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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중앙] 옛 문인처럼 전각 새겼죠, 사인 대신 폼 나게 이름 찍어요

중앙일보

입력

서예나 동양화 같은 예술 작품부터 통장·서류 등에는 흔히 도장이 찍혀있습니다. 사인(Signature)과 함께 자신을 나타내는 도장은 인장이라고도 하는데, 과거에도 현재에도 많이 쓰이고 있죠. 도장 중에서도 특히 예술로 나아간 분야를 전각(篆刻)이라고 해요. 나무·돌·금·옥·뼈·수정 등에 인장을 새기는 일, 또는 그런 글자를 말하죠. 예로부터 한자 서체 중 전서(篆書)를 주로 사용한 것에서 유래합니다.

어라연전각연구소·체험관에 전시된 예술 작품과 전각도장들. 전각은 시·서·화 등 작품을 완성한 뒤 자신의 것임을 나타낼 때 사용하기도 한다.

어라연전각연구소·체험관에 전시된 예술 작품과 전각도장들. 전각은 시·서·화 등 작품을 완성한 뒤 자신의 것임을 나타낼 때 사용하기도 한다.

전각은 실용·예술적인 요소를 모두 지니고 오랜 시간 발전해왔죠. 이에 대해 자세히 알고, 자신을 드러내는 시그니처가 될 수제 전각도장을 만들어보기 위해 문시윤·배가은 학생모델이 어라연전각연구소·체험관(서울 종로구 인사동)을 방문했어요. 한국서예문화학회·한국서예비평학회·동양예술학회 이사도 겸임하는 김현숙 원장이 소중 학생기자단을 맞이했죠.

전각은 과거 어떻게 쓰였을까

“전각의 종류는 어떻게 나눌 수 있나요?” 가은 학생모델이 먼저 질문했죠. 전각은 사용자·형태·내용·쓰임에 따라 새(璽)·보(寶)·인장(印章)·인신(印信)·인감(印鑑)·도장(圖章)·도서(圖書)·낙관(落款) 등 여러 가지로 나뉩니다. 특히 일반·관청에서 사용하는 것을 인장이라고 했는데, 인장은 보통 가지고 있는 사람이나 기관의 신분을 증명하는 용도죠.

전각은 재료에 따라 다양한 종류로 나뉜다. 특히 돌이 재료인 경우 석인(石印)이라고 하는데, 흔히 보는 네모난 모양이 아닌 자연의 돌 모양을 살려 개성 있게 만들 수 있다.

전각은 재료에 따라 다양한 종류로 나뉜다. 특히 돌이 재료인 경우 석인(石印)이라고 하는데, 흔히 보는 네모난 모양이 아닌 자연의 돌 모양을 살려 개성 있게 만들 수 있다.

“재료가 옥이면 옥인(玉印), 돌이면 석인(石印), 나무면 목인(木印)이라고 해요. 고사성어·명언 등 좋은 글귀가 새겨졌으면 사구인(詞句印), 그림(상형문자)이 새겨졌으면 초형인(肖形印)이라고 부르죠. 형태에 따라 글자가 움푹 들어가 있으면 음각인(凹·백문인), 튀어나와 있으면 양각인(凸·주문인), 음각과 양각이 같이 있는 음양각인(주백문상간인)이라고 해요. 쓰임에 따라선 본인의 이름을 새긴 성명인(姓名印), 호를 새긴 아호인(雅號印), 책에 찍는 장서인(藏書印) 등이 있어요.”
“오래전부터 전각의 역사가 시작됐는데, 지역마다 특징이 달랐나요?” 시윤 학생모델이 궁금해했죠. “전각의 역사는 고대 유물을 통해 알 수 있어요. 초기 전각은 전 세계 여러 지역에서 인장 형태의 유물로 발견됐죠. 서양은 대표적으로 BC 5000년경 고대 메소포타미아 수메르인들의 원통형 인장, BC 2000년경 고대 이집트에서 사용된 황금충(黃金蟲·황금풍뎅이) 모양의 스카라브 인장이 있는데, 주로 그림 형태의 문양이 새겨졌어요. 동양으로 오면 BC 1600년경 중국 상(은)나라 수도 은허에서 출토된 인장이 있습니다.” 서양과 동양 전각의 공통된 특징은 권력이나 재물을 증명하는 도구로 자신의 신분을 표시하는 용도로 사용됐다는 것, 사실을 증명하기 위한 믿음의 증표로 쓰였다는 것입니다.

