넷면세점에서도 기준 환율이 1250원 이상이면 즉시 사용 가능한 포인트를 최대 175달러 제공한다. 또 다음 달 3일까지 롯데온과 함께 ‘면세점 위크’를 열어 명품 선글라스와 샌들 등 50여개 브랜드 1500여 종류의 상품을 최대 83% 할인 판매한다.

지난 24일 서울 송파구 롯데면세점 월드타워점에서 할인 행사를 하는 모습. 뉴스1

지난 24일 서울 송파구 롯데면세점 월드타워점에서 할인 행사를 하는 모습. 뉴스1

신라면세점도 서울점과 제주점에서 발리·겐조·코치 등 선글라스 브랜드를 최대 70% 할인 판매한다. 특히 다음 달 10일까지 서울점에서 700달러 이상 구매하면 3만 포인트를, 1500달러 이상 구매하면 5만 포인트를 제공하고 온라인 고객에게도 최대 36만5000원까지 적립금을 지급한다. 현대백화점면세점도 최대 216만원까지 페이백 혜택을 제공한다.

면세점에 ‘샤넬백’이 없는 이유 

이런 혜택 지급에도 불구하고 쇼핑객 사이에선 “(기다리는)줄도 없지만 상품도 없다”는 불만이 나온다. 소비자들이 원하는 인기 브랜드의 상품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면세점은 해외 브랜드 등으로부터 제품을 직접 구매해 판매하는 구조다. 하지만 코로나19로 사실상 장기간 개점휴업 상태였던 만큼 재고처리 부담을 우려한 면세점들이 제품을 많이 들여놓지 않아 상품 경쟁력이 떨어진 상태다. 면세기업에 다니는 A씨는 “여전히 국제 물류가 정상화되지 않아 발주를 넣어도 물건이 늦게 오고, 그나마 유럽 명품들은 자국용도 부족해 조달이 안 된다”며 “샤넬 같은 인기 브랜드의 인기 품목은 코로나 이후 면세점엔 거의 입고가 안 된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지난달 29일 인천국제공항 면세점이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뉴스1

지난달 29일 인천국제공항 면세점이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뉴스1

정부는 코로나19 여파와 고환율의 이중고에 시달리는 면세업계를 지원하기 위해 다음 달부터 해외 거주자에게 온라인으로 면세품을 팔 수 있는 ‘역직구’를 허용하기로 했다. 업계도 기본적으론 이를 환영하지만, 판매 대상이 중소기업이 만든 국산품으로 한정돼 근본적인 타개책이 되긴 어렵다고 본다.
국내 면세업체들은 올해 1분기 신라면세점을 제외하고 모두 적자를 냈다. 영업적자 규모는 롯데면세점 753억원, 현대백화점면세점 140억원, 신세계면세점 21억원이며 신라면세점이 올린 영업이익 112억원도 전년 동기 대비 70% 감소한 수치다.

중국 ‘제로 코로나’ 언제 풀릴까 

업계에선 결국 ‘면세한도 확대’와 ‘중국인 관광재개’를 핵심으로 꼽는다. 면세한도는 업계의 숙원이다. 올해 3월부터 내국인이 살 수 있는 면세품 ‘구매한도’는 폐지됐지만 정작 세금 혜택을 받을 수 있는 ‘면세한도’는 2014년 1인당 600달러로 정해진 뒤 그대로다.
면세점 업계 최고 경영자(CEO)들은 지난 15일 윤태식 관세청장과 가진 간담회에서도 면세한도와 현실 물가 간 괴리가 크다고 지적했지만 당장 업계 요구가 받아들여질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지난 15일 서울 강남구 서울본부세관에서 열린 '면세점 업계 최고 경영자(CEO) 간담회'에서 윤태식 관세청장(앞줄 왼쪽에서 다섯번째)이 참석자들과 기념 촬영하고 있다. [사진 관세청]

지난 15일 서울 강남구 서울본부세관에서 열린 '면세점 업계 최고 경영자(CEO) 간담회'에서 윤태식 관세청장(앞줄 왼쪽에서 다섯번째)이 참석자들과 기념 촬영하고 있다. [사진 관세청]

중국은 코로나19 확진자 발생지역을 봉쇄하는 ‘제로 코로나’ 정책이 이어지며 사실상 해외여행이 막혀있다. 면세업계 관계자는 “면세특구인 중국의 하이난이 위협적이라고 하지만 정작 중국인들은 하이난까지 거리가 멀고 경비도 많이 들어 한국으로 오려는 관광객이 많다”고 말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중국이 시진핑 국가주석의 3연임을 확정짓는 올 하반기 당 대회(10~11월)까지 제로 코로나 기조를 유지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 관계자는 “중국은 제로 코로나로 해외여행은 물론 내수조차 죽은 상태라 믿을 곳은 내국인 쇼핑밖에 없는데 이조차 고유가·고환율에 위축돼 상대적 박탈감이 크다”며 “올 3분기에도 본격적인 실적 개선은 쉽지 않아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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