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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창호 생일인데 면목 없다" 윤창호법 앞장선 친구 한탄, 왜

중앙일보

입력

“다음 달 15일이 창호 생일이라 친구들이랑 보러 가기로 했는데…. 가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4년 전 음주운전 차량에 치여 숨진 고(故) 윤창호씨의 생일을 한 달여 앞두고 예지희(26)씨는 “창호 볼 면목이 없다”며 말끝을 흐렸다. 그는 음주운전자 처벌을 강화하는 이른바 ‘윤창호법’을 만드는 데 나섰던 친구 중 한 명이다. 그러나 먼저 생을 마감한 친구의 이름을 딴 법은 지난달 헌법재판소에서 두 번째 위헌 결정을 받았다. 헌재는 윤창호법 중 음주운전 또는 음주측정거부 재범에 대한 가중처벌 조항이 헌법에 위배된다고 판단했다.

지난 2018년 11월 11일 부산 해운대구 부산 국군병원에서 윤창호 씨의 영결식이 열렸다. 송봉근 기자

지난 2018년 11월 11일 부산 해운대구 부산 국군병원에서 윤창호 씨의 영결식이 열렸다. 송봉근 기자

“법 감정 부합하지만, 중형 면역 생겨”

지난달 26일 두 번째 위헌 결정이 나온 윤창호법은 음주운전 사망사고 가해자의 형량을 높이는 내용과 재범을 가중처벌하는 내용이 골자다. 헌재는 그중 음주운전 또는 음주측정거부를 반복한 사람을 기간 구분 없이 처벌하는 게 과도한 형벌이라고 봤다. 앞서 지난해 11월 음주운전 재범을 가중처벌하는 조항에 대해 내렸던 위헌 결정과 같은 취지다.

헌재는 다수 의견을 통해 “반복적 음주운전에 대한 강한 처벌이 일반 국민의 법 감정에 부합하는 면은 있다”면서도 “중한 형벌에 대한 면역성과 무감각이 생기게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형벌 강화가 음주운전 재범 방지라는 목적을 달성하는 데 실효성이 떨어진다고 본 것이다.

지난해 11월 6일 새벽 서울 영등포구 도로에서 경찰이 음주운전 단속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해 11월 6일 새벽 서울 영등포구 도로에서 경찰이 음주운전 단속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창호법 위헌 이후 재심 문의 쇄도

그러나, 법리에 근거해서 나온 헌재의 결정이 시민들의 법 감정과 괴리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실제로 그 파장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법조계에서 나온다. 교통사고 전문 정경일 변호사는 “위헌 소식을 접한 일반 시민들 입장에선 음주운전 상습범을 법원이 봐주기 시작했다고 오해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지난달 윤창호법 두 번째 위헌 결정이 나온 직후 서울 서초구의 한 법률사무소에는 하루 20통 이상의 문의 전화가 걸려왔다고 한다. 음주운전 재범으로 가중 처벌을 받은 이들의 재심 관련 문의 전화였다.

윤창호씨 친구 예씨도 “윤창호법 전체가 아니라 일부만 위헌 결정이 나온 건데 이걸 ‘술 마시고 운전해도 괜찮다’는 뜻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생길까 걱정된다”고 했다. 그는 “법의 허점을 노리고 악용하는 사람이 분명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 걱정은 애초에 친구의 한이라도 풀기 위해 윤창호법을 만들려고 했던 이유이기도 하다.

음주운전 사고로 숨진 윤창호씨의 친구인 이영광씨가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의 통과를 지켜보고 있다. 임현동 기자

음주운전 사고로 숨진 윤창호씨의 친구인 이영광씨가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의 통과를 지켜보고 있다. 임현동 기자

법리와 법 감정의 괴리…손 놓은 국회

이번 위헌 결정 이후 법리와 국민의 법 감정 사이에서 대안을 찾아야 할 국회가 제 역할을 하지 않았다는 질타도 나오고 있다. 윤해성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국회가 윤창호법을 발의할 때 기존 법리와의 정합성은 고려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법 감정만 앞세운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윤창호씨가 차에 치인 2018년 9월 25일 이후 관련 법안들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단 71일이었다. 법이 시행되자 윤창호씨의 아버지는 고인이 봉안된 대전현충원을 찾아 대표발의자 하태경 바른미래당(현 국민의힘) 의원과 친구 10명의 이름이 적힌 봉투에 법안을 담아 유골함 옆에 두기도 했다.

윤창호씨가 음주운전 차량에 치인 부산 해운대구 미포오거리 교차로 사고현장에서 윤창호 친구들과 하태경 의원, 유족 등이 국회를 통과한 윤창호법을 고인에게 바치는 행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창호씨가 음주운전 차량에 치인 부산 해운대구 미포오거리 교차로 사고현장에서 윤창호 친구들과 하태경 의원, 유족 등이 국회를 통과한 윤창호법을 고인에게 바치는 행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렇게 극적으로 통과된 윤창호법이 첫 위헌 결정을 받은 지난해 11월 이후 반년 넘는 시간이 흘렀다. 그러나, 행정안전위원회에 상정된 음주운전 재범 방지 관련 5개의 법안 중 단 하나도 소관위 심사를 마치지 못한 상태다. 예지희씨는 “4년 전 윤창호법을 만드는 데 걸렸던 시간보다 보완 입법에 걸리는 시간이 더 길어지고 있다. 아무것도 모르는 대학생들이 나섰을 때보다 법 개정이 더 늦어지는 게 답답할 따름이다”라고 토로했다.

윤창호법 대표발의자로 이름을 올렸던 하태경 의원은 지난 3일 중앙일보와 통화에서 “윤창호법을 처음 만들 때 대법원에서도 입법 취지를 공감해 위헌 소지에 대해 지적을 하지 않았다”며 “헌재의 보수적인 판단이 아쉽지만, 조속히 개정에 착수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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