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보리로 승부 건다"…1520억 몸집 키운 '수제맥주 반란' [e슐랭 토크]

중앙일보

입력 2022.06.26 05:00

업데이트 2022.06.26 1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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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극양조, 유기농 보리재배…자체 맥아·맥주생산

지난 22일 충북 음성군 생극면의 한 수제맥주 양조장. 허성준(36) 생극양조 대표와 직원 2명이 누렇게 익은 맥주보리를 베고 있었다. 농촌진흥청이 개발해 생극양조에서 올해 시험재배에 들어간 ‘호단’ 품종이다. 기존 보리보다 녹말 함량이 많고, 단백질이 적어 맥주를 만드는 데 적합한 맥주보리다.

생극면이 고향인 허 대표는 양조장 인근에 9만9000㎡(약 3만평) 규모의 맥주보리 밭을 경작하고 있다. 지난해 6월 맥주보리 품종인 ‘흑호’를 30t 생산했다. 이 맥주보리로 맥주의 주원료인 맥아를 만들고, 맥즙과 홉, 효모를 배합해 수제맥주를 만든다.

허 대표는 “수제맥주 시장이 커졌지만, 업체 대부분이 맥주의 원료인 맥아(싹튼 보리)와 홉을 수입산에 의존하고 있다”며 “국내산 유기농 보리로 만든 수제맥주로 승부를 거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허성준 생극양조 대표가 지난 22일 양조장 앞에서 보리를 수확하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허성준 생극양조 대표가 지난 22일 양조장 앞에서 보리를 수확하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수입산 원료 쓰는 수제맥주…고유 스토리 필요”

보리밭 옆 양조장에서는 커다란 탱크 9개에서 맥주가 숙성되고 있었다. 싱글몰트 라거(Lager)와 쌀맥주(에일·Ale) 등 4가지 제품이다. 상표명은 가장 신선하다는 뜻의 ‘울트라 프레쉬(UF)’로 정했다. 숙성조에서 갓 꺼낸 싱글몰트 라거(알코올 5.5%)는 옅은 갈색을 띠었다. 쌀맥주(알코올 6.5%)는 붉은빛이 났다.

허 대표는 “청량감이 강한 싱글몰트 라거는 맥아 100%로 순하고 구수한 맛이 진하게 난다”며 “쌀이 30% 들어간 쌀맥주는 페일 에일로 거품이 많고, 홉 향이 진하게 나는 게 특징”이라고 했다. 알코올 도수 7도인 귀리맥주는 바나나향이 난다.

생극양조의 양조기술은 공장장인 박명균(31)씨가 담당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확산한 지난 2년간 400차례의 시제품 연구 끝에 레시피 9개를 개발했다.

허 대표는 “미국의 크래프트 맥주업체는 해당 지역에서 생산되는 밀을 쓰거나, 오렌지 껍질을 넣는 등 재미를 강조한 맥주를 만든다”며 “수입산 맥아로도 청량감, 풍미는 충분히 낼 수 있지만, 우리 수제맥주는 그런 스토리가 부족하다”고 말했다. 그는 “7월 초 출시될 맥주를 통해 ‘우리 보리로 만든 맥주가 가장 신선하다’는 점을 널리 알릴 계획”이라고 했다.

허성준 생극양조 대표(가운데)가 지난 22일 공장장 박명균(왼쪽)씨와 직원 허익준씨와 함께 맥주를 소개하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허성준 생극양조 대표(가운데)가 지난 22일 공장장 박명균(왼쪽)씨와 직원 허익준씨와 함께 맥주를 소개하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전북 군산, 맥주보리 재배지 70㏊ 조성 

수제맥주 시장에 국산화 바람이 불고 있다. 수입산 원료로 만든 수제맥주와 차별점을 강조하는 양조장이 속속 생겨나고 있어서다. 코로나19를 전후로 집에서 술을 즐기는 ‘홈술족’이 늘어난 가운데 국내산 맥주보리를 살리려는 시도도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수제맥주는 대기업이 아닌 소규모 양조장이 자체 개발한 제조법에 따라 만드는 맥주를 말한다. 미국의 경우 1970년대 말 양산형 맥주인 ‘라이트 라거(알코올 3~4.2%)’에 대비해 각 지역의 다양성을 중시한 크래프트 맥주 붐이 일면서 생겨났다. 우리나라에선 대기업 이외의 곳에서 생산한 맥주라는 개념으로 통용되고 있다.

전북 군산은 지자체가 주도해 수제맥주 원료를 국산화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 군산시는 옥구읍, 옥서면, 미성동, 회현면 일대 32㏊ 규모의 맥주보리 전용 재배 단지를 만들었다. 지난해에는 27개 농가가 참여한 가운데 맥주보리 150t을 생산했다. 올해는 맥주보리 재배면적을 72㏊로 늘린 후 연간 2000t까지 생산량을 늘려가는 게 목표다.

전북 군산시는 국산 보리를 재배해 맥아를 생산한 뒤 공동양조장에서 맥주를 생산하도록 도왔다. [사진 군산시]

전북 군산시는 국산 보리를 재배해 맥아를 생산한 뒤 공동양조장에서 맥주를 생산하도록 도왔다. [사진 군산시]

호남 과거 맥주보리 주산지…수요감소로 쇠퇴

농가들이 생산한 맥주보리는 ‘군산맥아’ 제조시설로 옮겨져 맥아로 만들어진다. 군산시는 지난해 수제맥주 공동양조장과 공동판매장이 들어선 군산비어포트를 만들었다. 이곳에서 4개 업체가 군산맥아를 활용한 라거·밀맥주·흑맥주·에일·인디아 페일 에일(IPA) 등 16개 제품을 지난해 12월 출시했다.

