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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도 혼쭐냈던 폭스뉴스 '이단아' 앵커, 돌연 CNN으로

중앙일보

입력

지난해 9월 29일 미국 대선후보 TV토론회 진행자를 맡은 크리스 월러스. 로이터=연합뉴스

지난해 9월 29일 미국 대선후보 TV토론회 진행자를 맡은 크리스 월러스. 로이터=연합뉴스

“제겐 오늘이 마지막 방송이었습니다. 이런 말씀을 드리다니 슬프지만, 앞으로 또 뵙겠습니다.” 미국의 대표적인 보수 방송사 폭스뉴스의 간판 앵커 크리스 월러스(74)가 12일(현지시간) 돌연 사임을 선언했다. 18년간 진행해온 인터뷰 방송 ‘폭스뉴스 선데이’를 마치면서다. 그는 향후 계획에 대해선 “(전문 분야인) 정치를 넘어 관심이 있는 다른 분야를 시도해보고 싶다. 새로운 모험을 할 준비가 됐다”고만 했다.

그의 행보가 밝혀진 건 그로부터 2시간 후였다. CNN은 내년 초 새롭게 선보이는 스트리밍 서비스 CNN 플러스에서 월러스가 새로운 인터뷰 프로그램을 진행한다고 발표했다. 이를 두고 워싱턴포스트는 “월러스의 퇴사는 CNN의 쿠데타이자 폭스엔 엄청난 타격”이라고 평했다. “월러스는 터커 칼슨이나 션 해니티 등을 중심으로 한 극우 방송으로 비난을 받았던 폭스뉴스 안에서 팩트에 충실하면서도 비판적인 태도로 언론의 진실성을 지켜낸 폭스의 간판”이라면서다.

트럼프도 혼쭐낸 폭스의 이단아

지난해 9월 29일 미국 대선후보 TV 토론회 진행자로 나선 크리스 월러스. EPA=연합뉴스

지난해 9월 29일 미국 대선후보 TV 토론회 진행자로 나선 크리스 월러스. EPA=연합뉴스

월러스는 보수 편향적인 폭스 내에서 중도적 입장을 견지해 ‘폭스의 이단아’로도 통한다. 그는 “18년 전 폭스의 선배들은 내가 초대한 손님이나 질문에 개입하지 않겠다고 약속했고, 그 약속을 지켰다”며 “(덕분에) 자유롭게 능력이 닿는 대로 진실을 보도하고 미국 지도자들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었다. 정말 멋진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폭스는 성명에서 “우리의 저널리즘과 크리스 월러스와 18년간 함께 했던 팀이 매우 자랑스럽다”고 밝혔다. 월러스와 가까운 폭스뉴스 인사는 “많은 동료가 월러스의 사임에 큰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월러스는 차분하면서도 팩트에 충실한 매서운 인터뷰로 명성이 높다. 그가 최근 가장 주목받은 건 지난해 7월 트럼프 당시 대통령과의 인터뷰였다.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신규 확진자가 높은 이유에 대해 “검사를 많이 해서”라고 하자, “검사는 37% 늘었는데 확진자 수는 194% 늘었다”고 반박하는가 하면, “미국은 전 세계에서 치명률이 가장 낮은 나라”라는 트럼프 대통령의 주장엔 “미국이 세계 7위”라며 ‘팩트 폭격’에 나서기도 했다.

푸틴에 ‘野 인사 사망’ 물어 에미상

지난해 9월 29일 크리스 월러스(가운데)가 진행하는 미국 대선후보 TV토론회에 참석한 도널드 트럼프(왼쪽) 후보와 조 바이든 후보. EPA=연합뉴스

지난해 9월 29일 크리스 월러스(가운데)가 진행하는 미국 대선후보 TV토론회에 참석한 도널드 트럼프(왼쪽) 후보와 조 바이든 후보. EPA=연합뉴스

그의 아버지는 CBS 탐사보도 프로그램 ‘60분(60 Minutes)’의 전설적인 진행자였던 마이크 월러스다. 그러나 본인은 새아버지 빌 레오나드의 영향을 더 많이 받았다고 한다. 새아버지 역시 기자 출신으로 CBS 회장까지 올랐던 인물이다. 그래서인지 그는 하버드대를 졸업한 뒤 예일대 로스쿨에 합격하고도 보스턴글로브 기자가 됐다. 전국 방송에 데뷔한 건 1975년 NBC 방송에 입사하면서다. 백악관 출입기자와 메인뉴스 앵커를 지낸 그는 ABC 방송을 거쳐 2003년 폭스뉴스에 둥지를 틀었다.

폭스에선 5번의 대선을 취재하고 지난해 대선후보였던 조 바이든 대통령을 제외하고 당시 현직에 있던 모든 대통령을 인터뷰했다. 폭스뉴스 앵커 최초로 2016년 미국 대선후보 3차 TV토론 사회자로 선정돼 매끄러운 진행으로 당시 “토론의 승자는 크리스 월러스”라는 이야기를 들을 정도로 호평을 받았고 지난해 대선후보 TV토론도 진행했다. 2018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의 단독 인터뷰에선 야당 인사 사망 등 민감한 문제를 거침없이 물어 폭스 최초로 뉴스 및 다큐멘터리 에미상을 받았다. 당시 미국에서 가장 믿을 수 있는 TV 앵커로도 꼽혔다.

그는 폭스에서도 논란이 많은 프로그램에 대해 내부적으로는 쓴소리를 했지만, 공식적으로 입장을 표명한 적은 없다. 지난달 NPR에 따르면, 월리스는 지난해 1월 6일 미 의회 난입 폭동 사건을 미화한 칼슨의 다큐 시리즈가 부적절하다는 의견을 경영진에 피력했다고 한다. 그는 당시 파이낸셜타임스(FT)와의 인터뷰에서 이와 관련, “나는 내 프로그램에 대해서만 책임이 있고 시청자와 진실에 대해 엄청난 책임감을 느낀다”며 “내가 왜 폭스에 갖는 우려를 FT 독자와 나누겠나”라며 즉답을 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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