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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트로피’ 늘어나는 사회, 개인들 에너지 공유 절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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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4호 26면

인문학자의 과학 탐미

# 변화의 방향성

우주에서 매우 작고 특별한 환경을 지닌 지구에 살면서 우리는 매 순간 변화를 겪고 있다. 그 변화의 밑바탕에 있는 법칙의 하나로 ‘엔트로피 법칙’이 있다. 우리가 겪는 변화도 궁극적으로 엔트로피, 즉 무질서도가 증가한다는 열역학 제2법칙 때문이다. 열역학에 대한 연구는 19세기에 발명된 열기관의 효율을 수치로 정량화하면서 그 기틀이 마련되었다. 더 나아가 온갖 에너지들도 에너지의 역학적 변형으로 이해되었다. 이때 발견된 열역학 제1법칙과 제2법칙은 우리 주변 에너지의 변화뿐만 아니라 우주적 원리로까지 확장되었다.

열이란 온도 차이 때문에 고온의 물체에서 저온의 물체로 이동하는 에너지다. 그 역으로의 이동은 자체적으로는 절대 불가능하다. 그런데 열에너지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이동하면서 그 차이만큼  일 에너지와 그 밖의 다른 에너지로 바뀐다고 할지라도 그 총에너지는 보존된다. 즉 에너지는 어느 한곳에서 다른 곳으로 이동을 하거나 형태만 변할 뿐 우주를 이루는 에너지의 총합은 항상 일정하다. 이것을 ‘에너지보존법칙’이라고 하며 열역학 제1법칙이라 칭했다. 그렇다면 우주라는 계(system)에서 기존의 에너지가 완전히 파괴되거나 별도의 에너지가 새롭게 창조되는 일은 있을 수 없다.

열역학 제2법칙은 엔트로피 법칙이라 불리는데, 엔트로피는 ‘무질서의 정도’를 나타내는 개념으로 질서정연하게 배열된 상태에서 마구 뒤섞여 갈피를 잡을 수 없게 되면 엔트로피가 증가했다고 한다. 반대로 흩어진 퍼즐이나 루빅큐브를 정확하게 맞추면 엔트로피가 감소했다고 한다. 그런데 우주의 자연 상태에서 발생하는 변화는 무질서의 정도가 증가하는 방향, 그러니까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방향으로만 향한다.

# 엔트로피의 ‘에너지 공유’

하나의 이론은 그것을 만든 이론가들의 세계관뿐만 아니라 당대의 사회·경제·문화적 제반 요소들을 비롯해 놀라운 과학적 발견과 밀접하게 연관된다. 엔트로피 법칙은 새롭게 제기된 존 돌턴(1766~1844년)의 원자설이 결합되면서 열의 본질에 대한 새로운 접근에 이르게 되었다. 열은 아주 작은 존재들의 진동과 운동에 의해서 만들어지고 전달된다는 이론이 바로 그것이다.

오스트리아 이론물리학자 루트비히 볼츠만. [사진 위키피디아]

오스트리아 이론물리학자 루트비히 볼츠만. [사진 위키피디아]

루트비히 볼츠만(1844~ 1906년)은 간단한 수식과 추론을 통해 온도·압력·부피 등과 같은 현상들을 원자나 분자들이 가지는 진동과 운동에너지로 해석할 수 있다는 것을 밝혀냈다. 즉 열을 나타내는 온도라는 것을 원자나 분자들의 운동과 관련시켰다. 열에 대한 이런 이해에 따르면 엔트로피란 “보이지 않는 작은 분자들이 자신의 에너지를 골고루 공유하는 상태로 나아가고자 하는 경향성”이 된다.

차가운 얼음이 가득 들어 있는 컵에 뜨거운 물을 붓는 경우를 생각해 보자. 얼음을 구성하고 있던 분자들은 질서정연하고 매우 안정된 배열을 하고 있다. 여기에 빠르고 자유롭게 운동하는 뜨거운 물 분자들이 확 들어온다. 얼음이 녹으면서 찬기는 금방 사라지고 뜨거운 물도 미지근해지는데, 뜨거운 물 분자들과 얼음의 물 분자들이 충돌하면서 자신들의 운동과 진동을 전달한다.

