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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밥도 만원" 런치플레이션..."나가면 10만원" 소개팅도 포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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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3일 서울 시내 한 음식점이 붙은 인상된 음식 가격표. 연합뉴스

3일 서울 시내 한 음식점이 붙은 인상된 음식 가격표. 연합뉴스

2년 차 직장인 이모(29)씨는 지난 4월부터 재테크와 적금에 넣었던 금액을 120만원에서 약 80만원으로 줄였다. 치솟는 물가를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씨는 “자주 다니던 식당들이 최근 전부 1000원에서 2000원 정도 가격을 올렸고, 기름값은 한 달에 10만원이 더 들어간다”며 “일주일이 다르게 올라가는 물가에 적금 계획도 수정했다. 미래를 저당 잡힌 기분이다”고 했다.

런치플레이션 신조어… 가성비 국밥도 옛말

최근 고물가가 이어지며 직장인들 지갑 사정에 비상이 걸렸다. 지난 3일 통계청이 발표한 5월 소비자물가 동향을 보면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전년 동월 대비 5.4%를 기록했다. 특히 외식 물가는 7.4%가 오르며, 최근 직장인들 사이에서 회자되는 ‘런치플레이션(런치+인플레이션)’ 우려가 현실이 되고 있다. 직장인들은 “최근 가격을 안 올린 식당을 찾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5년 차 서울 여의도 금융권 직장인인 30대 김모씨는 “안 그래도 밥값 비싼 여의도에서 이렇게 가격이 인상됐다고 느낀 건 처음”이라며 “여의도에서 만원이 넘지 않는 식사를 찾기가 힘들다. 짜장면 한 그릇만 먹어도 만원이 넘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했다. 그는 “점심 저녁을 다 사 먹는 직장인 입장에선 임금이 오르는 것에 비해 지출비용이 급격히 늘어나다 보니 실질 급여는 주는 느낌이다”고 했다.

서울 광화문 인근 직장에 다니는 권성진(29)씨는 “최근 점심을 먹을 때면 달라진 가격에 놀랄 때가 많다. 작년까지만 해도 8000원대이던 국밥집이 최근 만원으로 올랐다”며 “이제 가성비 국밥도 옛말이다”고 토로했다.

5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5% 선을 뚫고 근 14년 만에 최고치인 5.4%까지 치솟았다. 3일 통계청 소비자물가 동향에 따르면 5월 소비자물가지수는 107.56(2020=100)으로 작년 같은 달보다 5.4% 상승했다. 연합뉴스

5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5% 선을 뚫고 근 14년 만에 최고치인 5.4%까지 치솟았다. 3일 통계청 소비자물가 동향에 따르면 5월 소비자물가지수는 107.56(2020=100)으로 작년 같은 달보다 5.4% 상승했다. 연합뉴스

약속·소개팅 줄이고, 부업하고

상황이 이렇자 사회 초년생들은 각자의 방법으로 고물가에 대비하고 있다. 일부 직장인은 코로나19 이후 늘어났던 약속을 줄이는가 하면 부업을 시작한 직장인도 있다.

3년 차 직장인 전모(30)씨는 지난달부터 부업으로 ‘대필작가’를 시작했다. 기존 임금만으로는 저축을 유지하면서 생활비를 감당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전씨는 “물가 인상에다가 코로나19 이후 사적 약속이 늘어나다 보니 기존 소득만으로는 생활 유지가 어려워 부업을 알아보게 됐다”고 말했다.

약속을 줄이는 직장인도 있다. 권성진씨는 “최근 약속을 일주일에 3~4번에서 2번 빈도로 줄였다”면서 “만나더라도 3차까지 갈 약속을 2차 정도로 줄여 꼭 대중교통을 타고 귀가하는 편이다”고 했다. 20대 직장인 신모씨는 “코로나19가 풀리면서 잡았던 소개팅을 많이 줄이고 있다. 이전까지만 해도 ‘일단 만나보자’라는 생각이었는데, 한 번에 10만원은 나가다 보니 정말 괜찮을 때만 나가고 있다”고 했다.

점주들도 “20년 장사 인생 처음”

치솟는 물가에 허리띠를 졸라매는 직장인이지만, 식당을 운영하는 점주들도 가격 인상은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6일 기자가 다녀온 여의도 식당 5곳 모두 적게는 500원에서 많게는 5000원까지 가격이 올랐지만, 이들은 대부분 오른 식자재 값을 반영하지 못했다고 입을 모았다.

여의도에서 20년 이상 장사 중인 김진형(52)씨는 “밥값에 사람들이 가장 예민한 걸 알지만, 10년 만에 가격을 올렸다. 모든 식자재 값과 인건비가 이렇게 오른 건 장사를 시작하고 처음이다”면서 “이마저도 오른 원가를 다 반영하지 못했다”고 했다.

여의도에서 국밥집을 운영하는 한 점주도 “콩나물은 2000원이 올랐고, 김치는 1만2000원에서 1만6000원이 됐다”면서 “국밥 만 원이 주는 부담감을 알면서도 2년 만에 9000원에서 만 원으로 올리게 됐다”고 했다.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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