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에 이어 7차 핵실험이 임박했다는 관측이 나오는 가운데 한국이 미국ㆍ일본과의 안보 스크럼을 단단히 짜는 모양새다. 미국은 한ㆍ미ㆍ일 삼각 협력을 인도ㆍ태평양 지역에서 중국 견제의 발판으로 삼으려 하고 있다. 10~12일 싱가포르에서 열린 제19회 아시아 안보회의(샹그릴라 대화)에서 뚜렷하게 나타난 흐름이다.
이종섭 국방부 장관은 12일 본회의 연설에서 “북한의 핵ㆍ미사일 대응을 위해 한ㆍ미ㆍ일 3국간, 안보협력을 강화한다”고 말했다. 이 장관은 “한ㆍ일 간에는 여러 현안이 남아 있다”면서도 “한ㆍ일간 안보협력 정상화는 물론, 한ㆍ미ㆍ일 3국간 안보협력 강화를 위해 일본과 진지한 대화를 나눌 의향이 있다”고 밝혔다.
앞서 이 장관은 전날인 11일 로이드 오스틴 미국 국방부 장관, 기시 노부오(岸信夫) 일본 방위상과 대북 공조 방안을 논의했다. 이들은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와 항구적인 평화정착을 달성하기 위한 3국 공동의 노력을 위해 긴밀히 협력하기로 약속했다.
구체적 방안으로 미사일 경보훈련과 탄도미사일 탐지ㆍ추적훈련을 정례적으로, 공개적으로 열기로 했다.
미사일 경보훈련은 한ㆍ미ㆍ일 3국의 함정에서 가상의 탄도미사일을 추적하는 훈련이다. 북한에서 발사한 탄도미사일을 한국이 먼저 탐지하면, 그 정보를 미국을 통해 일본에 공유하는 형식이다. 2018년 비핵화 협상과 한ㆍ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ㆍ지소미아) 파기 논란 이후 훈련 진행을 외부에 알리지 않았다.
탄도미사일 탐지ㆍ추적훈련은 미국이 격년제(짝수 연도)로 주최하는 다국적 해상훈련인 환태평양훈련(RIMPACㆍ림팩)이 끝난 뒤 실시한다. 탄두를 제거한 미사일을 실제 쏜 뒤 이를 탐지ㆍ추적하는 절차를 익히는 훈련이다.
3국 장관이 미사일 경보훈련, 탄도미사일 탐지ㆍ추적훈련을 거론한 이유는 북한에 경고 메시지를 발신하기 위해서다. 북한은 2017년 12월 3국의 미사일 경보훈련 직후 “위험천만한 불장난”이라고 비난했다.
국방부는 북한의 핵ㆍ미사일 고도화가 더 진전할 경우 일본과의 안보협력을 단계적으로 확대할 방침이다. 2018년 일본 해상 초계기 위협 비행 이후 멈췄던 양국간 대잠훈련, 대테러훈련, 인도적 재난훈련이 재개될 가능성이 나온다.
단 이 장관은 3국의 병력이 한곳에 모여 진행하는 연합훈련에 대해 “한ㆍ미 군사훈련과 한ㆍ미ㆍ일 군사훈련은 다르다”면서 “달리 접근해야 한다”고 훈련 수위에서 을 그었다.
이 장관은 같은 날 오스틴 장관과 따로 회담을 열고 지난달 21일 한ㆍ미 정상회담에서 합의한 한ㆍ미 확장억제전략협의체(EDSCG) 재가동, 한ㆍ미 확장억제수단운용연습(TTX) 개최, 미 전략자산의 조율되고 적시적인 전개, 연합훈련 규모의 확대 등을 다뤘다.
두 장관은 또 주한미군의 시설에 대해 안정되고 자유로운 접근이 상시전투 준비를 갖춘 연합방위태세 유지에 핵심적이라는 점에 주목했다고 국방부는 전했다. 이는 경북 성주 주한미군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ㆍ사드) 체계 기지에 대한 접근 보장이 중요하다는 뜻이다.
오스틴 장관은 한국 정부가 사드 기지 정상화에 적극적인 점에 감사를 표했다고 국방부 관계자가 밝혔다.
오스틴 장관은 본회의 연설에서 북한의 상습적인 도발과 미사일 시험발사를 언급하면서 “한ㆍ미ㆍ일은 안보협력을 심화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오스틴 장관은 또 “우리는 대만 인근에서 도발적이고 불안정한 군사 활동이 점증하는 것을 목격해왔다”며 “중국의 행동은 인도ㆍ태평양의 안보ㆍ안정 그리고 번영을 해치는 위협을 가하고 있다”고 중국을 강력히 비난했다.
그는 한ㆍ미 회담에서도 인도ㆍ태평양 지역에서의 현상 유지가 중요한데 이를 변경하려는 중국의 움직임이 강화되고 있다고 우려하면서, 중국이 규칙에 기반한 국제질서 구축에 동참할 수 있도록 한ㆍ미 공조를 강화하자고 제안했다고 국방부 관계자가 전했다.
이와 관련 한ㆍ미ㆍ일 장관은 역내 긴장을 높이는 어떠한 일방적인 행위에 대해서도 강력히 반대하며, 규범에 기초한 국제질서를 강조하고 항해ㆍ비행의 자유의 중요성을 거론했다. 이는 중국이 최근 국제 공역에서 캐나다ㆍ호주 초계기를 위협한 사건을 의미한다. 그동안 미국은 항해의 자유를 규범에 기초한 국제질서의 예시로 보여줬다.
오스틴 장관은 더 나아가 한ㆍ미 회담에서 한국이 우크라이나를 계속 지원해줘 이 장관에게 고맙다고 말했다고 미 국방부가 전했다. 그는 우크라이나가 현재 무기가 부족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고 한다.
윤석열 대통령이 이번 달 29~30일 나토(NATOㆍ북대서양조약기구) 정상회의에 참가하기에 앞서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 지원 등을 에둘러 요청하는 포석으로 보인다.
전반적으로 샹그릴라 대화를 계기로 북한ㆍ중국은 물론 러시아까지 염두에 둔 한ㆍ미ㆍ일 안보협력의 밑그림이 그려졌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 교수는 “미국은 한ㆍ미나 미ㆍ일과 같은 개별 동맹에서 벗어나 소규모 다자간 안보 협력체를 만들려고 한다. 그 바탕은 한ㆍ미ㆍ일 3국의 안보협력이라고 생각하고 있다”며 “한ㆍ미 동맹을 단기적으로만 바라보지 말고, 중ㆍ장기적으로 검토해야만 할 때”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