곧 서로 운동에너지와 진동을 주고받으면서 같은 컵 안에 있는 얼음물과 뜨거운 물은 같은 온도와 같은 배열을 갖게 된다. 이렇듯 엔트로피의 본질은 분자들이 에너지를 골고루 공유하면서 존재할 가능성이 가장 높은 상태로 나아가려는 경향성이다. 섞이기 전의 뜨거운 물 분자는 얼음의 물 분자보다 온도가 높으니 불안정하지만, 얼음의 물 분자보다 훨씬 활발하게 움직이니 더 자유롭다. 그에 비해 얼음의 물 분자는 자유가 덜하지만 안정된 상태였다.

얼음이 물과 섞이는 것이 안정을 희생해서 자유를 얻는 과정이라 한다면, 뜨거운 물 분자가 얼음의 물 분자와 섞이는 과정은 자유 대신 안정을 추구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두 법칙을 종합하자면 앞으로 일어날 일이 어떤 방향으로 진행될지 그 대략을 예측할 수 있다. 다소 거칠게 표현하자면, 우주는 안정과 자유를 동시에 추구하지만 궁극적으로 자신들의 에너지를 공유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될 것이다.

# 칼 폴라니의 이중운동

어느 시대가 무르익어 하나의 이론을 출현시키면 그 이론은 다시 당대의 다양한 사회현상에 영향을 미친다. 다윈의 진화론이 생물학 영역에 등장하여 사회적 다원주의라는 보다 넓은 무대에 확대 적용된 것도 그 예다.

오스트리아 출신의 미국 사회철학자 칼 폴라니. [사진 위키피디아]

오스트리아 출신의 미국 사회철학자 칼 폴라니. [사진 위키피디아]

엔트로피 법칙과 상당한 유사성을 지니는 것으로, 칼 폴라니(1886~1964년)의 ‘이중운동’ 개념을 들 수 있다. 칼 폴라니는 2008년 세계금융위기 이후 각광 받아 왔고 ‘다보스포럼’을 비롯한 각종 사회적 경제 공동체에서 끊임없이 회자되고 있는 인물로, 특히 최근 코로나 팬데믹 사태 이후 경제위기를 겪으면서 자주 거론되고 있다. 그의 대표 저작인 『거대한 전환』에서 밝히고 있는 핵심 사상이 ‘이중운동’이다.

칼 폴라니에 따르면 이중운동의 첫 번째 방향은 1차 세계대전 이전에 유럽이 꿈꿨던 ‘자기조정 시장’이었다. 그 당시 유럽은 인간의 모든 경제활동이 시장으로 조직돼야 한다고 믿었다. 세상에 있는 전부를 다 상품으로 만들어 시장에서 거래한다면 그 가격들이 저절로 형성되고 하나의 안정된 체계를 이룬다고 보았다.

하지만 곧 이 여파로 1차 세계대전, 경제공황, 파시즘과 공산주의 혁명과 같은 일련의 사건들이 발생했다. 폴라니의 분석에 따르면, 이 사건들은 ‘자기조정 시장’에서 절대로 상품화되어서는 안 될 ‘인간, 자연, 화폐’에 가격표가 매겨졌기 때문이었다. 이것이 다른 상품과 똑같이 거래되면서 유럽은 대공황을 겪게 되었다고 한다.

이중운동의 두 번째 방향에서 ‘인간, 자연, 화폐’가 상품으로 전락되고 파괴되는 것에 저항하여 자유를 지닌 존재로 방어하자는 ‘자기보호 운동’이 벌어진다. 오늘날 인간이 한낱 상품으로 취급되어 그 노동력에 비해 말도 안 되는 가격으로 거래되는가 하면, 토지를 비롯한 각종 원목이나 동식물들이 버젓이 상품으로 둔갑하고, 그뿐만 아니라 화폐를 상품으로 사고팔면서 큰 혼란에 빠져들고 있다. 그렇게 되면 당연히 인권, 환경과 동물을 보호하기 위한 규제와 조치 등이 만들어질 수밖에 없다. 소방규제, 식품위생규제, 환경규제 등 특별한 (시)장에 규제를 가하는 것은 시민을 보호하기 위한 ‘자기보호 운동’인 것이다.

칼 폴라니의 ‘이중운동’을 좀 거칠게 표현하자면, 하나는 안정을 추구하고 또 다른 하나는 자유를 추구하는 운동이라 할 수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자기조정 시장’은 마치 높은 온도의 뜨거운 물과 낮은 온도의 얼음이 특별한 이유로 섞이지 않은 것처럼 궁극적으로 부가 소수의 사람들에게만 편중되는 것이고, ‘자기보호 운동’에서 말하는 상품화로부터의 자유는 부의 양극화를 없애려는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두 가지를 모두 얻을 수 있다면 이보다 더 좋을 순 없겠지만, 안정과 자유는 많은 경우 상충된다.