음각·양각·음양각인 작품들(위 사진). 움푹 들어가거나 튀어나온 곳에 채색할 수도 있다.

음각·양각·음양각인 작품들(위 사진). 움푹 들어가거나 튀어나온 곳에 채색할 수도 있다.

우리나라 전각의 기원은 단군 신화에 나와요. 고려 인종 23년(1145년)에 김부식이 편찬한 『삼국사기(三國史記)』에는 여러 사료가 기록돼 있는데요. 그중 현재 전해지지 않는 한국의 고대 역사서인 『고기(古記)』에 ‘환국의 아들 환웅에게 천부인(天符印) 세 개를 주었다’는 내용이 있죠. 천부인은 풍백(風伯)·우사(雨師)·운사(雲師)의 삼신(三神)을 거느릴 수 있는 신령스러운 인장입니다. 또 삼국 시대 이전 낙랑(BC 108~AD 313)의 고분에서 출토된 인장 유물도 있어요. 백제·신라를 거치며 인장 형태가 다양해졌고, 고려 시대에는 왕이 사용하는 국새, 관직에 사용하는 관인, 개인이 사용하는 사인 등으로 구분됩니다. 조선 시대에는 문인사대부들이 직접 전각을 새기면서 문인 전각이 형성됐죠. 그러면서 서예·회화 작품에 어울리는 예술이자 독특한 작품으로 나타나게 됐어요. “현대로 넘어오면 전각은 예술 작품뿐 아니라 수제도장 등 문화 상품으로 개발한다는 점에서 범위가 더 확대됐죠.”

고대 전각의 형태는

BC 3000년경 고대 메소포타미아 아카드 제국의 원통형 인장. 프랑스국립박물관연합(RMN)

BC 3000년경 고대 메소포타미아 아카드 제국의 원통형 인장. 프랑스국립박물관연합(RMN)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인장은 돌·점토·조개껍데기 등을 재료로 그림이나 문자를 새겨 천이나 점토에 찍었다고 전해진다.

BC 2000년경 이집트 스카라브 인장. 세계박물관

BC 2000년경 이집트 스카라브 인장. 세계박물관

고대 이집트인들은 소똥을 둥글게 뭉쳐 다리로 굴리고 다니는 풍뎅이를 태양을 운반하는 신적인 존재로 인식했다.

고대 중국 상나라 인장.

고대 중국 상나라 인장.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인장은 상나라의 은허에서 출토된 정사각형과 직사각형 새인(왕의 인장)으로 전해진다.

낙랑 시대 봉니.국립중앙박물관

낙랑 시대 봉니.국립중앙박물관

평안남도에서 출토된 낙랑 시대에 관인 용도로 사용한 봉니(封泥·문서를 봉할 때 사용하는 진흙 덩어리).

나만의 수제 전각도장 만들기

우리나라에서 개발한 수제도장은 도장 옆면에 문자나 그림을 새기고 채색해 아름답게 꾸민 것을 말합니다. 나만의 방식으로 자유롭게 만들 수 있어 자신의 개성을 나타낼 수도 있죠. 도장, 즉 인장은 꼭대기에 조각된 부분인 인뉴(印鈕), 몸체 부분인 인신(印身), 아랫부분으로 문자나 그림을 새겨 찍게 만든 인면(印面)으로 구성됩니다. 소중 학생기자단은 인면에 자신의 이름을 새겨 음각도장을 만들어보기로 했어요.

소중 학생기자단이 김현숙(오른쪽) 원장의 안내를 받아 수제도장의 재료가 되는 돌을 고르고 있다. 옆면에 새겨진 문자나 그림을 주의 깊게 살폈다.

