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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과 원칙 대응 통했나, 확 줄어든 노동계 불법 행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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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7면

김기찬
김기찬 기자 중앙일보 고용노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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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찬 고용노동전문기자

김기찬 고용노동전문기자

윤석열 대통령은 선거운동 때부터 노동계의 불법 행위에 강하게 경고했다. 민주노총을 직접 겨냥하는 것도 주저하지 않았다. 정부와 노동계의 ‘강대강(强對强)’ 대치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클 수밖에 없었다. 지난 문재인 정부와 달리 법과 원칙을 천명했다. 노조에 우호적이던 분위기가 사라졌다.

노동계도 가만있지 않았다. 전열을 정비하고 투쟁 모드에 들어갔다. 한국노총은 투쟁 중심의 대응을 선언했고, 민주노총은 파업과 집회로 힘 과시에 나섰다. 자칫하면 정권 초부터 산업현장의 혼란이 걱정되는 상황으로 비쳤다.

화물연대 사태 대응이 첫 신호탄
불법행위 체포·구속 뒤 충돌 줄어
경찰도 “현장 직무 수행할 맛 난다”

법·원칙 준수 시민의식 확립되려면
“손실 보더라도 관행 바로잡겠다”
기업부터 인내·자율·반성 필요

민주노총 소속 조합원들이 지난 2일 서울광장과 숭례문 일대에서 열린 ‘7·2 전국노동자대회’에서 삼각지역 방향으로 행진하고 있다. [뉴스1]

민주노총 소속 조합원들이 지난 2일 서울광장과 숭례문 일대에서 열린 ‘7·2 전국노동자대회’에서 삼각지역 방향으로 행진하고 있다. [뉴스1]

윤 정부 출범 두 달여가 지난 지금, 다행히 이런 우려는 사그라든 모양새다. 불법으로 점철되던 충돌이 예전보다 확 줄었다. 첫 시험대였던 화물연대의 집단 운송 거부도 이전과는 다른 양상으로 진행됐다. 차주를 폭행하고 차량을 부수는 것과 같은 심각한 불법 행위가 사라졌다.

지난 2일 민주노총의 전국노동자대회는 법원이 정한 집회 시간과 장소 등을 준수하며 충돌 없이 끝났다. 표면적으로는 ‘반노동·친재벌 정권’과 같은 자극적인 구호가 난무했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폭력 없이 법을 준수하며 진행됐다. 쇠파이프로 경찰관을 폭행해 113명이 부상을 입고, 경찰버스 50대를 부쉈던 민주노총 총궐기대회(2015년 11월 14일)나 국회로 진입해 물리적 충돌을 빚은 집회(2019년 4월 3일),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금지한 집회를 강행했던 전국노동자대회(2021년 7월 3일), 총파업 집회(2021년 10월 20일)와 비교된다.

현재까지는 불법이 난무하던 이전과 확연한 차이다. 경찰 고위 관계자는 이렇게 분석했다.

“현장에선 ‘지구 끝까지’라는 말이 나온다. 불법 행위에 대해서다. 예전에는 큰 틀에서 넘어갔다. 이게 달라져 법의 집행과 준수라는 측면에서 정상적인 궤도에 진입했다. 이런 변화를 노동계도 감지한 듯하다. 과시형 행동이 위축됐다. 경찰의 수사 메시지는 확실하다. ‘좋은 게 좋다’는 없다. 안 되는 건 안 되는 것이다.”

