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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석천 가수 데뷔…뉴질랜드 대사 부부가 뮤비서 춤춘 까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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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모두가 너를 비난해도 걱정 마, 일어설 수 있어. 서로가 다를 수 있어도 모두 일어나 함께 춤추자.”

지난 9일  방송인 홍석천(51)이 부캐 ‘탑 지(TOP G)’로 발표한 신곡 ‘케이탑 스타(K TOP STAR)’의 한 대목이다. 최근 서울 용산구 뉴질랜드 대사관저에서 만난 홍석천은 “서른 살의 홍석천이 하고 싶었지만 못했던 것 중 하나가 가수였다”며 “요즘은 노래 만드는 데 거대한 회사가 없어도 되니, 그냥 즐거운 작업을 해봤다”고 말했다.

왼쪽부터 2018년 한국에 부임한 필립 터너 주한 뉴질랜드 대사, 방송인 홍석천, 터너 대사의 동성 배우자 이케다 히로시. 김경록 기자

왼쪽부터 2018년 한국에 부임한 필립 터너 주한 뉴질랜드 대사, 방송인 홍석천, 터너 대사의 동성 배우자 이케다 히로시. 김경록 기자

그는 자신을 설명하는 여러 요소 중 성적 지향을 부캐의 이름(탑 지, ‘탑 게이’를 줄인 말)으로 내세웠다. 신곡 제목 ‘케이탑 스타’에서는 ‘게이 탑 스타’가 연상된다. “이왕 노래를 만드는 거 의미를 담자 싶어서 소수자 관련 이야기도 넣었다”며 “제목은 살짝 숨겨서 음악을 즐길 수 있는 폭을 넓혔고, 무겁지 않게 메시지를 던지고 싶었다”고 말했다.

뮤직비디오도 독특하다. 노래에서 랩을 맡은 퀸와사비가 출연했다. 댄서 리아킴이 “MZ와 꼰대가 함께 출 수 있는” 안무를 짜줬다. 화룡점정은 주한 뉴질랜드 대사 부부가 직접 출연해, 홍석천과 함께 대사관저에서 춤추는 장면이다. 주한대사가 영상물에 등장하는 것은 드문 일이다. 해당 국가의 승인이 있어야 가능하다.

올 초 처음 인사를 나눈 대사 부부에게 홍씨는 한 달 뒤 뮤직비디오 출연을 요청했다. 뉴질랜드 정부로부터 대사관저 촬영까지 허가를 받았다. 필립 터너(62) 대사는 “처음 제안을 듣고 ‘와 재밌겠는데’ 싶었다”며 “이 비디오가 다양성, 관용, 평등을 이야기하는 거라면, 뉴질랜드의 가치와도 맞아 흔쾌히 응한 것”이라고 말했다.

홍석천의 ‘케이탑 스타’ 뮤직비디오에서 뉴질랜드 대사 부부가 함께 춤추는 모습. [유튜브 캡처]

홍석천의 ‘케이탑 스타’ 뮤직비디오에서 뉴질랜드 대사 부부가 함께 춤추는 모습. [유튜브 캡처]

2018년 한국에 발령받은 터너 대사는 동성 배우자인 이케다 히로시(63)와 함께 입국했다. 한국에 외교관의 동성 배우자 관련 규정이 없어, 1년이 지나서야 정식으로 ‘배우자’ 지위를 얻었다. 이케다는 “어릴 때부터 이런 처우가 많아 크게 상심하진 않았다”며 “동성 배우자를 인정하지 않는 나라가 많다. 대놓고 ‘오지 마라’ 하진 않지만, 그런 나라에선 배우자가 아니라 대사관 직원으로 간주된다”고 덧붙였다.

두 사람은 다양한 성적 정체성이 사회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던 시절 각각 두려움에 떨며 자랐다. 터너 대사는 20대 초반에, 이케다는 30대 초반에 가족에게 커밍아웃했다. 터너 대사는 “동성애 행위는 불법이었고, 감옥에 갈 수도 있었다”며 “내가 직업을 갖고, 가족을 찾고, 정상적인 삶을 살 수 있을까 걱정하며 겁에 질린 채 자랐다”고 회고했다.

터너 대사가 뉴질랜드 외무부에 들어간 1986년에도 동성애 행위는 불법이었다. 93년 새 인권법(차별금지법)이 여성, 외국인, 소수종교, 장애인, 성 소수자 등 소수자 차별을 금지하면서 불법에서 벗어났다. 95년 일본 도쿄에서 만난 두 사람은 2005년 뉴질랜드에서 동성 간 사실혼이 가능해지자마자 파트너가 됐다.

터너 대사는 “1993년 차별금지법은 모든 소수자를 포함하는 법안이라 뉴질랜드에서 큰 사회적 갈등 없이 합의에 도달했고, 성 소수자에 대한 세부 조항 논의는 이후 추가로 진행된 것”이라고 돌이켰다. 한국의 차별금지법 입법 논란을 염두에 둔 설명이다. 그는 “2022년 한국은 차별금지법이 생기기 전 뉴질랜드 분위기와 비슷한 것 같다”고 덧붙였다.

2000년 홍석천은 당시로써는 파격적인 커밍아웃을 한 후 소수자 권리를 위해 목소리를 내고 있다. 그는 “아직도 ‘너 따위가 어디’ 하는 비난을 많이 듣는다. 20년간 숱하게 들은 비난이지만 아직도 덤덤해지진 않았다”며 “조금만 잘못해도 욕을 100배로 먹는데, 제가 받는 비난이 동료들에게 가지 않았으면 해서 부탁 같은 걸 잘 못 한다”고 말했다.

홍석천은 “(커밍아웃한 지) 10년쯤 지나면 차별금지법도 생기고, 동성결혼도 생기고, 많이 달라질 줄 알았는데 (소수자 권리를 찾으려는 싸움이) 이렇게 길어질 줄 몰랐다”고 했다. 그는 “좀 버겁기도 하고, 내가 굳이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혼자 짐을 지는 게 힘들구나, 생각한다”면서도 “어린 소수자 친구들이 감사하다고 말할 때 ‘짐이 무거워도 내려놓을 수가 없구나’ 싶다”고 말했다.

홍석천은 “불의를 보면 못 참고, ‘왜’라는 의문이 해결돼야 속이 시원하다”며 “그래서 커밍아웃을 했을 수도 있다. ‘왜 이렇게 핍박을 받지’ 싶어서”라고 말했다. 터너 대사가 옆에서 “토니(홍석천)가 한국 사회에 새 길을 내는 걸 응원한다”며 “그는 그냥 게이 맨이 아니라 성공한 엔터테이너고, 그게 지금의 한국을 만드는 데 큰 역할을 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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