소중 학생기자단이 김현숙(오른쪽) 원장의 안내를 받아 수제도장의 재료가 되는 돌을 고르고 있다. 옆면에 새겨진 문자나 그림을 주의 깊게 살폈다.

이를 위해 인면을 깎을 전각도, 시안을 만들 연필·볼펜·지우개, 디자인한 이름을 옮겨 그릴 때 사용하는 트레이싱지(투사지)·빨간색 먹지·투명지, 손을 보호하는 장갑, 이름을 새길 때 도장을 고정하는 인상, 도장을 찍기 위한 재료인 인주(印朱)가 준비됐죠. 두 사람은 김 원장을 따라 옆면에 그림이 새겨진 도장을 골랐습니다.

소중 학생기자단이 다양한 시안을 참고해 돌에 새길 자신의 이름을 디자인했다.

소중 학생기자단이 다양한 시안을 참고해 돌에 새길 자신의 이름을 디자인했다.

김 원장이 준비한 종이엔 완성작품의 예와 이름을 디자인할 빈칸이 있었어요. 집에서 할 때는 깎을 도장의 인면을 종이에 대고 테두리를 그려 칸을 만들면 돼요. “먼저 연필로 빈칸에 디자인할 거예요. 네모 칸이 꽉 차게 이름을 써 보세요. 작은 그림을 넣어도 되고, 영어 이니셜로 해도 상관없어요. 잘못 썼으면 지우개로 지워 다시 쓰면 돼요.” 각자 이름 ‘시윤’과 ‘가은’을 자신만의 스타일로 쓰고 하트 모양을 넣었죠.

배가은(왼쪽)·문시윤 학생모델이 전각도를 이용해 인면에 이름을 새겼다.

배가은(왼쪽)·문시윤 학생모델이 전각도를 이용해 인면에 이름을 새겼다.

종이에 디자인을 마친 뒤엔 트레이싱지를 대고 따라 그리는데요. 시윤 학생모델이 “트레이싱지는 수제도장을 만들 때 어떤 용도로 사용되나요?”라고 물었죠. “반투명한 트레이싱지는 디자인한 이름을 제대로 옮겨 그렸는지 확인할 수 있게 해요.” 그다음, 인면을 위를 향하게 해서 인상에 도장을 고정시킵니다. “인면에 순서대로 먹지와 투명지를 겹쳐서 놓고, 디자인을 옮겨둔 트레이싱지를 올려 볼펜으로 따라 그려줘요. 이때, 트레이싱지를 뒤집어 이름이 거꾸로 나오게 해야 해요. 그래야 도장을 찍을 때 제대로 이름이 나옵니다.”

돌을 고정하는 인상을 사용하면 흔들림 없이 새길 수 있다.

돌을 고정하는 인상을 사용하면 흔들림 없이 새길 수 있다.

음각·양각 각법의 차이는

인장을 새기는 각법에는 음각과 양각이 있어요. 글자를 파낸 것을 음각인이라고 하며, 인주를 묻혀 찍을 때 글씨가 하얗게 나와 백문인(白文印)이라고도 합니다. 반대로 바탕을 파내 글자가 튀어나와 있으면 양각인이며, 이 경우 글자가 붉게 찍혀 주문인(朱文印)이라고 하죠. 흔히 우리의 이름을 새긴 것을 도장이라고 말하지만, 정확하게 하면 성과 이름을 다 새긴 성명인이에요. 옛사람들은 본명 대신 허물없이 부르기 위해 호를 지었는데, 호를 새긴 것은 아호인이죠. 성명인에는 백문인이, 아호인에는 주문인이 주로 쓰였습니다.

조선 후기 학자인 정약용의 『다산심정(茶山審正)』 음각인(백문인·왼쪽)과 『다산독본(茶山讀本)』 양각인(주문인). 국립고궁박물관

조선 후기 학자인 정약용의 『다산심정(茶山審正)』 음각인(백문인·왼쪽)과 『다산독본(茶山讀本)』 양각인(주문인). 국립고궁박물관

3·1운동 민족대표 33인 중 한 명인 독립운동가 위창 오세창의 『덕피생민(德被生民)』에 쓰인 성명인(오세창인·吳世昌印·왼쪽)과 아호인(위창·葦滄).

