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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곧 없어질 규정 꺼내…국회 '월북' 자료요구 거부한 해경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해양수산부 공무원 이대준씨 피살사건과 관련해 해양경찰청이 최근 국회의 관련 자료 제출 요구에 ‘형사사건 공개금지 원칙’을 들며 대부분 거부한 것으로 파악됐다. 해당 조항은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추진해 만들어진 규정으로, 당시 ‘방탄 규칙’ 비판을 받고 최근 개정 작업이 진행 중이라 논란이 예상된다. 곧 없어질 규정을 근거로 자료제출을 거부한 셈이기 때문이다.

국민의힘의 해수부 공무원 피격사건 진상조사 TF 소속 안병길 의원(오른쪽)과 하태경 위원장(가운데), 신원식 의원(왼쪽) 등이 22일 인천 연수구 해양경찰청 회의실로 들어서고 있다. 연합뉴스

국민의힘의 해수부 공무원 피격사건 진상조사 TF 소속 안병길 의원(오른쪽)과 하태경 위원장(가운데), 신원식 의원(왼쪽) 등이 22일 인천 연수구 해양경찰청 회의실로 들어서고 있다. 연합뉴스

22일 국민의힘 해수부 공무원 피격사건 진상조사TF(태스크포스) 소속 안병길 의원실이 해경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해경은 사건 당시 수사 관련 자료 요구에 대해 수사준칙을 들며 “규정 등에 따라 제출이 어려운 점을 양해해달라”고 답했다. 안 의원실이 요청한 자료는 ▶2020년 9월 22일(사건 발생) 이후 현재까지 해양경찰청장ㆍ중부해양경찰청장ㆍ수사국장이 내린 수사지휘ㆍ감독내용 및 수사지휘서 사본 ▶사건 관련 수사보고서 ▶사건 관련 수사서류 목록 및 서류 사본 ▶현장감식결과보고서 등이다.

해경이 자료 미제출 근거로 든 규정은 ‘검사와 사법경찰관의 상호협력과 일반적 수사준칙에 관한 규정’ 가운데 ‘형사사건 공개금지 등에 관한 규정’이다. 해당 규정은 조 전 장관이 신설을 추진해 사의를 밝힌 직후인 2019년 10월 만들어진 규정이다. 형사사건에 관해 형사사건공개심의위원회 의결 없이는 피의사실과 수사 상황을 언론에 공개하지 못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당시 조 전 장관이 퇴임 후 검찰 조사를 받을 때 해당 규정의 수혜를 받으면서 ‘셀프 방탄 규정’이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 역시 2020년 2월 이 규정을 근거로 이른바 '청와대 울산시장 선거개입 의혹사건'의 공소장을 공개하지 않았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해당 규정 개정을 시사하면서 곧 규정이 변경될 것이란 관측이 많았다. 한 장관은 장관후보자 시절부터 이 규정에 대해 “국민의 알권리 제한 등 비판적 의견도 있었다”며 개정 의지를 밝혔다.

정봉훈 해양경찰청장이 22일 인천 연수구 해양경찰청을 방문한 국민의힘 해수부 공무원 피격사건 진상조사 태스크포스(TF) 소속 의원들과 만나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뉴스1

정봉훈 해양경찰청장이 22일 인천 연수구 해양경찰청을 방문한 국민의힘 해수부 공무원 피격사건 진상조사 태스크포스(TF) 소속 의원들과 만나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뉴스1

이때문에 여권에선 “해경이 ‘자진월북’ 판단 근거가 부족하니 수사과정을 공개하지 않으려는 것”이란 주장을 펴고 있다. 안병길 의원은 “'가짜월북자'까지 만든 해경이 수사내용은 밝히지 못한다고 하면 누가 납득할지 의문"이라며, "유가족과 국민에게 사과 한 마디 못하면서 무엇을 숨기려고 이러는지 지금이라도 솔직히 밝혀주길 바란다”고 주장했다.

한편 해경이 이씨 사건 직후 수사전담반을 운용하다가 약 3개월 만에 운용을 종료한 사실도 확인됐다. 해경은 안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서 사건 발생(9월 22일) 3일 뒤인 2020년 9월 25일 인천해양경찰서 주관으로 수사전담반을 구성했다고 밝혔다. 이후 같은 해 10월 9일까지 인천서 주관으로 전담반을 운용하다가 중부지방해양경찰청 주관으로 격상시켰는데, 중부청은 같은 해 12월 21일 전담반을 종료했다. 해경 관계자는 전담반 운용을 종료한 이유에 대한 안 의원실의 질의에 “중요한 수사사항이 일부 정리된 점 등을 고려해 전담반을 종료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해경이 이씨 사건에 대해 “자진 월북하려다 일어난 일”이라는 내용의 중간 수사결과를 발표한 건 수사전담반이 설치된 지 4일 만이자 사건 발생 8일 만인 2020년 9월 29일이다. 안 의원실 관계자는 “해경이 당시 충분한 증거수집 없이 월북이라는 결론을 먼저 내리고 수사를 시작한 것”이라는 비판했다. 수사전담반이 종료되고 1년 6개월이 지난 16일에야 해경이 수사 종결을 선언한 것에 대해서도 여권에선 “수사가 충분히 진행되지 않은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제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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