지난 6월 13일 울산시 고려아연 정문 앞에서 경찰이 화물차 진입을 막는 화물연대 조합원들을 통제해 화물차를 들여보내고 있다. [뉴스1]

지난 6월 13일 울산시 고려아연 정문 앞에서 경찰이 화물차 진입을 막는 화물연대 조합원들을 통제해 화물차를 들여보내고 있다. [뉴스1]

이런 메시지가 던져진 첫 신호탄은 화물연대의 집단 운송 거부 때였다. 이어지는 분석이다. “화물연대 집회 첫날 당시 울산에서 불법 행위자를 현장에서 곧바로 현행범으로 체포하고, 구속영장까지 신청했다. 이전 정부에선 볼 수 없던 집행과정이다. 이를 기화로 전국에서 불법 무관용 원칙 대응이 확산했다. 힘으로 밀어붙이고, 나중에 훈방되는 관행을 기대하기 어렵자 집회 참가자의 행동이 움츠러들었다. 사태 초기부터 일관된 대응이 집단행동의 장기화를 막았다.” 경찰은 당시 현장에서 연행한 78명에 대한 수사를 계속하고 있다. 비조합원을 대상으로 한 협박과 같은 신고된 법 위반에 대한 수사도 병행하고 있다. 민주노총의 노동자대회를 관리했던 서울 경찰청 관계자는 “현장에서 ‘직무 수행하는 맛이 난다’고 한다”라고 말했다. 그는 “경찰 입장에선 기대하던 것을 실행하고, 우려하던 것을 털어내고 있다”고 덧붙였다.

앞으로 노동계의 집단행동이 줄줄이 예정돼 있다. 민주노총은 9월 24일 전국 주요 도심에서 결의대회를 시작으로 10월 공공부문 비정규직 총파업, 11월 총궐기 대회, 12월 대국회 투쟁 등을 예고했다. 금속노조를 비롯한 산하 노조도 움직이고 있다. 한국노총은 11월 전국노동자대회를 연다. 한데 여기엔 숨겨진 암초가 있다. 지난해까지는 사업장의 근로조건과 관련되지 않으면 파업할 수 없었다. 이 때문에 민주노총이 총파업을 선언해도 참여 사업장이 많지 않았다. 이제는 다르다. 국제노동기구(ILO)핵심 협약이 비준되면서 정책 이슈로 파업할 수 있다. 기업으로선 회사 일도 아닌데 공장 가동을 멈춰야 하는 일방적 희생이 합법화된 셈이다. 경영계가 “공장만은 돌릴 수 있게 규제를 풀어달라”며 대항권 차원에서 대체근로 허용 등을 요구하는 이유다. 제도 개선이 없으면 산업현장의 혼란은 불가피하다.

무엇보다 모처럼 빛을 발하는 법과 원칙이 찻잔 속 태풍으로 끝나지 않으려면 법과 원칙 준수가 시민 의식으로 진화해야 한다. 그러려면 기업부터 변해야 한다. 어차피 쟁의행위는 영업활동 방해가 목적이다. 이걸 인정하고 손실을 감수하더라도 관행을 바로잡으려는 인내가 필요하다. 파업을 일찍 끝내려 파업보상금이라는 뒷돈을 주는 행위나 조금만 타결이 늦어져도 정부의 관리능력을 비판하며 정부에 기대어 자율 해결을 등한시하는 습관을 버려야 한다. 이런 습성이 전투적 노사관계의 선진화를 가로막는다.

인력을 비용으로만 따지는 것은 아닌지도 반성해야 한다. 예컨대 조선업종에선 인력난이 만성화했다. 그 원인이 낮은 임금이라는 사실을 경영계도 안다. 건설현장으로 숙련공이 빠져나가는 것은 국가적 손실이다. 대우조선해양에서 벌어지는 협력업체 근로자의 불법점거를 비난만 할 것이 아니라 지나치게 저임금으로 고용하는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념의 심리화를 막아야 한다. 진보 진영이 집권하면 노동계는 ‘봐 줄 것’, 경영계는 ‘기업 배척’이란 심리가 돋아나고, 보수정부에선 그 반대 현상이 나타난다. 이래선 곤란하다. ‘법과 원칙’은 일관되어야 하고, 시민의식으로 자리 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노사가 상대의 입장과 처지를 생각하지 않고 자기 논리에만 빠져서는 시민으로서의 자격을 스스로 걷어차는 것과 다를 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