3·1운동 민족대표 33인 중 한 명인 독립운동가 위창 오세창의 『덕피생민(德被生民)』에 쓰인 성명인(오세창인·吳世昌印·왼쪽)과 아호인(위창·葦滄).

시윤·가은 학생모델은 인면에 이름을 그려 넣기 시작했어요. 꾹꾹 눌러 그리자 먹지를 통해 인면에 이름이 잘 써졌죠. 전각도로 이름을 새길 차례, 두 사람은 안전을 위해 장갑을 끼었습니다. 전각도를 이용해 이름 선을 따라 파고, 하트 모양은 테두리부터 천천히 안쪽까지 새겨주면 돼요. 새긴 선이 인면의 다른 부분과 잘 구분되면, 더욱 깊고 넓게 파내 도장이 뚜렷하게 찍히도록 합니다. “전각도로 긁어낼 때 사각사각 소리가 나니까 기분이 좋고, 스트레스가 없어지는 거 같아요.” 두 사람 모두 즐거운 표정이었죠.

배가은(왼쪽)·문시윤 학생모델이 어라연전각연구소·체험관에서 나만의 수제 전각도장을 만들었다.

배가은(왼쪽)·문시윤 학생모델이 어라연전각연구소·체험관에서 나만의 수제 전각도장을 만들었다.

완성된 수제도장을 빈 종이에 찍어보기로 했어요. 가은 학생모델은 인주를 인면에 톡톡 묻힌 다음, 종이에 꾹 눌러 찍더니 “제 이름하고 하트 모양 그림이 정말 예쁘게 찍혔어요”라며 놀라워했죠. 시윤 학생모델도 만족했는지 도장을 여러 번 찍어봤어요. 김 원장은 “도장은 일상생활에서 사용할 수 있고, 다른 사람에게 의미 있는 선물로 줄 수 있어요”라며 여러 색 도장 케이스를 내밀었죠. 보라색을 선택한 두 학생모델은 “전각이라고 해서 어렵다고 느꼈는데, 이제 저만의 도장이 생겨 기뻐요. 앞으로 사인 대신 도장을 사용해 볼 거예요”라고 입을 모았습니다.

문시윤·배가은 학생모델이 어라연전각연구소·체험관에서 만든 수제 전각도장.

문시윤·배가은 학생모델이 어라연전각연구소·체험관에서 만든 수제 전각도장.

학생기자단 취재 후기

취재 전까지 전각은 제게 낯선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직접 해보니 정말 흥미롭고 멋진 체험이었죠. 전각의 역사와 예술성을 알 기회가 됐고, 여러 가지 궁금한 점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도장에 이름을 쓰는 것도 어려웠지만, 완성된 것을 보니 꽤 멋진 나만의 도장이 만들어져 신기하고 뿌듯했어요. 이번 취재도 정말 소중하고 잊지 못할 경험이 됐습니다. 소년중앙 독자 여러분도 자신의 이름을 직접 디자인하고 새겨서 개성 있는 도장을 만들어 보세요. 참 멋진 체험이 될 것입니다.
문시윤(서울 상명초 5) 학생모델

이번 취재를 통해 전각에 대해서 처음 알게 됐고, 저만의 도장도 처음 가져봤어요. 전각도장 만들기는 복잡하고 어려울 줄 알았지만, 생각보다 간단하고 쉬웠습니다. 도장 글씨를 뒤집어서 인면에 써야 한다는 점은 좀 헷갈렸어요. 김현숙 선생님께서 몸소 시범도 보여주시고, 설명도 잘해주셔서 더 재밌게 할 수 있었어요. 만약 다음에 또 전각도장을 만들게 된다면, 어려운 모양으로 도장을 만들 거예요!
배가은(서울 중대초 4) 학생모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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