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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중앙] 판타지 속 판타지를 찾아서 53화. 모험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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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 아니라고 얕보지 마” 모험가의 존재 이유는

오랜 옛날, 판타지 세계의 어딘가에 한 마을이 있었습니다. 농부와 상인, 장인과 광부들이 모여 살아가는 그곳은 크진 않지만 꿈을 지닌 많은 이들의 행복한 삶의 터전이었죠. 하지만 어느 날 그 마을은 어둠에 잠기고 말았습니다. 가까운 산의 동굴에 모여든 괴물(몬스터)들이 마을을 노리기 시작한 것이죠. 처음에는 광산으로 향했던 광부들이, 다음에는 밭으로 나간 농부들이 하나둘 몬스터에게 희생되었습니다. 끔찍하고 무서운 일이 마을을 위협하는 가운데, 사람들은 자신과 가족을 지키고 싶었지만 그들에겐 힘이 없었어요.

절망의 시간…하지만, 그들에겐 작은 희망이 있었습니다. 비록 돈은 많이 들어도 이런 문제를 처리해 주는 해결사들이 있었으니까요. 그들은 어디든 출동하여 문제를 해결해 줍니다. 마치 유령을 퇴치하는 사냥꾼, 고스트버스터즈처럼 말이죠. 판타지 세계의 모든 문제를 맡아서 해결해 주는 사람들, 보통 그들을 ‘모험가’라고 불러요.

게임 ‘몬스터 헌터 월드’에서 거대한 몬스터에 맞서는 모험가. 이 정도면 충분히 훌륭한 영웅이라고 할 수 있다.

게임 ‘몬스터 헌터 월드’에서 거대한 몬스터에 맞서는 모험가. 이 정도면 충분히 훌륭한 영웅이라고 할 수 있다.

판타지에는 많은 종류가 있지만, 그중에서도 중세 유럽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중세 판타지가 유명합니다. 『반지의 제왕』이나 『나니아 연대기』, 『드래곤 라자』, 『왕좌의 게임』 등 책으로 시작해 ‘리니지’나 ‘젤다의 전설’, ‘세븐 나이츠’ 같은 게임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정통파 판타지의 대세라 할 수 있죠. 중세 판타지는 중세 유럽을 바탕으로 만들어졌기에 당시 직업도 등장합니다. 기사나 전사는 물론이고, 마법사나 연금술사처럼 조금은 사기꾼 같은 직업도 존재하죠. 중세 판타지에만 나오는 직업도 있습니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모험가입니다.

모험가는 모험을 하는 사람, 위험을 무릅써야 하는 일들을 즐기거나 자주 하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우리 세계에서 모험가라면 ‘모험 스포츠(익스트림 스포츠)’라고 불리는 활동을 즐기는 사람들이죠. 하지만 중세 판타지의 모험가는 다릅니다. 목숨을 걸고 다양한 일을 처리하죠. 몬스터가 마을을 습격하면 가서 구해주고, 위험한 길을 나서는 상인을 보호하며, 산적을 퇴치하고 도적을 잡습니다. 때로는 악당의 부탁으로 사람들을 습격하고 물건을 약탈하기도 하죠. 그야말로 판타지 세계의 해결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현실이든 판타지 세계든 살아가려면 먹을 게 필요합니다. 당연히 먹을 것을 살 돈이 있거나, 직접 먹을 것을 구해야 하죠. 어느 쪽이건 일할 필요가 있다 보니 모험가들은 자기 능력을 팔아서 돈을 법니다. 그야말로 목숨을 걸고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하는 거죠. 물론 모든 모험가가 그런 것은 아닙니다.

모험가도 꿈은 갖고 있죠. 처음부터 돈만 되면 무엇이든 처리하는 해결사가 되려고 했던 사람들은 없을 테니까요. 분명 그들은 이름난 용사나 영웅의 이야기를 듣고 동경하며 모험가의 길을 택했을 겁니다. 언젠가는 자신도 드래곤이나 마왕과 싸워서 사람들을 구하리라고. 하지만, 아무리 판타지 세상이라도 용사나 영웅이 될 수 있는 건 극소수 사람들이죠. 타고난 재능을 갖고 훌륭하게 교육받고, 뛰어난 장비를 지닌 누군가…. 그야말로 왕자나 공주 정도가 아니면 가능성은 거의 없습니다. 동화 속에서 지나가던 왕자가 공주를 구하고, 지나가던 공주가 사람들을 지키는 건 지극히 현실적인 얘기죠.

그렇다면, 영웅을 꿈꾸며 모험가가 된 농민 청년 A는 어떻게 할까요? 재능이야 어떻든 제대로 된 무기도 없고, 훈련도 제대로 받지 못한 사람들 말이죠. 그들은 노력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일단은 몽둥이라도 들고, 나무판자로라도 몸을 감싸 지키며 눈앞의 문제를 하나하나 해결할 수밖에 없죠. 싸우다 보면 강해지고, 어쩌면 뛰어난 실력을 지닌 모험가의 집단(파티라고 함)에 들어가서 함께 성장할지도 모릅니다.

위협이 넘쳐나는 판타지 세계, 그들의 주 임무는 결국 사람들을 해치는 몬스터 퇴치가 중심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마을을 습격하는 고블린 무리, 밭을 망치는 멧돼지 떼, 도심의 하수구에 살아가는 거대 괴물쥐 등 사람들의 삶을 위협하는 몬스터는 얼마든지 있으니까요. 그렇게 그들은 얼마 안 되는 보수를 받으며 목숨을 걸고 사람들의 삶을 지켜나갑니다. ‘모험가’라는 거창한 이름과 달리, 몬스터 전문 퇴치사로 전락해버린 그들. 실제 중세라면 쥐잡이 같은 직업에 가깝겠죠. 그래서인지 판타지 작품에선 종종 ‘모험가라고 하지만 고작 돈 받고 몬스터를 잡는 사람들일 뿐’이라고 비난하는 장면이 눈에 띄죠. 하지만. 정말로 그럴까요? 몬스터 퇴치사라는 모험가의 역할이 그렇게 무시당할 일일까요?

판타지 세계는 중세 유럽과 다릅니다. 중세 유럽보다 훨씬 위험하고 살기 힘든 땅이죠. 수많은 몬스터뿐 아니라 온갖 신들의 변덕으로 죽음이 함께하는 곳입니다. 모험가들은 그처럼 위험한 땅에서 자신의 목숨을 걸고 사람들을 지켜주고 있죠. 좋은 일이건, 나쁜 일이건, 돈만 받으면 대부분 맡아서 처리하는 판타지 해결사인 모험가. 하지만 그들이 목숨을 걸고 괴물에 맞서기 때문에 그 세계 사람들은 안심할 수 있습니다. 그야말로 모험가란 말에 어울리는 역할이 아닐까요.

전홍식 SF&판타지도서관장

전홍식 SF&판타지도서관장

※ 외부 필진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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