이선우 군산시 먹거리정책과 주무관은 “군산 수제맥주는 대형 맥주회사와 달리 100% 맥아를 쓰기 때문에 거품이 풍부하고, 아미노산 함량이 높아 담백한 맛이 난다”고 말했다. “생산 원가를 낮추기 위해 맥아 비율을 낮추고, 옥수수 전분 등을 쓰면 깔끔한 맛은 나지만 맥아 특유의 향은 줄어든다”는 설명이다.

그는 “군산은 과거 전북 김제·고창, 전남 영광·해남, 제주도와 함께 국내 보리 주산지였으나, 2012년 이후 보리 수매중단으로 판로확보에 어려움이 컸다”며 “수제맥주 시장의 잠재력을 보고 농업 부가가치를 높이기 위해 맥주보리 생산에 나섰다”고 말했다.

군산맥아는 1t 이하 맥아를 구매할 경우 1㎏당 1950원으로 수입 맥아(1760원~2050원)와 가격이 비슷하다. 1t~3t을 구매할 경우 군산맥아가 18~28% 정도 비싸다. 김관배 성균관대 겸임교수(식품생명공학과)는 “군산맥아는 수입산 맥아와 비교해 가격 경쟁력도 있고, 맥주 맛도 풍부하게 나온다”며 “맥아는 맥주의 맛을 결정하는 몸통과 같다. 맥주시장이 커지고 있으나, 국산 보리재배와 맥아 생산이 뒷받침되지 못하고 있는 만큼 정부의 제도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1969년 서울 영등포 맥주공장 전경. [사진 김관배 교수]

1969년 서울 영등포 맥주공장 전경. [사진 김관배 교수]

다양성 강조한 수제맥주 160곳…시장 5배 성장  

맥주는 크게 발효 조건에 따라 ‘에일(상면발효)’과 ‘라거(하면발효)’로 분류되며, 맥아와 홉, 효모 종류에 따라 수백 가지 종류의 맥주를 만들 수 있다. 통상 라거는 저온(7~13도)에서 천천히 발효시켜 황금색을 띠고 있으며, 시원한 청량감이 특징이다. 에일은 상온(15~25도)에서 발효시켜 색이 진하거나 탁하고, 홉의 쓴맛을 더 느낄 수 있다. 라거와 에일이 다른 효모를 쓰기 때문인데 발효 기술에 따라 맛과 색깔이 비슷하게 나오는 경우도 있어 육안으로 구분하기는 힘들다.

대형 맥주회사는 장기간 유통 판매와 원가절감에 초점을 두기 때문에 대체로 라이트 라거 생산 비중이 높다. 반면 수제맥주는 향료와 제조과정에 다양한 변화를 시도할 수 있어 개성을 강조한 맥주를 만들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우리나라는 2002년 한·일 월드컵 대비해 정부가 소규모 맥주 제조면허를 도입하면서 수제맥주 문화가 시작됐다. 당시 ‘하우스 맥주’로 불리며 2~3년 새 전국적으로 100개 이상 생겨났지만 2013년께 절반으로 줄었다. 1세대 소규모 양조장은 카브루·바이젠하우스·세븐브로이·트레비어 등이 꼽힌다.

이후 수제맥주 시장은 2014년 주세법 개정으로 소규모 맥주 업체도 외부유통이 가능지면서 도약기를 맞았다. 한국수제맥주협회에 따르면 수제맥주 제조 면허는 2016년 81개에서 2019년 150개, 2020년 154개, 2021년 163개로 최근 5년 새 2배 이상 늘었다. 같은 기간 매출액은 2016년 311억 원에서 지난해 1520억 원으로 5배가량 성장했다. 수제맥주 국내 점유율은 같은 기간 0.69%에서 4.92%로 7배 뛰었다.

이인기 비어포스트 대표는 “초창기 수제맥주는 독일식 맥주를 구전 받아 만드는 곳이 많았다”며 “시장이 커지면서 전문적인 교육도 진행되고, 기술이 쌓이면서 홉을 많이 쓰는 미국식 IPA 등 미국과 독일식을 융합한 수제맥주가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1967년 국내산업 시찰 차원으로 맥주공장을 방문한 주한유엔군 모습. [연합뉴스]

1967년 국내산업 시찰 차원으로 맥주공장을 방문한 주한유엔군 모습. [연합뉴스]

맥주 몰랐던 조선…일제 맥주공장 2곳 세워 

우리나라는 1876년 강화도조약 이후 일본 맥주가 건너오면서 맥주 문화가 시작됐다. 일제강점기 일본인이 맥주회사를 조선에 문을 열면서 맥주회사도 설립됐다.

1933년 8월 일본의 대일본맥주 주식회사가 서울 영등포에 ‘조선맥주 주식회사’를, 그해 12월 일본의 기린맥주 주식회사가 ‘쇼와기린맥주 주식회사’를 설립해 맥주를 제조했다. 쇼와 기린맥주는 1948년 동양맥주로 이름을 바꿨다.

이들 일본 맥주회사는 광복 이후 미군정에 귀속됐다가 1951년 민간에 넘겨졌다. 이후 조선맥주(현 하이트진로)와 동양맥주(현 오비맥주)가 국내 맥주시장을 주도했다. 2014년 롯데주류가 맥주를 출시하면서 우리나라 맥주시장은 대기업 3사가 양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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