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치안감 인사 번복 논란의 파문이 이어지고 있다. ‘국기 문란’이라는 표현을 썼던 윤석열 대통령에게 ‘경찰청장의 거취’에 대한 질문도 나왔다. 윤 대통령은 24일 오전 출근길 기자 문답에서 “(김 청장의) 임기가 한 달 남았는데 그게 중요한가”라고 말했다. 이 발언을 두고 경찰은 다시 술렁였다.
尹 “임기 한 달” 발언의 의미는
기자들의 질문은 전날(23일) 윤 대통령의 발언이 경찰을 강하게 질타한 것이라는 판단에서 나온 것이었다. 윤 대통령은 “국기 문란” “인사 유출” “공무원으로서 있을 수 없는 일” 등 강한 어조로 경찰을 비판했다. 이에 경찰 안팎에서는 “전 정권에서 임명된 김창룡 청장에게 자진 사퇴와 같은 결단을 요구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그러나 이날 윤 대통령은 김 청장의 용퇴 문제에는 관심이 없다는 듯한 반응을 보였다. 김 청장의 임기(다음 달 23일)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뉘앙스였기 때문이다. 경찰에서는 김 청장을 사실상 패싱하고 있다는 해석이 나왔다. 한 일선 경찰관은 “김 청장은 어차피 나갈 사람이라 용퇴는 큰 의미가 없고 그걸로 이번 사태를 무마할 수 없다는 윤 대통령의 의지가 담긴 발언”이라고 해석했다. 이 관계자는 “우리(경찰) 입장에서도 김 청장이 지금 와서 용퇴한다고 해도 어떤 여파가 있을 것 같지 않다. 어쩌다 이런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는지 진실을 알고 싶을 뿐”이라고 덧붙였다.
검찰총장 출신인 윤 대통령이 전 정권에서 진행된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에 코드를 맞추고 이익을 챙긴 경찰 조직에 강한 불만을 드러낸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경찰의 한 관계자는 “대통령의 강경한 모습은 단순히 이번 인사 번복 문제뿐 아니라 (전 정권의) 검·경 수사권 조정 등을 포괄해 메시지를 던진 것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김 청장은 이날 “거취와 관련해 입장을 밝히기에는 적절하지 않다”며 말을 아꼈다. 전날 퇴근길에서는 “청장의 역할과 업무를 소홀히 하지는 않겠다”며 용퇴설 등에 즉답을 하지 않았다.
‘분신할까’ 글까지…경찰 내부 어수선
경찰 내부에서는 윤 대통령이 이번 인사 사태 책임을 경찰에게 돌린 것에 격앙된 분위기가 조성되기도 했다. 경찰 내부망 ‘폴넷’에는 “경찰기 대신 근조기를 게양하자” “근조리본을 달자” 등 항의하는 글이 잇따라 올라왔다. 대통령과 현 정부가 경찰 조직을 찍어 누르려 한다면서 “이 한 몸 분신이라도 해야 할까요”라며 과격한 표현으로 항의하는 글도 등장하고 있다.
지난 21일 경찰 내부망에 올라온 치안감 전보 인사 공지에는 이날 오후 1시 기준 항의성 댓글이 190개 가까이 달렸다고 한다. 이 가운데 ‘작성자 본인이 직접 삭제하였습니다’라는 댓글은 150여개에 이른다. 한 지역 경찰관은 “보통 축하 댓글이 달리는 인사 공지에 삭제 댓글이 달린다는 건 인사 번복 사태 등에 대한 항의가 담겨 있다”고 말했다.
김 청장의 용퇴론에는 경찰 내부 의견도 갈리고 있다. “김 청장이 직을 던져 행정안전부의 경찰 통제 등 최근 사태에 배수진을 치고 대응해야 한다”는 주장과 “지금 나가면 다음 청장이 짐을 떠안게 된다”는 신중론 등이 나온다. 한 경감급 경찰관은 “차기 청장은 현 정권 사람이라 목소리를 내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김 청장의 거취 문제로 조직이 갈림길에 서 있다”고 짚었다. 또 다른 경찰 관계자는 “검수완박 사태 내내 목소리 한번 못 내고 휘둘린 경찰 조직이 이번에도 수세에 몰리면서 어수선한 분위기”라고 전했다. “침묵하는 지휘부에 대한 서운함도 커지고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다만, 윤 대통령 결재가 있기 전 내정안이 발표돼 논란이 된 부분에 대해 경찰에서는 ‘관행’이라는 입장이 지배적이다. 내정 상태로 공지가 되는 것은 전국 단위 이동이 필요한 현실을 반영한 관례였다는 것이다. 윤 대통령 취임 이후 이뤄진 4차례 경찰 인사도 내정 형식으로 대통령 재가 전에 언론에 배포됐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경찰의 한 관계자는 “최종본이 나오기까지 과정은 일종의 협의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이상민 행안부 장관은 오는 28일 출입기자단 간담회를 통해 경찰 인사 관련 논란 등에 대한 입장을 밝힐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