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만전자에 가슴 부여잡았다"…주식 공황에 정신과 찾는 2030

중앙일보

입력 2022.06.20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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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매일 주식시장이 열리기 30분 전부터 가슴이 막 쿵쾅거리기 시작해요. 욕심 안 부리고 남들 다 넣는 종목에만 투자했는데 주식 때문에 제가 이렇게 망가질 줄은 몰랐죠.”
직장인 허모(32)씨는 최근 정신건강의학과를 찾아 상담을 받았다고 했다. 연이은 주가 폭락으로 투자 손실금이 1000만 원대로 불어나자 극심한 불안을 느꼈기 때문이다. 허씨는 “테마주나 코인(암호화폐)은 투기라고 생각해서 안정적인 종목에만 투자했는데, 믿었던 삼성전자가 ‘5만 전자’가 되는 순간 가슴을 부여잡았다”고 말했다.

경기 침체로 인한 주식 시장 불황이 이어지면서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는 투자자가 늘고 있다. 특히 투자 경험이 많지 않은 20~30대 사회초년생을 중심으로 우울증이나 공황장애 등 정신적 고통을 겪는다는 이도 적지 않다. 최근엔 국내 증시의 대표 우량주들마저 하락세를 면치 못하면서 허씨와 같은 사례가 속출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코스피가 전일보다 11.54포인트 떨어지며 2492.97에 장을 마친 14일 오후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에서 직원들이 업무를 보고 있다. 장진영 기자

코스피가 전일보다 11.54포인트 떨어지며 2492.97에 장을 마친 14일 오후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에서 직원들이 업무를 보고 있다. 장진영 기자

“믿었던 삼전마저…잠 안 와요”

의료계에 따르면 주식 투자 손실로 인한 스트레스 때문에 진료를 요청하는 20~30대 환자가 증가하고 있다. 지난주 서울 종로구의 한 정신건강의학병원에는 “주식 때문에 일상생활하기가 힘들다”는 내용의 상담 문의가 평소보다 2배 넘게 들어왔다고 한다. 한 정신건강의학 전문의는 “보통 투자 실패는 본인의 책임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병원까지 찾는 경우는 드문데, 요즘엔 전반적인 경제 상황에 무력감을 느껴서 상담을 원하는 환자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우량주의 주가까지 급락하면서 초보 투자자들의 타격이 극심한 상황이다. 국내 시가총액 1위인 삼성전자는 지난 17일 5만9800원에 거래를 마쳤다. 삼성전자가 5만 원대가 된 건 종가 기준으로 2020년 11월 이후 1년 7개월 만이다. 지난해 초 9만 원대까지 오르며 ‘10만 전자’라는 기대 섞인 전망까지 나왔지만, 다시 ‘5만 전자’로 내려앉은 것이다.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지난해 초 주식을 시작한 권모(29)씨는 “삼성전자는 주식 초보들 사이에선 은행 적금 같은 개념이다. 그런 종목이 반 토막 났으니 밤에 잠이 안 오는 게 당연하다”고 말했다. 한 30대 투자자는 “아침에 일어나서 주식 애플리케이션 켜는 것 자체가 엄청난 스트레스”라고 토로했다.

비슷한 고통을 겪는 투자자들이 익명으로 온라인에 모여 서로를 위로하는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카카오톡 오픈 채팅방인 ‘주식 비트코인 망한 사람들을 위한 방’에는 19일 기준 70여명의 투자자가 들어와 각자의 투자 실패 경험을 털어놨다. 채팅방 개설자는 “힘들어서 오셨으면 잘 찾아오셨다”며 다른 투자자를 격려했다.

19일 카카오톡 오픈채팅방 '주식 비트코인 망한 사람들을 위한 방'에 입장하자 채팅방 개설자가 위로 메시지를 자동으로 보냈다. 카카오톡 캡처

19일 카카오톡 오픈채팅방 '주식 비트코인 망한 사람들을 위한 방'에 입장하자 채팅방 개설자가 위로 메시지를 자동으로 보냈다. 카카오톡 캡처

주식 호황만 겪은 2030에 충격

지난해 호황이었던 주식 시장에 불황이 닥치면서 투자 경력이 짧은 20~30대에게 더 큰 충격이 가해졌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지금의 20~30대는 주식이 떨어지는 것보다 오르는 걸 더 많이 본 세대다. 재산을 많이 모으지도 못한 상황에서 이런 사태를 처음 겪기 때문에 더 큰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이러한 현상에 대해 홍진표 삼성서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투자 경력이 긴 기성세대는 전에도 주식이 빠지는 걸 겪었기 때문에 동요하지 않을 수 있지만, 20~30대는 그런 상황이 아니다”며 “투자 손실을 투자로 메꾸려는 무리한 시도보다는 가족에게 실패를 털어놓거나 다른 일상적 활동을 통해 주의를 환기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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