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워할 수 없는 그들…사람 얘기 진득한 시

중앙선데이

입력 2022.06.18 00:21

지면보기

793호 21면

횡천

횡천

횡천
이창수 지음
문학세계사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 시인 이창수는 시집 한 권을 완성했다. 정확히는 11년 걸렸다. 2011년 두 번째 시집 『귓속에서 운다』 이후 이번 시집 『횡천』을 내기까지 말이다.

오로지 시 쓰기에만 매달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오래 뜸 들인다고 반드시 시집의 품질이 좋아지는 것도 아니다. 어떤 세월이었는지는 짐작할 수 있다. ‘시인의 말’에 그간 어머니가 돌아가셨고, 십 년 넘게 떠돌던 서울 생활을 청산하고 고향 광주로 돌아왔다고 밝혔다. “이별을 피할 수 없는 게 인간의 숙명”이라는 누구나 아는 인생 진리를 새삼스럽게 절감하고, “우울한 마음을 달래려 섬진강을 따라가다 지리산을 만났다”고 했다. 그랬더니 눈과 귀가 즐거웠다고.

시집 안의 50여 편 가운데 상당수는 얼추 이 범주 안에 든다. 어머니와 아버지, 이별, 섬진강과 지리산 같은 대상들 말이다. 범주를 벗어나는 것들도 있다.

‘보성강’은 강 이야기가 아니다. 강에서 물고기 잡은 친구 경수 이야기다. 짧지 않은 사연을 요약한 짧은 산문시인데 버릴 게 없어 보인다. 배터리로 물고기 잡던 경수, 경찰서에 끌려간다. 경수의 항변, 시인의 코멘트가 압권이다. “물고기는 수달도 잡았는데 감옥에는 경수만 갔다. 모자 눌러쓴 경수가 법정에 나왔다. 판사에게 수달이 잡아먹어도 되는 물고기 사람은 잡으면 안 되냐고 따졌다가 징역 살았다. 국선 변호사도 그냥 살다 나오라고 했다.”

친구(시인 이창수다)의 아픈 어머니를 위해 불법일 망정 어로행위에 매진하는 경수의 우직함 앞에 수달, 판사, 국선 변호인 모두 떳떳할 건 없는 존재들이다.

‘얇은 벽’은 경수에게로 향했던 안쓰러움이, 말 그대로 얇은 벽을 두고 이웃해 살며 온갖 생활소음을 공유했던 옆방 여자에게 향한 경우다. 휴일 대낮 그녀의 교성을 엿들은 적이 있는지라 밖에서 마주치면 인사도 못 하는 사이다. 시인은 염치 걸러주는 벽이 눈물 나게 고맙다. 그리곤 쓴다. “한겨울 밤 기침 소리 들려오면/ 이마 짚어주고 싶었다”고.

윤리가 발붙이지 못하는 곳의, 미워할 수 없는 사람들 이야기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Innovation La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