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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10명 중 8명, 첫 직장 떠난다…평균 2.9년만에 이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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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7면

김기찬
김기찬 기자 중앙일보 고용노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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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찬 고용노동전문기자

김기찬 고용노동전문기자

청년 실업률은 올해 4월 말 기준으로 7.4%에 이른다. 전체 실업률(2.7%)의 2.7배다. 전통적으로 청년 실업률이 높은 유로존(6.8%)을 웃돈다. 구직자를 포함한 확장 청년 실업률은 26%나 된다. 청년들에겐 노동시장 빙하기와 다름없다.

그런데도 직장에 정을 못 붙이고 떠나는 청년들이 부지기수다. 어수봉 한국산업인력공단 이사장(전 한국기술교육대 인력개발전문대학원장)은 “여러 연구를 종합하면 청년들의 이직을 부정적으로 볼 사안은 아니다”며 “생산적인 투자 활동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긍정적으로 봤다. 왜 이런 평가가 나올까.

한국고용정보원(원장 나영돈)이 청년 노동시장을 실증 분석한 연구결과를 내놨다. 21년 동안 축적된 청년 패널을 활용했다. 직장 생활을 하는 또는 취업을 준비하는 청년들의 현실을 엿볼 수 있다.

대기업 입사 했어도 64%가 떠나
이직으로 ‘임금 사다리 효과’도
“소득 격차 완화하는 긍정적 측면”

청년 중 공시생 21%, 합격률 16%
일자리 알선 서비스 선진화 시급

학력 높고 근로시간 길수록 이직률 높아

청년층 임금근로자 가운데 직장을 옮긴(이직) 경험을 가진 경우는 75.9%에 달했다. 10명 중 8명은 첫 직장을 떠난다는 얘기다. 심지어 안정적인 고용이 보장되는 상용직과 월평균 소득이 높은 대기업에 몸담은 청년도 직장을 계속 다니는 비율이 각각 30.6%, 36.1%였다. 여차하면 직장을 옮기는 걸 주저하지 않는 기류를 엿볼 수 있다.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첫 직장을 옮기는 데 걸리는 시간은 2.9년에 불과했다. 업무를 제대로 익히기도 전에 사표를 쓰는 셈이다. 첫 일자리 이탈 가능성은 학력이 높을수록, 근로시간이 길어질수록, 자격취득 경험이 있을 때 더 높았다. 평균적으로 직장을 이동하는 횟수는 1.8회였다. 최대 12번까지도 과감하게  이직을 감행했다.

연구진은 “고용 취약계층인 청년은 노동시장 첫 진입단계부터 매우 불안정한 고용상태에 노출되어 있다”며 “원하는 일자리에 들어가기 위해 상당한 시간과 탐색 비용을 지불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번 연구에서 첫 일자리 진입 시점에서의 임금을 비롯한 근로조건 격차가 시간이 흐를수록 더 벌어질 가능성이 큰 것으로 예측됐다. 이를 사전에 타개 또는 희석하려 이직을 택한다는 것이다.

“이직, 노동력 배분 효율성 높이는 효과”

어렵게 구한 직장을 떠나 다른 곳으로 옮기면 임금은 오를까. 기존 직장에서 3년 이내로 근무한 청년 임금근로자가 자발적 동기로 이직(스스로 직장을 그만둠)한 경우 직장을 옮기지 않는 청년에 비해 시간당 임금이 직전 직장에서보다 3.3~4% 포인트(p)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특히 이직하면서 높은 임금 상승을 경험하고, 이직 이후에도 임금 상승률이 높아지는 사실이 연구 결과 확인했다. 또 상대적으로 열악한 상황에 있는 근로자가 더 빈번하게 이직을 선택하는데, 이는 최초 입직 단계에서 발생하는 소득 격차를 완화하는 긍정적 효과를 내고 있었다. 실제로 1회 이직 경험자의 첫 일자리 임금은 174만1000원이었는데, 두 번째 일자리에서는 247만4000원을 받았다. 이른바 ‘임금 사다리 효과’가 존재하는 것이다. 다만 근속 4년을 넘기면 이직할 경우 임금이 감소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근속 기간이 길면 직장을 고수하는 것이 유리하다는 의미다.

연구진은  “눈높이를 낮추라고만 하는 것은 생애 기간에 걸친 임금 격차를 확대할 수 있다”며 “오히려 첫 직장의 중요성이 감소하면서 노동력 배분의 효율성을 높이고, 소득 격차와 기업이 필요로 하는 인력 부족을 완화하는 효과가 있다”고 덧붙였다. 수시·경력직 채용 확대 현상이 확산하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청년은 전체 청년 실업자의 20.5%나 됐다. 이들 공시생 가운데 합격하는 청년은 16% 정도로 추정돼 대다수 공시생은 실패를 경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문대졸 이상의 부모를 둔 청년의 경우 공무원 시험 준비 비율이 낮았고, 9급 공무원 준비생의 경우 부모가 자영업자인 비율이 높았다. 연구진은 “공무원 시험 준비가 세습 지위(부모의 학력과 소득수준)에 강한 영향을 받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공시 실패, 취업 늦을수록 임금격차 커져

특이한 점은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다 중도에 포기하거나 실패한 사람은 노동시장 이행(취업) 확률이 비준비생에 비해 1.23배 높았다. 그러나 공무원 시험에 실패할 경우 일자리 질은 상당한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졸업 3년 차에는 공무원 시험 불합격자가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지 않은 사람에 비해 시간당 임금이 5.6% 낮았다. 문제는 시간이 흐를수록 이 격차가 커진다는 점이다. 5년 차에는 12.1%까지 격차가 확대됐다. 이런 임금 격차는 9급 공무원 준비생일수록 더 심하게 겪었다.

이런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연구진은 다음과 같이 주문했다. “청년들의 이직을 나쁘게만 볼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직에 대한 충분한 정보와 적절한 유인 제공이 필요하다. 이는 노동수급 불일치와 소득 불평등을 완화하는 데 기여한다는 점에서 정책적으로 검토되어야 한다. 또한 청년층이 첫 직장으로의 이행과정에서 발생하는 시간 지체와 일자리 미스매치를 줄이도록 고용서비스를 선진국처럼 전문화, 세분화해야 한다. 노동시장에 진입한 이후에도 인적자본 축적을 지원한다는 차원에서 다양한 훈련기회가 제공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