앞에서 엔트로피는 안정과 자유를 동시에 추구하면서 에너지를 공유하는 경향성을 지녔다고 했다. 칼 폴라니가 말하는 ‘자기보호 운동’에서 엔트로피의 에너지 공유와 유사한 지점을 발견하게 된다. 그는 ‘자기보호 운동’이 벌어질 때 보통 이념이나 계급을 초월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오늘날로 치자면 환경운동이나 식품 안전을 위한 캠페인 등은 계급투쟁과는 무관하게 일어나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예를 들면, 우리가 호흡하는 공기나 밥상의 음식물, 식수 등이 ‘자기조정 시장’에만 맡겨져 비즈니스라는 명목 아래 저질 상품이 되어 인간과 자연에 해를 끼칠 때 모두가 하나 되어 이들을 ‘보호’하자는 운동이 곳곳에서 일어나곤 한다. 상품화를 통해 이윤을 추구하는 것도 좋지만 인간과 자연을 해치면서까지 상품화되어서는 안 된다는 일종의 에너지가 공유된 결과인 셈이다.

# 모든 것을 상품화할 수 없다면

인간이 점점 더 싼 가격의 상품으로 전락하는 것을 막는 최소한의 장치로서, 최저임금제가 사용되고 있다. 그래서 그 어느 때보다도 시간 관리가 중요한 시대를 살고 있다. 2022년도 최저임금은 9160원, 하루 8시간 일한다 치면 7만3280원, 일주일 계속 일거리가 있어 40시간 일한다고 할 때 43만9680원, 재수 좋게 그렇게 한 달간 일이 주어지고 주당 유급주휴 8시간이 확보된다면 209시간 일하고 191만4440원을 벌 수 있다. 그런데 정말 반드시 해야 하는, 또는 할 수밖에 없는 수많은 노동이 과연 이런 최저시급으로 정량화될 수 있을까?

설거지·세탁·청소·식사준비 등 아무리 일해도 표가 나지 않는 가사 노동, 거의 하루 종일 폐지를 줍고도 1만원을 못 받는 이름만 번지르르한 ‘자원재생활동’, 한 장의 변변한 명함도 없는 각종 용역, 연구원이라는 이름이 무색한 각종 그럴싸한 연구소의 잔일들, 심지어 ‘마루타 아르바이트’, 취업을 위해 준비하는 취준생의 노동(공부), 가수를 꿈꾸며 시간을 쪼개어 틈틈이 따라 부르거나 흉내 내는 노랫말들과 춤사위까지, 그 노력을 전부 상품화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지금 양극단의 사람들 중 한쪽은 안정을 제한하고 자유를 늘려야 한다고, 또 다른 한쪽은 자유를 제한하고 안정을 늘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과연 우리는 지금 안정을 추구하는가? 아니면 자유를 추구하는가? 어느 편에 있든지 자신의 에너지를 골고루 공유하기 위한 삶이 가능하다면 고민할 필요가 없겠지만, 지금처럼 우리 사회 각각의 사람들의 에너지가 점점 사라지고 있다면 어디 한 번 생각해 보자. 오늘날 상품화되어선 안 될 상품들이 19세기보다 더 다양하게 쏟아지고 있다는 것을. 시골 한 마을이 부동산개발이나 에너지사업, 관광산업이라는 이름으로 상품화되면서 그곳 사람들이 분열되는가 하면 마을 자체가 소멸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결국 모든 것을 상품화할 수 없기 때문에 우리의 나아갈 미래는 엔트로피 법칙에서 보듯 사회 전체가 에너지를 공유하는 상태로 나아가는 것이 근본적 방향이라 할 것이다. 우리 사회가 엔트로피 법칙에 따라 운동과 진동을 이왕 주고받을 것이라면, “보이지 않는 작은 개인(분자)들이 자신의 에너지를 골고루 공유하는 상태로 나아가고자 하는 그 경향성”이 절실하다. 무엇보다도 우리 사회는 그 ‘경향성’을 지지해 주는 기틀을 마련해야 한다.

김동훈 인문학자. 서양고전학자·철학자. 서울대와 고려대에서 희랍과 로마문학 및 수사학, 철학을 공부했다. 희랍어와 라틴어 및 고전과 인문학을 가르친다. 인문학의 서사를 담아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는 ‘퓨라파케’ 대표. 『인공지능과 흙』 『브랜드 인문학』 『키워드 필로소피』  『별별명언』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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