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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CNN, 속보 배너 사라졌다"…보수 목소리 키우는 새 CEO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2019년 4월 언론 행사에 참석한 크리스 리히트 CNN CEO. AP=연합뉴스

2019년 4월 언론 행사에 참석한 크리스 리히트 CNN CEO. AP=연합뉴스

“CNN에서 속보 배너는 사라졌다. 정치 프로그램엔 보수적인 목소리를 (지금보다) 더 많이 내보내려고 하고, 제작자들은 극우·극좌파의 트위터를 무시하라는 요청을 받았다.”

크리스 리히트(51) CNN 신임 최고경영자(CEO)가 취임한 지 약 한 달, 뉴욕타임스(NYT)는 5일(현지시간) CNN의 변화를 이렇게 정리했다. “리히트가 제프 저커 (전 CNN CEO)로부터 물려받은 24시간 뉴스 네트워크에 자신의 흔적을 남기기 시작했다”면서다. NYT는 “‘리히트 독트린’은 저커 시대로부터의 변화”라고 평가했다.

‘경영 경험 전무’ 프로듀서 

위기의 CNN. AP=연합뉴스

위기의 CNN. AP=연합뉴스

리히트는 지난 4월 CNN을 인수한 워너브라더스 디스커버리의 데이비드 자슬라브 CEO의 측근으로, 저커의 갑작스러운 사임으로 수개월 간 공석이었던 CEO에 지난달 취임했다. 하지만 방송 프로듀서였던 그가 이전에 이끌었던 제작진은 200여명. 사실상 경영 경험이 전무하다. 그런 그가 직원 4000명을 거느린 위기의 CNN을 어떻게 구해낼지 업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CNN은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시절 편향성 논란에 이어 시청률 하락과 잇따른 스캔들로 곤욕을 치렀다. 지난해 12월 스타 앵커 크리스 쿠오모가 형 앤드루 쿠오모 전 뉴욕시장의 성추행 스캔들을 무마하려다 해고됐고, 저커 전 CEO는 쿠오모 사건 조사 과정에서 앨리슨 골러스트(49) CNN 수석 부사장과의 스캔들이 불거져 2월 갑자기 사임했다. 여기에 CNN이 지난 3월 3억 달러(약 3679억원)를 들여 시작한 뉴스 스트리밍 서비스 ‘CNN플러스’는 한 달 만에 중단됐다. 리히트는 첫 공식 연설에서 수백명 해고 가능성까지 밝혔다.

리히트는 취임 초기부터 확실한 변화를 예고했다. 그는 취임 첫날 “케이블 뉴스의 전통적인 철학에 도전하겠다”고 밝혔다. 특히 편파 보도 논란을 의식한 듯 지난달 광고주들과 만난 자리에서 “극단주의가 케이블 뉴스를 지배하는 시기에 우리는 다른 방향을 모색할 것”이라고 했고, 최근 프로듀서와 기자들과 만나서는 “관점의 다양성을 확보하기 위해 보수주의자들의 정치쇼 출연을 확대하고 싶다”고 했다.

“극단주의 지배…다른 방향 갈 것”

지난 4월 CNN 최고경영자(CEO)로 내정돼 5월 취임한 크리스 리히트. [사진 CNN]

지난 4월 CNN 최고경영자(CEO)로 내정돼 5월 취임한 크리스 리히트. [사진 CNN]

익명의 CNN 직원들에 따르면, 리히트는 아침 방송을 전면 개편하고 고정 출연자 명단을 확정할 예정이다. 아침 방송은 ‘CBS 디스 모닝’ 총괄 프로듀서로 동시간대 1위 프로그램을 만든 그의 전문 분야이기도 하다. ‘선데이 나이트’ 라인업을 개편해 폭스뉴스 앵커 출신 크리스 월러스의 토크쇼와 새로운 장편 뉴스 매거진 프로그램 등도 준비 중이다. 특히 세부 사항을 일일이 지시했던 저커와는 달리 리히트는 “실수할 때가 있더라도 담당자들이 직접 결정하는 것을 선호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CNN에 자주 등장했던 속보 배너 역시 대폭 줄이기로 했다. NYT가 입수한 CNN의 새로운 표준가이드에 따르면, ‘속보’는 “사람들이 하던 일을 멈추고 뉴스를 보도록” 하는 내용이어야 하고, 화면에 한 시간 이상 노출될 수 없다. 다만 학교 총기 사건이나 대형 재해, 세계 지도자의 죽음 등과 같은 주제는 예외다. 리히트는 “(속보의) 영향력은 시청자들에게 사라졌다”며 “(CNN은) 시청자를 놀라게 하는 것보단 정보전달에 집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저널리즘만큼이나 리히트에겐 경영자로서 수익성 확보도 중요한 과제다. 그는 자신의 부족한 사업 경험을 도울 전략 및 비즈니스 책임자로 건설업체 ‘레나’ CEO를 지낸 오랜 친구 크리스 말린을 영입했다. 말린은 소비자 전문 사이트 ‘CNN 언더스코어드’를 확장하고 중국 등 CNN 브랜드 수출을 확대하는 등 수익원 창출에 나설 예정이다. 리히트는 “CNN이 공정한 뉴스로 명성을 회복하면 블루칩 광고주 유치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리히트는 속도감보다는 내실을 강조했다. 그는 직원들에게 “내 결정 속도는 사람들이 원하는 것보다 느릴 것”이라며 “이 조직이 (저커의 사임 이후) 지난 4개월간 엄청난 변화를 겪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운영의 모든 부분을 살피면서 천천히 신중하게 접근하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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