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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년 맺힌 한 푼 웨일스, 전쟁 속 투혼 멈춘 우크라이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0면

베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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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테랑 공격수 개러스 베일(33·레알 마드리드)이 조국 웨일스를 64년 만에 월드컵 본선으로 이끌었다.

웨일스는 6일 영국 카디프의 카디프시티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2년 카타르 월드컵 유럽 예선 플레이오프 결승에서 우크라이나를 1-0으로 꺾었다.

웨일스의 ‘캡틴’ 베일은 이날 스리톱 공격수로 선발 출전했다. 전반 34분 프리킥 찬스에서 베일이 강하고 빠른 왼발 킥을 올렸다. 공은 우크라이나 주장 안드리 야르몰렌코(웨스트햄)의 머리를 맞고 굴절돼 골문으로 빨려 들어갔다. 야르몰렌코가 헤딩으로 걷어 낸다는 게 자책골이자 결승골이 됐다.

이날 승리로 웨일스는 잉글랜드 ,이란, 미국이 속한 카타르월드컵 본선 B조에 막차로 합류했다. 베일은 또 2020~21시즌 토트넘에서 한솥밥을 먹었던 잉글랜드의 해리 케인과 월드컵 무대에서 맞대결을 펼치게 됐다. 당시 베일은 케인-손흥민과 함께 토트넘의 ‘KBS 라인’으로 불리며 맹활약했다.

웨일스가 월드컵 본선 무대를 밟은 건 1958년 이후 64년 만이다. 웨일스는 1958년 스웨덴 월드컵 8강전에서 브라질의 펠레에게 골을 내줘 아깝게 졌다. 웨일스가 월드컵 본선 무대에 진출하기까지 걸린 ‘64년’의 시간은 한 나라의 월드컵 본선 도전으로는 최장 기록이다. 웨일스 다음으로 오래 걸린 기록은 노르웨이와 이집트의 56년이다.

웨일스의 월드컵 본선 진출은 ‘레전드’ 라이언 긱스와 이안 러시도 못 이뤘던 업적이다. ‘웨일스 황금세대’로 불리는 베일과 애런 램지(레인저스), 벤 데이비스(토트넘), 조 앨런(스토크시티) 등이 큰일을 해냈다. 특히 베일을 향해선 ‘웨일스 역사상 최고 선수’란 찬사가 쏟아졌다. 축구보다 취미인 골프를 더 좋아한다는 비아냥도 들었던 베일은 결정적인 순간에 해결사의 임무를 완벽히 수행했다. 베일은 경기 후 스카이스포츠와의 인터뷰에서 “웨일스 축구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성과다. 말로 표현할 수 없다”며 “지난 3~4주 동안 허리 통증 때문에 많은 준비를 하지 못했지만, 끝까지 최선을 다했다”고 말했다. “오늘 승리로 은퇴가 미뤄진 건 아닌가”라는 질문에는 “살짝”이라며 미소를 지었다.

베일은 스페인 레알 마드리드에서 프리메라리가 3회, 유럽 챔피언스리그 5회 우승을 경험했다. 하지만 올 시즌은 전력 외로 분류됐다. 올 시즌을 끝으로 레알 마드리드와 계약이 만료되는 베일은 프리미어리그 카디프시티, 뉴캐슬 입단설이 나오고 있다.

우크라이나는 이날 볼 점유율에서 68대32, 슈팅 수에선 22대10(유효슈팅 9대3)으로 앞섰다. 하지만 9세이브를 기록한 웨일스 골키퍼 웨인 헤네시(번리)의 선방에 번번이 막혔다. 후반 36분 아르템 도브비크(미트윌란)의 헤딩 슛도 헤네시가 동물적인 감각으로 막아냈다.

우크라이나 축구대표팀은 지난 2월 러시아의 침공으로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는 자국민을 위해 최선을 다했지만, 월드컵 본선 진출에는 실패했다. 이날 우크라이나의 라커룸에는 전선의 병사들이 응원 문구를 빼곡히 적어넣은 국기가 걸려있었다. 필승을 다짐했지만, 마지막 고비를 넘지 못했다.

우크라이나 공격수 진첸코는 “우리는 모든 걸 쏟아부었다. 불행히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했지만, 축구선수로서 우리는 조국을 대표해 계속 싸울 것이다. 모두가 평화롭게 살아가야 하고, 전쟁은 멈춰야 한다”고 말했다.

AFP통신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 펍에서 경기를 지켜본 한 팬은 “최선을 다한 선수들을 비난할 수 없다”고 옹호했다. 우크라이나 영웅 안드리 셰브첸코도 “대표팀이 자랑스럽다. 인생의 모든 것을 결과로만 따질 수 없다. 다음 승리를 위해 나아가자”며 위로의 뜻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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